슬픈 도깨비 나사 벨 이마주
우봉규 글, 이육남 그림 / 책내음 / 201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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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서로 집에 있는 책 돌려보기를 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옆에 껴서 선생님들이 가지고 오는 책을 몇 권 넘겨볼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읽는 동화는 여전히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늘 아침에도 책 교환이 한창이었다. 그 중 유독 이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몇 자 적어두려고 한다.
 
 *책의 결말까지 모두 나와 있습니다.*

 어느 산 속 깊은 동굴에 나사라는 도깨비가 있었다. '나사'라는 이름은 '는 꼭 람이 될 거야'라는 결심을 하며 스스로 붙인 이름이었다. 나사는 멀리서 사람들의 마을을 보며 매일같이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한 집에 모여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착하게 살 테니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매일같이 빌던 게 100년이 되었고, 나사는 그렇게 원하는 사람이 되어 마을에 내려올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 즐겁게 살아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나사는 마을에 집을 짓고 아이들과 함께 마당에서, 집에서 놀았다. 노는 것은 좋았는데 아이들은 마당을 망가뜨리고 집을 어지른 채 돌아갔고, 그 감당을 해야 하는 것은 나사의 몫이었다. 나사는 아이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려 했으나 아이들은 듣지 않았다. 속상한 나사는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마당에서만 놀게 했다. 집은 깨끗하게 남아 있었고, 나사는 그게 좋았다. 다음에는 마당에서도 놀지 않았다. 아이들은 매일 나사의 집에 와서 놀자고 불러냈지만 나사는 그럴수록 창에 판자를 대고 점점 세상에 담을 쌓아갔다. 뭐, 이후는 뻔하다. 어느 날 나가보니 세상은 물에 잠겼고, 그 동안 세상을 등졌던 나사는 어느 새 도깨비로 돌아가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현실과 달리 동화의 교훈은 알기 쉬운 편이다. 그 점에서 이 동화가 참 신선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정말 궁금했다. 나사처럼 친구들과 갈등이 생긴다고 해서 마음을 닫아 버려서는 나도 도깨비가 된다는 그런 생각? 그러니 친구에게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 글쎄. 나사는 일단 말을 해 보려고 했다. 아이들이 듣지 않아서 그렇지. 물론, 당연히, 아이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도 그랬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치우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뭐, 성인이 된 나도 어지르는 게 좋고 치우는 게 싫으니 자연스러운 것이겠다. 하지만 과연 책에서 그려내는 게 옳은 걸까. 책을 대충 읽으면 다른 아이들은 잘못한 게 없는데 나사의 행동이 이기적이고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나는 이 지점이 마음이 걸렸다.

 이 책을 읽고 찾아 본 많은 리뷰가 그랬다. 나사는 그저 사람이 되고 싶어했을 뿐, 더불어 살아가고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던 거라고. 맞는 말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사람들은 서로 아껴주고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서로 갈등하고, 또 양보해가며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그것을 배우는 과정, 그게 인간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한 번 시도하긴 했지만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마음을 닫아버린 나사는 그 점에서 분명 잘못을 했다. 거절당하고 상처받는 일은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아이들은 나사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라도, 마당에서 놀지 못하게 하더라도 아주 조금밖에 창이 열리지 않았을 때도 계속해서 나사에게 '놀자'고 말을 걸었다. 나사의 행동보다 아이들의 행동이 훨씬 나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나사에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사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게 된 건 '착해야 한다'는 제약 조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만약 그 조건이 없었다면 나사는 화를 내고 아이들에게 '너희가 어질러서 같이 놀기 싫어!'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도 '착해야 한다'는 제약 조건 때문에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나사는 차선으로 싫어하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고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상황 자체가 나사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나사에게 '네가 잘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아이들에게 말하곤 하는 '착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마음 밑바닥에는 아이들에게 '내 말을 잘 듣는, 다루기 쉬운 아이가 되어 줘'라는 속내를 포장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문제는 그렇게 '착해야 한다'는게 아이에게 큰 족쇄가 된다는 점이다. 문제에 맞서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고, 부당한 것에 항의하기보다는 눈 감고 자신을 죽이는 쪽으로 말이다. 나사가 보여주는 것 처럼.

 그리고 애초에 왜 사람과 어울려 살 때 도깨비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 사람의 아이들은 사람인 채로, 도깨비는 도깨비인 채로 자신을 죽이거나 바꾸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어울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사람과 사람이라고 해도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관계는 오래 갈 수가 없다. 하물며 겉모습만 사람이 된 도깨비는 더 그랬겠지. 처음부터 도깨비인 채로 어울려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  -- 나사의 진짜 실수가 있다면 나는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고, 또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점에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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