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년 동안을 기숙사에서 살았다. 처음 1년 동안, 기숙사 내 방 화장실은 <트레인스포팅>의 화장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2학년이 되어서야 대학 생활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고 내 주변 정리 상태도 그나마 나아졌다.

군대를 다녀오고 휴학을 했다. 그렇게 2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3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복학 첫 학기 나의 생활은 말 그대로 범생이 그 자체였다. 복학을 하면서 나의 자취 생활은 시작되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고 어려웠다. 밥을 하는 것도, 혼자 사는 것도. 기숙사는 친구들이라도 있었지만, 자취방은 온전히 나의 공간이었다. 그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더불어 나 혼자 꾸려가야 할 공간을 뜻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생각보다 잘해나갔다. 언제나 나의 방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때 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대학생활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동문 선후배 10명 정도가 내 방에 놀러왔다. 집들이 겸 MT. 그날 난 한 손엔 술 잔을, 다른 손엔 걸레를 들었다. 아이들이 술이라도 몇 방울 흘린다거나 과자부스러기를 떨어뜨릴라치면, 나의 걸레질은 그 순간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때 난 거의 결벽증 상태였다. 방도 그랬고, 공부도 그랬다. 그 결과 입학 후 최초로 3.5를 넘는 학점을 받았다. 그때 내 마음은 복학해서는 뭐든지 제대로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청소는 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 학기에는, 그 학점에다 다소 어려운 가정 형편을 내세워 학교로부터 ‘가사곤란자 장학금’이라는 것을 받아냈다. 흥분에 떨며 엄마에게 전화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뚜렷하다. 오래 전에 억지로 빌려준 돈을 간신히 받아냈을 때의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6개월 뒤 나의 방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쓰레기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방의 난지도화는 시작되었다. 1년 6개월을 그렇게 보내고 난 졸업을 했다. 가끔 여자 친구가 와서 밀린 빨래와 머릿기름에 전 베갯잇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 주었고, 베개와 이부자리를 털거나 햇볕에 널어 말려 주었다.

졸업 후 나는 나의 진로를 두고 고민해야 했다. 그래, 차선으로 딱 1년만 돈을 벌고 다시 공부하는 거야. 그렇게 맘먹고 시작한 학원 생활은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뒤 1년 6개월 동안 나의 자취방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심하게 도진 비염으로 집에 오면 쉴 새 없이 코를 풀어댔다. 그러니, 방 여기저기는 코 푼 화장지로 가득했다. 방 한쪽 모서리에 묵혀둔 빨래 위에는 소복이 먼지가 쌓이곤 했다. 아침에 날 밀어낸 이부자리는 저녁에 그 모습 그대로 날 받아들였다. 그런 날들이 오래 지속되곤 했다. 그러다 가끔 여자 친구가 와서 먼지를 털어내고 이불을 말려 주었다. 돈을 벌고, 집을 청소하고, 책을 읽고, 그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하기엔 나의 능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리고, 난 원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못한다. 청소를 하고 지내는 한동안(며칠이나 몇 주)은 책장을 덮어두어야 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청소고 뭐고 없다. 난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리고, 엄마가 올라오셨다. 9년만에 모자는 한 지붕 아래서 잠들고 눈을 떴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한다. 심지어는 제 밥도 밥통에서 안 푼다. 엄니가 입에다 퍼주지만 않을 뿐, 아니 거의 퍼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만,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한때는 나도 설거지도 하고 내 와이셔츠를 빨아 다려 입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일들을 까마득히 잊었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때 일일랑은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하루를 받아먹으면서 살고 있다. 이불도 안 개고, 내 양말 하나도 안 빤다. 방을 한번 걸레질을 하나, 내 방 쓰레기통을 한번 비우기를 하나.

엄니가 광주에 내려가셨다. 누나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데 수발을 들러 가셨다. 며칠 전부터 나는 혼자 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라도 해야겠다. 사실 안 해도 버틸 수는 있지만, 난 그렇게 3년을 버텨낸 과거가 있으니까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만, 엄니가 올라오셨을 때 아들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보여드리고 싶다. 아니, 이참에 내 생활 태도의 뿌리를 조금이나마 흔들어봐야겠다. 엄니가 올라오신 뒤에도 가끔이나마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좀 개고 그래야겠다. 꼭 효도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제 방 하나, 제 옷 하나, 자기가 먹은 밥 그릇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책임진단 말인가.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내 몸에 굳어진 ‘다 알아서 해 주겠지’, 하고 여기는 습성은 내가 앞으로 만날 여자에게도 좋지 않다. 어미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는 아들놈은, 결코 좋은 남편이 될 수 없다. 생각해 봐라. 평생 부려먹는 마법에 걸려 있던 놈이,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마법에서 풀려난다고? 어림없는 소리다. 그 마법은 마수(魔手)다. 달아날 수 없는 마수다.

