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겨울이었다. 이불 안에서 켜곤 하던 드라이기의 추억. 옥탑방은 지상의 맨 꼭대기에서 겨울 바람을 맞았다. 보일러는 고장났고 전기 장판은 없었다. 냉동고와 다름없는 옥탑방에 냉장된 채 온몸으로 추위와 싸워야 했던 날들. 그런 날이 며칠 동안 계속됐다. 보일러 배관은 꽁꽁 얼었고 그게 녹아야만 보일러를 고칠 수 있었다. 날이 풀려 자연히 녹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두꺼운 겨울 이불을 두 겹씩 이고 잠들어야 했다. 몸을 내리누르는 압박감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그때 알았다. 그 두꺼비 껍질 같은 이불 속으로 따스한 바람을 넣어주던 드라이기. 그 바람은 겨울 바람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부족했건만 그나마 그것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너무 추운 날에는, 그래서 이불의 무게와 드라이기의 바람만으로 추위를 견딜 수 없는 날에는 가스레인지를 켜놓곤 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온몸을 뒤트는 마른 오징어의 삶이 부러운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3년 전 겨울이었다. 싱크대에 내리꽂히던 오줌발의 추억. 그때도 겨울은 여지없이 추웠고 허기졌다. 선배 자취방에서 책을 양식 삼아 버티던 날들이 며칠 동안 계속됐다. 하루 한 끼 먹을 수 있었던 밥은 오직 김치가 찬의 전부였다. 지독히 간소했지만, 지극히 맛있었다. 가끔 운이 좋은 날에는 선배가 사다 준 라면으로 하루에 두 끼를 먹기도 했다. 읽고 자고 일어나서 또 읽고. 그렇게 나는 육체의 주림을 책으로 채워나갔다. 아주 춥고 배고픈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도 날카로운 바람이 조그만 방 밖에서 웅웅거리며 무섭게 휘몰아쳤다. 외따로 떨어진 그 집의 옥외 화장실은 그런 날은 더욱 곤혹스러웠다. 겨울바람이 끔찍이도 싫은 날에, 새벽녘 다급한 요의에 잠을 깬 우리는 싱크대에 오줌을 누곤 했다. 묵묵히 나의 오줌을 받아 주던 그 싱크대는, 묵묵히 내 치기 어린 말들을 받아 주던 그 선배와 많이 닮았었다. 선배는 내 오물 같은 말들을 수챗구멍처럼 커다란 귀를 열어 다 받아 주곤 했다. 그 당시, 젊은 날의 내 언어는  허공에 뜬, 날것 그대로인 감정의 찌끼와 책임질 수 없는 이성의 오물들이었다. 선배는 그런 나를 조용히 들어 주었다. 선배의 그 귀를 생각하면 내 안의 말들이 땅을 패는 오줌발처럼 마구 쏟아질 것만 같다.


 


이불 속에 바람을 넣어 주던 그 드라이기의 존재를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마, 그 드라이기는 이사오면서 버려졌던 것 같다. 나의 오줌을 묵묵히 받아내던 싱크대도 잊고 살았다. 그 싱크대와 더불어 선배의 존재도 잊고 지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난했지만 힘들었지만, 사실 그리 힘들 것도 초라할 것도 없는 시절이었다. 사랑이 있었고, 선배가 있었기에. 사랑을 잃고, 선배를 잃고 나는 이 글을 쓴다. 오래 전 그녀는 떠났고, 그보다 더 오래 전 선배는 죽었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선배는 세상에 대한 기억을 떠메고 고독하게 갔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몰랐다. 이 생에서 그가 살았던 방식 그대로 마지막까지도 철저히 고독하게 그는 떠났다. 그녀는 두 번이나 자신을 뿌리쳤던 나에게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난 나를 놓아버린 그녀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모두들 내가 떠나보냈고, 내가 놓아버렸는지 모른다. 빌어먹을 내가. 다 추억의 한때가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온전히 나만의 추억이. 아련히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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