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서원은 유성룡이 지은 서원이다. 병산(屛山)이란 이름은 병풍처럼 펼쳐진 산에서 유래한다. 그곳에 가면, 아무런 설명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왜 그곳이 병산서원인지, 혹은 병산서원이어야 하는지를. 서원은 그 앞의 산과 강에서 적당한 거리로 물러나 앉았다.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게. 그 거리란 참 묘한 것이어서, 서원과 자연은 둘이되 하나처럼 느껴졌다. 풍경과 어우러지는 가장 적당한 거리를 병산서원은 구현하고 있었다. 하여, 서원 안으로 앞강과 앞산이 흘러들고 스며든다. 강당의 정중앙에 앉아 있노라면, 산이 서원으로 스며드는, 서원이 산으로 다가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서원의 규모는 작으나, 그 작은 것이 크고 거대한 산을 제 속으로 들어앉히는 모습은 놀랍고 아름답다.
살아 있는 문화재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병산서원은 내게 일정한 답을 주었다. 안동 하회마을이 죽어 있는 문화재의 표본이라면, 그 바로 옆에 위치한 병산서원은 살아 있는 문화재의 귀감이다. 서원의 마루는 깨끗이 닦여져 있었다. 무엇보다, 신발을 벗고 올라서라는 안내문은 그지없이 반가운 것이었다. 신발을 벗고 누각 위에 올라앉으니 앞산이 내 눈과 가슴으로 밀고 들어왔다. 눈으로만 보고 머리로만 이해할 게 아니라, 사람의 손때가 묻고 사람의 발길이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살아 있는 문화재라고 한다면 말이다. 적어도, 건축물에 한해서는 나는 그리 생각한다. 현재의 온기와 과거의 운치가 어우러진, 생생하게 살아있는 문화재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병산서원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고작 두 대뿐이다.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이웃하고 있다. 그 둘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들어가자면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병상서원은 그 너머에 자리한다. 병산서원 가는 길에서 만난 강과 산은 넉넉하고 풍요롭다. 나는 가는 길은 버스를 탔고, 오는 길은 차를 얻어 탔다. 버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가게 될 때는, 가는 길은 걸어서 들어가야겠다. 병산서원을 감싸는 그 넉넉한 강과 산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