굳이 결혼 때문만도 아니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은 한 사람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좀 그럴듯하게 얘기하자면, 그건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문제다. 돈을 버는 것,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이냐의 문제도 중요하겠으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돈을 기반으로 해서 어떻게 생활을 꾸려갈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아직도 반쪽짜리 생활인인지도 모른다. 벌어서 어떻게 쓸 것인가만 고민했지, 그걸로 내 생활을 꾸려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엄니의 몫이었다.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날 위해서라도 이젠 좀 달라져야겠다. 난 지금 추계 훈련 중이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이라 다행스럽다. 하지만, 마음은 급한데 손은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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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가 옥중에서 보낸 서신들 중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럽에서 철새들이 이동할 때 독수리나 매와 같은 맹금들도 그들의 최종 기착지인 나일강가에 도착하게 되면 며칠 동안이나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기진맥진하게 되는 험난한 여행을 경험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몸집이 작은 방울새니 나이팅게일이니 하는 연약한 새들은 어떻게 그렇게 멀고 힘든 항로를 날아갈 수 있는가? 룩셈부르크가 감옥에서 읽었던 조류학 관련 문헌에 의하면 철새들이 이동할 때면 하늘의 휴전이 성립한다고 한다. 즉 평소에는 잡아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지만 이때가 되면 작은 새들은 몸집이 큰 맹금들의 등에 업힌 채 멀고 먼 하늘을 날아간다는 것이다. 거의 시적이라고 할 만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주의 근본적인 짜임새가 경탄하리만큼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빈틈없는 상호의존과 상호희생, 다시 말하여 무한한 사랑과 자비심으로 기초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  .  김종철, <간디의 물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봤다. 예수의 수난은 눈물겨웠다.
하지만, 베드로의 배신은 그것 못지않게 눈물겨웠다. 아니, 그보다 더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을 봤다. 펑펑, 울고야 말았다.


어제, TV에서 본 수험생들.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그들의 어깨에는 허탈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마, 그들도 9년 전 나처럼 물었겠지. 12년 동안 오늘 하루를 위해 달려왔다, 뭔가 있을 줄 알고 좆 빠지게(이런 상황에서 이 표현을 안 쓰면 대체 언제 쓸까.) 달려왔다, 그런데, 막상 결승점에 와보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12년의 삶을 단번에 평가하고 앞으로 수십 년의 삶을 한번에 결단내릴 몇 장의 커다란 시험지뿐이다, 제기랄 정녕 이것뿐이란 말인가.
누군가 그러더군.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일평생 딱 두 번 긴장한다고. 입시와 입사가 그것이라고. 물론, 세상은 변했다. 무한 경쟁이란 말이 유령처럼 떠돈다. 명예 퇴직이란 알량한 이름을 가진 부품 교체 방식도 오래 전에 도입되었다. 자본은 최소한의 염치를 벗어던진 지 이미 오래다. 입시의 문도 다양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한 사람의 입사 지원서를 검토하는 2분 19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인사 담당자의 눈길이 머물 곳은 여전히 몇 군데 안 된다는 점이다.


<슈퍼사이즈 미>란 영화가 있다. 비만을 다룬 영화다. 더 정확히는, 다국적 기업인 맥도널드를 비판한 영화다.
미국은 지금 두 개의 비만으로 위태롭다. 하나가 병리적 비만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정치적 비만이다. 한없이 비대한 미국은 이라크를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아마, 북한이 좀더 육질이 좋고 기름졌더라도 그들의 이빨이 벌써 북한의 심장에 박혀 있지 않았을까. 그런 다음, 핵무기(가 존재한다고 하면)는 이쑤시개로 사용했겠지.
맥도널드는 전 세계인의 일상이 되었다. 두려운 건,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식 삶의 패턴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지체되지 않는 욕망 충족의 세계. 그것은 풍요이면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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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뜰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 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크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뜰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 . . 고등국어(상)에서 김용택, <그 여자네 집>




