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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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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마흔 넷 늦은 나이 사일러스 코드 박사는 데메테르 호의 주치의로 승선해, 노르웨이 해안에 ‘균열’을 찾는 모험을 떠난다. 그는 틈틈히 ’증기로 움직이는 범선‘, ’자동으로 연속 발사되는 총‘이 등장하는 ‘공상’소설을 쓰고 있는데, 모틀락 등의 하급 선원들 사이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꽤나 인기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시시콜콜 시비를 거는 코다 부인은 그런 이야기 따위에 관심이 없다. 마침내 배는 목적지에 다다르고, 빙하 틈 사이로 ‘균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범선의 돗대가 부러지며 코드 박사를 덮친다.

깜짝 놀란 코드 박사는 눈을 뜬다. 일행은 ’증기선‘ 데메테르 호를 타고 남미 대륙 아래 남극해를 탐험하고 있다. 그들은 ‘균열’을 마주하지만 그보다 먼저 침몰한 유로파 호를 발견한다. 모험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해 후일을 도모할 것인가 선원들 사이에서 실갱이가 벌어지면서, 잘못 발사된 총알이 코드 박사의 복부를 관통한다.

다시 눈을 뜬 코드 박사. 데메테르 호는 하늘을 나르는 비행선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역사가 같은 인물들로 반복될 리가 없을텐데. 그런 우연은 수백 년에 한 번이라도 일어나기 힘들텐데. 코드 박사를 따라가는 서사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독자는 데메테르 호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책을 처음 폈을 때 이 소설이 왜 SF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이 이야기는 너무나 서늘한 SF라는 확신이 든다. 마치 애너그램처럼 마지막 책장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마법이 펼쳐질 것이다.

✔️이 글은 푸른숲 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개인적인 감상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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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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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에게‘, 라는 제목의 이 책은 나이를 뛰어넘은 두 과학자의 우정이 가득 담긴 서간집이자,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회고록이다.

저자인 수전 배리는 사시 때문에 평생을 입체맹(두 눈에서 오는 시각 신호를 하나로 합치지 못해 입체를 지각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살았지만, 48살에 시력 교정훈련을 통해 3차원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반세기 동안 입체시는 유아기의 결정적 시기에만 발달하며 그 시기가 지나면 결코 발달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기에, 신경과학자로서 흥분한 수전은 자신의 경험을 올리버 색스에게 편지로 전한다. 올리버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였기 때문에 수전은 자신이 경솔한 행동을 한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올리버는 입체그림 장치와 도구를 잔뜩 가지고 직접 수전을 만나러 왔다.

올리버와의 만남과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수전은 입체시를 얻은 경험이 자아 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올리버는 이런 수전에게 ’스테리오 수(입체적인 수)’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뉴요커』에 수전에 대한 글을 발표한다.

사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둘의 편지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둘은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났으며, 올리버는 글을 완성했고, 수전 역시 ‘스테리오 수‘라는 정체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쾌한 수전은 올리버가 사랑하는 두족류(오징어, 문어 등), 다양한 감각 이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아 편지를 보낸다. 당시 안암으로 힘들어하던 올리버 역시 수전에게 마음을 열고 생일잔치에 초대하는 등 우정을 이어간다.

수전은 입체맹에서 입체시로, 더욱 풍성해진 세상을 살게된 반면, 안암으로 한쪽 눈을 잃은 올리버는 입체시에서 입체맹으로, 납작한 시각을 갖게 된다. 입체광이었던 올리버를 잘 아는 수전은, 어설픈 말로 그를 위로하기 보다는 어렸을 때 자신의 경험과, 입체는 아니었지만 소중했던 기억을 함께 편지에 담아 전달한다. 시간이 지나 올리버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났지만 그가 사랑하고 감사했던 사람들은 아직 그를 기억하고 있기에, ‘10의 6제곱 만큼’ 그리움을 담아 ’올리버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마음 속으로 여전히 쓰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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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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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일어날 일은 '당신이 이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5년 후'의 일이다.

파리 자연사 박물관 지하, 후생 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는 인간과 다른 종을 결합해 '키메라'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비밀은 곧 세어나갔고, 프랑스 정부는 그녀와 키메라 세포들을 암살의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해 우주 정거장으로 보낸다. 하지만 우주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알리스의 연구에 반대하는 우주정거장 사령관 피에르 퀴비에가 키메라 세포들을 제거하려다 살육전이 벌어지고, 그 사이 우주 정거장과 지구 사이 연락은 끊어진다.

사태가 진정되자 우주 정거장에는 알리스와 생물학자 시몽 스티글리츠, 그리고 감금된 피에르만 남게 되었다. 다시 지구로 연락을 재개한 알리스는 그 사이 제 3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핵 전쟁으로 사피엔스는 대부분 멸종한 상태였다. 알리스와 시몽, 피에르는 우주선의 자원을 최대한 절약해서 우주에서 연구를 지속하기로 한다. 1년 후 결국 우주선 안 자원은 고갈되었고, 연인이 된 알리스와 시몽, 피에르는 방사능으로 피폭된 세계에서 사피엔스의 생존신호를 발견한 파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초기 인류는 사피엔스 외에도 네안데스탈인, 에렉투스, 하빌리스 등 다양한 종이 공존했으나, 어느 순간 더 이상 교배할 수 없을 정도로 분리됐으며, 인지혁명을 겪으며 영리해진 사피엔스가 다른 종을 몰살하고 유일한 종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단일 종의 문제는 환경이 갑자기 변했을 때 한꺼번에 멸종당할 수 있다는 위험이다. 알리스 박사는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 하늘을 나는 에어리얼(박쥐 혼종), 땅 속에 사는 디거(두더지 혼종), 물 속에 사는 노틱(돌고래 혼종)을 만들어 각각 그리스 신의 이름인 헤르메스, 하데스,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핵 전쟁으로 문명이 붕괴된 아포칼립스의 시대, 알리스 박사는 평생을 혼종들과 함께 지내며 혼종들의 발전, 갈등, 화합 그리고 진화의 과정을 지켜본다.

