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혼자 광화문에 갔다. 가는 길은 조금 쓸쓸했던 듯하다. 가녀린 촛불 하나 들고 혼자 서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일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친구 녀석들은 심드렁하거나, 데이트로 정신없거나, 과외하기에 바빴다. 다들 제 생활의 빠듯함을 핑계 댈 뿐, 촛불집회는 관심 밖이었다. 문득 중국에 가 있는 한 친구가 그리워졌다. 그 녀석이라면 함께했을 텐데. 두말 않고 따라나섰을 텐데. 아니, 같이 가자고 날 이끌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그리움이 한결 더해졌다.
사람과 촛불, 시청 앞 도로는 그 두 가지로 꽉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의 숨결과 촛불의 물결이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팽팽하게 무리지어 있었다. 몸과 몸이 밀착되면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온기가 내 몸에 전해졌다. 약간의 허전함이 나뒹굴던 내 마음 바닥이 아랫목처럼 따스하게 데워지는 듯했다. 그 온기를 건네받으며 사람들 틈에 끼여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로 이용되는 길이 그나마 한적해 보여, 통행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4시간 동안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붙박여 집회에 참여했지만, 다리는 그다지 뻐근하지 않았다. 흥분과 만족 때문이었을까. 잠깐 신기해했다.
그날의 소회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기회를 내서 그곳에 가보는 것뿐이다. 사람들의 온기가 당신의 몸을 훈훈하게 데워 주고, 수많은 빛 무더기가 따스하게 당신의 눈길을 감싸 줄 것이다. 그날의 내가 느꼈던 것처럼. 수많은 촛불들이 내 눈에 박히며 내 안에서 명멸했다. 명멸하면서 점점이 아스라한 무늬를 만들었다. 돋을새김으로 도드라져 있진 않지만,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그런 무늬였다. 그 무늬에 언어의 옷을 입히면, ‘순수’와 ‘열정’이라는 단어가 부족하게나마 어울릴 듯하다. 촛불의 빛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안에 깃든 순수와 열정을 밝히고 불러내고 있었다.
용감하고 생각 있는 몇몇 연예인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권해효, 홍석천, 신해철, 오지혜, 권진원, 안치환, 정태춘 등등. 진중권은 며칠 전 온당하지도 사려 깊지도 못한 한 글에서, “시위에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냐”며 촛불 집회를 폄하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에는 여전히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넘실거려야만 한다고 믿는 것일까. 날 것 그대로의 분노와 과격함이 전시대의 운동 방식이었다면, 절제된 분노와 부드러움은 우리 시대의 운동 방식일 것이다. 스타들의 집회 참여는 변화된 시대의 반영일 뿐이다. 나는 스타들의 집회 참여가 부적절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날 그곳에 모인 이들은 신해철을 보기 위해, 안치환을 듣기 위해 나간 것이 아니었다. 그건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엄연한 사실이다.
잠깐 그 스타들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권해효, 그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이야기하는 남자. 그때부터 그가 그저그런 연예인이 아님을 짐작했다. 그가 확인시켜준 사실, 하나. 세상의 변화란, 변화되지 않는 세상에서 터무니없게 누리는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이들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 홍석천, 그는 커밍 아웃을 감행한 유일한 연예인이다. 그의 행동은 대단히 용기 있는 것이었지만, 방송은 그 용기에 대한 대가로 그를 3년간 왕따시켰다. 누구의 표현처럼, 그는 “자기를 찾고 배우를 잃었”던 것이다. 그가 확인시켜준 사실, 둘. 세상의 변화란, 변화되지 않는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절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이들 말고도, 일반 시민들이 연단에 나와 연설도 하고 하소연도 했다. 아, 김정란. 그녀도 있었다! 침묵이 미덕으로 자리 잡은 문학판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시를 읊었다. 그녀가 거기 있어서 더없이 뿌듯했다. 솔직히 시는 조금 별로였지만, 그 공간이 시에 울림을 불어넣어 주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시나 그림은 때로 그 자체로서가 아닌, 그것이 놓인 공간이 빚어내는, 혹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러내는 감동의 울림으로 덧입혀지기도 한다. 그날 그녀의 시가 그랬다.
올 때와는 달리 갈 때의 나는 무척 뿌듯해했다. 평소 같으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 긴장한 채 뻣뻣했을 나인데, 나의 몸은 불편하기는커녕 오히려 안온했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나의 몸과 정신은 뜨겁게 전율하며 살아나고 있었다. 비록 아주 작은 힘에 불과하지만, 나의 몸이 세상을 밀어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마음속 냉소와 무관심의 얼음장이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저 부드러운 촛불이 얼음 같은 세상을 녹이고 있었다. 낡고 녹슨 것들이 작은 불길 속에서 거듭 타들어갔다. 낡고 녹슨 것들이 타면서 남긴 재가 우리의 노래 속에서 점점이 흩날렸다. 우리는 <나란히 가지 않아도>를 함께 불렀다. 서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내 눈시울에 뜨거움이 일렁였다.
“누군가, 누군가 보지 않아도 / 나는 이 길을 걸어가지요. // 혼자, 혼자라고 느껴질 땐 / 앞선 발자욱 보며 걷지요. //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가도 /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 마음의, 마음의 총을 내려요 / 그 자리에 꽃씨를 심어보아요 // 손 내밀어 어깨를 보듬어 봐요 / 우리는 한 하늘 아래 살지요. // 얼굴 빛 다르고 하는 말 달라도 / 서로 마주보며 웃음질 수 있다면 //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