내 나이 스무 살이었던가. 그해 겨울에 나도 저 사람처럼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하염없이. 길에 쌓인 눈을 밟고 또 밟으며,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돌을 차고 또 차며. 그 집 문 앞에 서서 그녀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끝내 나오지 않던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그 집 대문 문고리에 내 목도리를 둘러주고 왔다. 내가 왔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난 하얗게 밤을 새우며 그녀를 기다리진 못했다.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그녀의 어깨 위에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내려앉을 정도로 나의 사랑은 깊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 안에는 정말 많은 ‘내’가 들어앉아 있어서 온전히 나를 내놓지 못하곤 했다. 또한, 상대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나 역시도 금세 내 마음을 거두기 일쑤였다. 그랬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은 대개 그랬다. 조금 서툴고 미련스럽지만, 끝까지 기다리고 온전히 내어주지 않는 나의 사랑. 상대가 내게 줄 것을 미리 따져보고 내가 얼마나 줄 것일지를 가늠하기 바빴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달빛같이 숨가쁘고 그윽하게 사랑하지 않았던 나의 영혼은 내 젊은 날의 후회다. 청춘의 시간을 지나가면서 내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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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세계에서 놀림을 받는 것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문제가 있는 아이를 놀린다. 그리고 그 문제는 종종 남과, 나머지 대부분의 아이들과 같지 않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뿌루퉁해진 얼굴로 “애들이 놀려”하면서 아이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처럼 심한 인습주의자, 순응주의자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남과 같지 않다는 것은 흉거리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한 편의 동화가 나의 이런 고민을 속시원히 풀어주었다. <엉뚱이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비룡소).

소피는 확실히 처음부터 좀 다른 아이였다. “아기들이 우는 것은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에 오줌을 쌌거나, 아니면 좀 안아줬으면 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난 소피는 아니었다.” 소피가 우는 것은 어른들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입혀 놓았기 때문이다. 말을 배울 때에도 소피는 “똑똑한 원숭이”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저 눈, 코, 입” 하고 따라하지 않고 대신, “소매, 깃, 단추, 주름...” 하고 말했다. 이런 소피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소피는 발은 분명히 두 개인데 왜 사람들은 똑같은 구두 두 짝을, 같은 색깔의 양말 두 짝을 신는지를 몰랐다....” 이런 소피가 손가락 열 개에 다 다른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 이렇게 다 “이름이 다르니까.” 이렇게 옷차림에 관해서 좀 독특한 생각을 가진 소피는 당연히 학교에서 아이들의 놀림감이다.

양말이나 신발을 짝짝이로 신는 것은 보통이고 필요하다면 아빠의 와이셔츠나 질질 끌리는 엄마의 치마도 서슴지 않고 입는다. 한꺼번에 두 개 이상의 치마나 벨트를 착용하거나, 세 개 이상의 목걸이나 금속 벨트 혹은 스카프를 두루는 등 담임 선생님이 “사육제 차림”이라고 부르는 옷차림을 해야 소피는 “옷을 입은 거 같은 기분”이다. 괴상한 옷차림 때문에 소피는 담인 선생님으로부터 경고 편지를 받아오고, 소피의 부모는 아이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여러 겹으로 옷을 입느냐고. 혹은 내일은 무슨 옷을 입고 갈 거냐고. 소피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침만 되면 뭘 입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다 입고 가는 거예요.” 혹은 “아빠는! 내가 언제 미리미리 준비하는 거 보셨어요? 내일 아침에 가봐야지요. 바람이 불지, 해가 날지 모르잖아요. 오늘밤 구름도 좀 봐야 하고, 내 목소리랑 눈빛도 좀 고려해봐야 되구요.”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좀 열심히 나타내고 싶을 때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나는 시를 쓰는 것처럼 옷을 입는 거예요. 내 몸은 종이구요, 두 손은 만년필, 두 눈은 영감의 창이에요, 모자는 느낌표구요, 스카프는 쉼표, 레이스는 말줄임표예요.” 뿐만 아니다. 어떤 날은 잠옷을 입고 학교에 가기도 한다. 물론 소피에게는 나름대로 상당한 이유가 있다. “‘밤’의 한자락을, 자기 침대의 한켠을 ‘낮’ 속으로 가지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피는 자신의 옷차림이 ‘누구에게’ ‘왜’ 문제가 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반문한다. “아빠, 그게 나쁜 거예요?”

학교에서 경고장까지 받아오는 별난 아이의 너무나도 간단하고 본질적인 이런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소피의 부모는 그 많지 않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담임 선생님께 이런 답장을 썼다. “우리 소피의 옷차림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건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겉장만 보고 책을 판단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소피는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주의력도 깊은 편이면 예의바르고, 사회성에도 문제가 없다는 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피는 전혀 남을 방해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옷차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육’이란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점에 선생님도 동의하시리라 생각하며....”