알리스 박사는 인류가 사피엔스 종을 보존하기 위해 지구 안에서는 DNA의 앞글자를 딴 디거, 노틱, 에어리얼 등의 혼종을 만들었고, 지구 밖으로는 새로운 지구를 찾아 항해하는 '파피용' 호에 인류를 태워 보냈다고 한다. (『파피용』을 즐겁게 읽었던 독자로서 매우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기후 위기, 국가 간의 갈등, 자국 우선주의 등 사피엔스 종 안에서 긴장이 커지는 만큼 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 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려낸 미래의 모습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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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연구 암실문고
앨 앨버레즈 지음, 최승자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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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서점 책장 사이를 걷다 단발의 노년 여성이 담배를 들고 있는 흑백사진을 보자 마음이 끌렸다. 삶을 초연한 듯한 흐릿한 시선, 담배 연기, 노년. 이 시인은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이토록 자연스럽게 강렬한 포즈를 만들었을까. 그렇게 고통스럽고 쓸쓸하고 허무하고 강인한 시인을 처음 만나게 되어, 죽음과 죽음의 너머, 죽음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을유 '암실문고'에 새롭게 추가된 앨 앨버레즈의 『자살의 연구』는 40년 전 최승자 시인의 번역본의 개정한, 국내 최초의 완역판이다. 사회적으로 사실상 금기인 '자살'에 대한 연구, 그것도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해온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마음 속 깊은 암실 속으로 시인의 번역과 함께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저자인 앨 앨버레즈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시 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는 1960년 초 실비아 플라스와의 만남으로 책을 시작한다. 실비아의 남편인 테드 휴스는 뛰어난 시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나, 실비아는 '시인으로서의 존재는 지워진 채 젊은 엄마와 가정주부'로 지내던 시기였다. 저자는 휴스 부부와 자주 만나며 실비아의 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저자는 실비아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그녀에게 자살은 '성인 여성이자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스스로 청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는 행위'라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실비아는 시를 통해 끝없이 에너지를 방출한 후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저자는 실비아의 죽음으로부터 자살과 문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공포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에서 '중용과 높은 절조'의 결과물인 합리적인 행위였다. 하지만 기독교의 시대로 접어들며 순교에 대한 광기와 세례를 받아 원죄를 씻은 뒤 자살하는 행위가 유행하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살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규정한다. 이후 자살은 천년 이상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되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며 마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값싸고 덜 고통스러운 죽음의 방법들이 발견되자 자살에 대한 담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작가는 4장 자살과 문학에서 단테의 중세부터 시작해 사무엘 베케트, T.S. 엘리엇에 이르는 현대까지 여러 작가와 문학, 예술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의 긴장, 죽음의 에너지가 작품으로 터져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차곡차곡 밝혀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죽음의 거의 끝까지 가야'했던 개인적인 체험을 고백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작가는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무조건 적인 비난을 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 역사적인 추적, 문학적인 연구를 통해 자신의 생을 걸고 세상에 저항한 운명들에 대해 말한다. 벗어날 수 없었고 끝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릴 수 밖에 없었던 예술적 에너지에 대해 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 맞다는 어설픈 윤리적인 결론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보다 용기있는 마무리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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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번트가든의 여자들 - 18세기 은밀한 베스트셀러에 박제된 뒷골목 여자들의 삶
핼리 루벤홀드 지음, 정지영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북트리거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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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런던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급속하게 팽창했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코번트 가든 극장, 드루리 레인 극장 등 다양한 극장들이 생겨나며 문화적으로도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이는 밝은 부분일 뿐, 어둠 역시 드리우고 있었다.

극장들은 도시 문화의 중심지로서 귀족, 신흥 부자 등 상류 계층 뿐만 아니라 문화 사업에 종사하는 일반인들, 그들을 위해 일하는 하층민들까지 끌어들였다. 이러한 고급 문화와 어두운 측면이 교차하는 독특한 공간이 바로 코번트 가든이다.

1757년 코번트 가든을 뒤흔든 리스트가 출판됐다. 소위 '해리스 리스트'라고 알려진 소책자는 시인이자 무명 작가인 사무엘 데릭이 포주 잭 해리스의 도움을 받아 코번트 가든 주변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외모, 특기, 가격 등을 자세하고 위트있게 그려 인기를 끌었다.

핼리 로벤홀드의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은 '해리스 리스트'의 감춰진 뒷 이야기를 유쾌하고도 치밀하게 밝혀낸다. 해리스 리스트의 여성들은 부도덕하거나 성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실제 리스트를 만든 사무엘 데릭, 잭 해리스, 샬롯 헤이즈는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음에도 거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 또한 리스트의 여성들이 극심한 가난이나 성폭행으로 매춘에 빠질 수밖에 없었떤 가혹한 사회, 경제적 현실을 조명한다.

'해리스 리스트'는 데릭이 사망한 후에도 계속 출판됐으며, 성매매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리스트의 출판에 관여한 사람들에 대해 처벌을 내리며 막을 내렸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리스트이지만, 로벤홀드는 이들을 잊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에 '해리스 리스트'의 애독자들 명단을 첨부해 이들의 악명을 길이길이 남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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