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와 전공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민노당 지지와 관련해서, 선거 기간 동안 언론은 이 사건을 연일 시끄럽게 보도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구속됐다고 한다. 사건의 핵심은 공무원의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다. 시대가 변했는데, 법은 여전히 시대의 등 뒤에서 헐떡대고만 있다. 시대를 따라올 생각은 않은 채. 지난 16대 총선에서 시민단체의 낙선, 낙천 운동이 일정 부분 제한받은 것도 변화된 시대에 눈감은 법 때문이었다. 얼마 전 촛불집회도 그랬다.

엄격한 실정법의 적용과 시대 변화에 따른 관용, 우리의 시각은 이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 실정법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분명 이 사건은 처벌 대상이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 2항은 “공무원은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를 하기 위하여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또한, 교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 제3조는 “교원의 노동조합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법률에 근거해,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행위는 엄격히 규제된다.


이런 법률들의 기본 취지는 무엇인가? 정치권의 외압으로부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취지는 상위법인 헌법을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즉,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보호하여 공무원의 직무 행위가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간섭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정치적 외압에 의해서, 공무원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바꾸거나 선거에 직간접으로 동원될 수 있는 위험성을 막는 게 이 법의 근본 취지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 법률들은 공무원의 정치적 행위를 일체 금지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공무원이 직무상의 권한을 남용해서 정치 활동을 하거나 선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필요했을 법들이, 지금에 와서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 자체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법들이 잘 적용되기나 했던가. 온갖 관권 선거에서 수많은 공무원들이 직간접으로 동원되었던 게 우리의 과거다. 정작 권위주의 시대에는 제대로 적용되지도 못한 법률이, 탈권위주의 시대에 ‘축자적으로’ 해석되어 현실을 재단하는 모습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해놓은 법률들은 크게 두 가지의 기능과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기능/측면은 공무원이 직무상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서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공정한 선거를 치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두 번째 기능/측면은 정치적 외압에 맞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첫 번째 기능이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막는 ‘규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 두 번째 조항은 공무원의 정치적 입장을 권력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번 사건은 공무원들이 자발적 의지에서 정치적 의사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두 번째 기능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첫 번째 기능/측면이다.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 것이 과연 공무원이 직무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한 것이냐, 하는 문제. 정치적 입장 표현은 분명코 직무상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한 선거 개입이 아니다. 그 둘의 경계는 분명하다. 물론, 정치적 의사 표명이 직무상의 선거 개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 때문에 정치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억압적이다. 그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경우에는 엄격히 처벌하면 된다. 공무원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정치적 신념은 신념대로 표현하고, 자신의 직무는 직무대로 수행하면 된다. 상식은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에 보장된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아무런 정치적 입장을 취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무원의 직무를 중립적으로 수행하라는 뜻일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검찰의 엄격한 선거법 적용이 형평성에 어긋났다는 지적이 있다. 민노당은 지난 선거 기간에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인 이군현 교총회장과 김영숙 교장은 비례대표후보로 확정된 뒤에야 사표를 냈다고 주장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국가공무원법 제65조 1항 "공무원은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라는 조항에 따라 처벌되어야 한다. 공무원 신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정당에 가입한 것은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다. 이들은 지금 당선자 신분이 되었다. 검찰이 엄격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자 한다면, 한나라당에도 엄격한 법의 잣대를 갖다대야 한다.

 

물론, 이게 핵심은 아니다. 한나라당을 꼭 걸고 넘어가야겠단 물귀신 심정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엄격한 법 적용이 아니라, 자유로운 정치 행위의 보장이다.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법률들이 만들어질 당시의 취지를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변화된 시대 상황을 감안한다면, 전교조와 전공조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얼토당토 않다. 지금 그들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오로지 법대로’가 아니라 자유로운 정치적 활동의 적극적 보장이다. 정치적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하고, 공무원이 편파적으로 선거 업무에 개입하는 경우는 그 경우대로 처벌하자. 그러면 된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위와 권한을 이용해서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원치 않는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공무원이니까, 정치적 행위는 절대 해선 안 된다’는 닫힌 생각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공무원의 직위상의 중립성을 지키면 된다’는 열린 생각으로 시대의 눈길이 옮겨가고 있다. 공무원이 노동자이고 교사도 노동자이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하지만, 일부 신문들은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부득부득 우겼을 때처럼, 그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선 안 된다고 부득부득 우기고 있다. 참 딱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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