그렇다. 창의성이다. 문제는. 이렇게 멋진 대답을 할 수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소피 같은 아이가 창의적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도 바야흐로 창의성이 문제다, 라고 부르짖고 있다.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만 받고 자란 어른들이 개혁을 부르짖으며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운다. 학교 안팎의 교육이 여전히 창의성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는 걸 방관하면서, 수능 시험에서 언어가 어려지고 논술 시험의 비중이 높아지자 거기에 발맞추어 유아에서부터 수험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 프로그램의 초점은 창의성에 맞춰지고 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것 같은 ‘창의성 과목’은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교사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아무한테서도 ‘배우지 않았던’ 이 과목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는 교사들이 당황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언제쯤이면 우리가, 아이들은 어른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다는 굳은 믿음에서 풀려나 아이들이 제가 원하는 것을 저 혼자 터득하도록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게 될까. 창의성도 무조건 ‘교육’해야 한다는 그 생각에서.

소피의 옷 입는 방식은 정말 엉뚱하고 지나치다. 그리고 그 지나침을 인내하는 소피 부모의 태도는 훌륭하다. 소피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하기 전에 그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소피를 충분히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소피는 괴팍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상심한 부모가 “내일, 새로 산 치마랑, 블라우스 입고, 양쪽 똑같은 스타킹 신고, 신발도 짝짝이로 신지 말고 그렇게만 하고 학교 갈 수 있니?”하고 부탁하자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드리지 않기 위해 얌전한 여학생의 옷차림을 하고 등교한다. 스물일곱 개의 리본을 단 스물일곱 가닥으로 땋은 머리, 얼굴에 갖다 붙인 금색, 은색 별만 빼고.
반 아이들이 이상한 장신구를 달고 오는 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자 소피가 자기 반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고 판단한 교사가 “학교에서는 소피가 퍼뜨리고 있는, 옷을 괴상하게 입는 전염병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조처를 강구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경고성 편지를 교장 선생님의 사인까지 넣어서 소피 부모님께 보낸다. 이제, 소피의 엄마 아빠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세 가지뿐이다. 1) 전학을 시킨다. 2) 평일에는 하루에 세 번, 일요일에는 하루에 여섯 번 소피에게 잔소리를 한다. 3) 심리 치료사에게 보인다. 소피의 부모는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고 싶고 아주 조그만 부분 하나에서만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소피의 이야기를 듣고 “소피는 용감하고 총명하고 득특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입니다. 그리고 아주 귀여운 아이죠.”라고 진단서를 써주는 심리 치료사 역시 소피의 편이다.

어느 일요일 산책길에서 만난 신문기자에게 소피는 숄을 두르면 “할머니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고” 터번을 쓰면 “알리바바”가 떠오르고, “걸어다니면 찰랑찰랑거리는” 예쁜 소리를 내는 세 개의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감동한 그는, 곧 ‘소피의 패션’이란 제목하에 “열 살 날 소녀 소피는 추억과 사랑과 음악과 시로 옷을 차려입는다. 이 아이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나갈 것인가”라는 기사를 써낸다. 담임 선생님은 이 기사를 오려 사진과 함께 학교 게시판에 붙이고, 아이들은 저마다 괴상한 차림을 하고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달이 지나자 청바지를 입고 오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선생님까지 널따란 통바지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노란색 블라우스를 입고 학교에 오신다. “그 다음날, 소피는 주름치마와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단화를 신고..... 아무것도 더 걸치지 않고 그렇게 학교에 갔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 . . 최윤정,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문학과지성사)에서


좋은 부모가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좋은 부모는 무릇 좋은 인간을 전제로 한다. 좋은 인간이 되지 않고선 절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 물론, 좋은 인간이라고 다 좋은 부모가 되란 법은 없다. 좋은 부모는 우선 좋은 인간이어야 하고, 거기에 더해 또 다른 무언가를 갖춰야 한다.
나는 앞의 짧은 단락에서 ‘좋은’이란 형용사를 무려 8번이나 사용했다. 과연 ‘좋은’이 지칭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 말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실로 다양하게 쓰인다. 내가 저 말에 담아 쓰는 의미는, 어떤 도덕성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물론, ‘좋다’라는 것이 인품, 됨됨이를 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음’이란 대개 사람을 대하는 어떤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그 사람의 입장에서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태도. 하여, 그 사람의 깊은 상처와 그늘을 어루만지는 태도. 그게 좋은 사람이다. 다른 이의 그늘에 머무를 줄 알고, 그 그늘을 가만히 바라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당연히 ‘다름’에 대해서 신경질내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낯선 존재들에게 날선 눈초리를 보내지만, 그런 사람은 으레 낯선 존재들과 마주하기를 꺼리지 않고, 또한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애쓴다.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관용하기란 좀체 쉬운 일이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회는 범죄자는 간혹 용서하지만, 몽상가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몽상가란 다른 사람이며, 이상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존재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난 열린 사람이 좋고, 또 열린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진정 그렇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일에는 보통 어떤 오해와 착각이 뒤따른다. 당연한 것이다. 나 아닌 누군가를, 내 밖의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거리 때문에 언제나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쨌든, 그것까지도 그러안고 가야 한다. 당신에게로, 또 다른 나에게로.  그리고,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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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옷을 벗고 있다. 수년 동안 내가 입고 있던 옷을.

