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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이름은 말 그대로 이르는 것, 타인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 즉 나의 정체성이다. 비록 타인이 짓고 타인이 부르지만 이름을 통해 나로 바로 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지은 한 사람이 있다. 나이도 이름도 정확하지 않고 남대문 지하도에서 '걸을 달아' 먹고 도둑질로 연명하며 소년원과 교도소를 밥먹듯 드나들던 한 소년은,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을 통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경험을 한다.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짓고 서툴지만 연필을 깎아 정성껏 자신의 이름을 써내려간다. 임 승 남.
이 책은 돌베개 출판사의 사장을 지낸 임승남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다. 사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작가의 이력만 보고 군부독재 시절 정의를 위해 힘쓴 실천적 지식인의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돌베개 출판사를 운영한 사람이라면 응당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저항하며 싸워온 지식인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목차에서부터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가 시작됐다. 전쟁 고아, 양아치, 전과자 등. 전쟁과 가난, 군부독재라는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작가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감옥에서 우연히 철학자들의 명언이 가득 적힌 『마음의 샘터』라는 책을 읽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고아로 자라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배우지 못했기에, 순간순간 치솟는 분노를 참고 동물적인 본능을 누그러뜨리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스렸다. 하지만 고된 삶이기에 출소를 하고 다시 도둑질로 교도소에 들어오는 삶을 반복한다. 십 수년을 '야수'처럼 살았는데 그리 쉽게 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소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칠 점을 물어보고 반성하는 자세를 통해 스스로를 인간으로 만들어냈다.
이후 감옥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출판사 일을 시작하게 되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연이 닿아 돌베개 출판사에서 일하며 『전태일 평전』과 같은 책을 펴내기도 한다.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출판사를 지키기 위해 사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았지만 일하는 내내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작가는 1981년 『걸밥』이라는 자전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23년 다시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발표한다. 무엇이 작가를 40여 년의 시간이 지나 새로운 글을 쓰게 했으며, 2023년의 독자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할까? 1) '오직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이야기',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작가만이 쓸 수 있고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세상을 밝게 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2) 책을 통해 변화된 한 사람의 간증이다. 고아로 자라나 야수같이 살았던 한 나쁜 사람이 책을 읽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변화한다. 21세기에 각종 영상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데 왜 책을 읽어야 하냐는 물음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다. 3) 잊지 말고 기억해야할 민주화의 기록이다.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을 보고 분노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너무 어릴 때 고아가 되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배운 바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주로 생각보다는 동물적인 본능에 따라 살았다. 그런 본능을 갑자기 억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바짝 선 마음속 칼날을 한 번만 드러내면 감방살이가 편안해질 터였다. 그것을 억지로 참으며 삽자루를 붙들고 나 자신과 씨름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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