그 옷은 내게 딱 맞았다. 지나칠 정도로 딱 맞았다. 배와 가슴을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동여맨 중세의 코르셋처럼.

한 여름 햇살 아래서도 나는 그 옷에 내 몸을 숨겼다. 비질비질 땀을 흘리며 햇살의 행복을 애써 무시했다. 햇살처럼 따사로운 행복을 시기의 눈빛으로 쏘아보거나, 짐짓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 옷은 편안했지만, 많이 답답했다.

숨쉴 틈 없는 그 옷에 내 몸은 조금씩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랩으로 칭칭 감아놓은 생선토막처럼, 내 몸은 세상의 공기에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니, 내 몸은 내 밖의 몸과 만날 수 없었다.


한때는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한때?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게 나의 정체성이라고.


적당히 헐거워도 좋을 옷에 너무 많은 풀을 먹여놓았는지 모른다.

모든 딱딱한 것들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옷에 먹인 풀기가 죽고 빳빳한 옷깃이 풀어지듯이.

내게는 지금이 그 때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헐겁고 적당히 풀어져야 한다.

풀어지리라.

6월 30일



나는 정말 하찮고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한 말들의 많은 부분은, 정말 입에서만 중얼거리는 말들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그 말들에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길 바라고, 또 내 삶이 나의 말만큼이나 진실할 수 있길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들이 모두 내 삶의 뿌리로부터 왔다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구? 나 역시, 나의 몸 역시, 나의 무의식 역시, 나의 일상적 의식 역시 그때 내가 했던 그 말들과 충돌하고 부딪치곤 하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충돌과 모순에 나를 내던지려 하고, 또 내 삶과 내 말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안간힘을 쓴다는 거겠지. 부족하나마.

7월 2일



인라인을 타다 다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멍이 들었고, 왼쪽 골반 깊숙이 상처가 남았다. 외상은 없다. 그냥 보면 멀쩡한데, 어젯밤에는 아예 그쪽으로 돌아눕지를 못했다. 대개 옆으로 누워 자는 데 익숙한 나로서는, 어젯밤 잠자리는 그리 편치 않았다. 갑작스럽게 내 쪽으로 내달려온 그 사람을 원망했다. 나는 아무 잘못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근데, 그게 아니더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게 아무 잘못도 없었는지. 난 뒤로 주행 중이었지. 물론 주행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지그재그로 예상 불가능하게 움직인 건 아니니까. 지그재그로 움직일 때 상대가 와서 부닥쳤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나는 일직선으로 곧게 나아가고 있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저 그 방향으로만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근데, 문제는 나의 주행 방향이었다. 나는 그때 거꾸로 가고 있었던 거다. 뒤로 가더라도 (앞으로 주행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나는 마주보고 달렸던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그와 같은 나의 주행은 당연히 상대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그 사람과 나는 맞부딪친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탓일지도. 아니, 분명 나의 탓이리라. 왜 그렇게 방향을 잃고 거꾸로 가고 있었던지.

사랑도 그렇게 할 때가 있다. 있다? 아니, 많다. 앞보고 하지 않고, 거꾸로 돌아서서. 그러니, 매번 부딪치고 깨질 수밖에.

7월 23일



살이 찌는 달, 몰락하는 달, 하얀 눈썹 같은 달, 둥근 은접시 같은 달, 달은 참 다양한 모양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달에는 예상 가능한 과정이라는 게 있다. 사람에게도 그런 게 있을까. 있다면, 정말 편할 텐데. 아니 있다 해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이 나를 한없이 옥죌 뿐이고 내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달은 제 모양을 바꾸면서, 주위 사물들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변화다. 밀물이 밀려오고 썰물이 밀려가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 바다는 제 몸이 흔들리는 것을 원할까. 기원적으로 따지자면 바다는 달의 힘에 밀려 흔들리는 것이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바다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달과 바다는 깊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달의 힘이 바다를 꺾으려 하지 않고. 달과 물이 서로에게 스미듯, 달의 변화가 제 밖의 것들과 자연스레 섞이듯, 그렇게.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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