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눈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의 육체는 내 눈을 파고들고, 이런저런 편집의 과정을 거쳐 관념의 형태로 저장된다.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면, 사랑이 얼마나 시각적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추억은 대개 풍경으로 남는다. 그리고 남아 있다. 


 

사랑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사랑은 냄새를 원한다.

연인들은 대개 그 사람만의 냄새를 알아채고, 냄새로 그 사람을 확인한다. 아주 감각적인 냄새들, 가령 애프터 쉐이브나 향수는 강하지만 속이 텅 비어 있다. 그런 것들 말고, 무취한 가운데 비어져 나오는 살비늘 냄새는 약하지만 속을 울렁이게 만든다. 그 울렁임은 비릿한 바다 내음 앞에서 느끼는 울렁임과 다르지 않다.


 

사랑은 눈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입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 사람에게 던지는 나의 시선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시선만으론 사랑을 매듭지을 수 없다. 사랑은 언어를 요구한다, 반드시. 또한, 끊임없이. 사랑의 언어는, 때때로 언어들의 사랑만을 남긴다. 말들만 요란하고 알맹이는 없는 사랑들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사랑의 말을 끊임없이 주절대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사랑에 대한 집착과 언어에 대한 집착은 가깝고, 닮았다.


 

혀나 입술이 귀에 닿으면, 몸엔 닭살이 돋는다.

귀는 얼굴에 달린 성기다. 그것은 몸의 안테나이고 성애의 피뢰침이다. 귀가 성기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예민함 때문이다. 예민한 것은 상처받기 쉽다. 그래서, 나의 거친 말은 예민한 귀를 통해 흘러들어가 연인의 가슴을 후벼 파고 도려낸다. 나의 이빨이 연인의 귀를 사정없이 물어뜯는 것처럼.


 

사랑을 하면, 혀가 얼마나 대단한 기관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애무할 나이가 되면, 혀의 움직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생전 처음 자유자재로 혀를 놀리는 자신이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귀가 예민하고 조심스런 성기라면, 혀는 부드럽고 거침없는 성기다. 혀뿌리가 얼얼하게 키스를 하고 나면, 피로가 몰려온다. 혀뿌리를 뽑아버릴 듯 달려드는 연인에게서, 얼핏 욕망의 뿌리를 보기도 한다. 그럴 때 삶은 더 노곤해진다.  


사랑은 관념의 체조가 아니다.

그것은 몸과 몸이 만나 섞이는 흐름이다.

그 흐름은 몸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몸과 더불어, 관념과 정서가 흘러들고 흘러간다.

나의 육체와 정신은 그 사람의 육체와 정신에 붙박이고, 또한 그것들과 새끼 꼬듯 엮인다.

그 엮임이 사랑의 황홀이고, 사랑의 추억이다.

감각이 때때로 거짓이고, 몸이 때때로 허망하고, 욕망이 때때로 스산하며 사랑이 때때로 허무하다 해도, 몸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한다.

그 강렬하고 중독성 있는 것을. 


 

 

박민규, <지구영웅전설>의 후기 형식을 빌려다 몇 자 적어보았다. 그 후기의 일부를 여기 인용해본다. 그의 후기와 나의 글은 형식상의 유사성을 제외하곤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박민규의 단편을 읽어보고 싶다. 어디서 좀 구해봐야겠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처음으로 한 것은 마이크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던 세계 헤비급 타이틀매치를 지켜보면서였다. 문득 세계의 귀라도 물어뜯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몇 년 후, 나는 정말이지 소설이란 걸 쓰고 있었다. 그리고, 치과에 다니고 있었다.


앞으론 조심하세요. 의사가 말했지만 당시의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세계에 대해, 이빨에 대해, 하물며 '귀'에 대해서라니. 충치를 뽑고 돌아온 그날 밤의 뉴스에선, 등에서 사람의 '귀'가 자란 쥐가 토픽으로 소개되었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닌걸. 맥주를 마시며 나는 중얼거렸다. 둘러보니 '귀'는 어디에나 있었다. 마치 치과처럼, 아니 더 많이.


그러던 어느 날 샤워를 마친 내 등에 하나의 '귀'가 자라나 있는 것을 아내가 발견했다. 긴장하고, 정말 열심히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제법 귀지를 파줘야 할 정도로, 어느날 문득 그것을 자라 있었다. 말 그대로의 '귀'.


말만 들었을 뿐, 나는 한 번도 그 '귀'를 본 적이 없다. 거울을 이용해 몇 번 시도를 하기는 했지만, 먀치 달팽이의 눈처럼 '귀'는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있긴 있는 거야? 라고 물으면, 아내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본 바를 일러주고는 했다. 차분한 아프리카 코끼리의 귀보다는 작고, 흥분한 인도 코끼리의 귀보다는 커. 아프리카와 인도, 그 사이의 인도양(印度洋)만큼이나 소설은 깊은 것이었고, 나는 과연 인도양 코끼리 정도가 될 만큼이나 굼뜨고 무거웠다. 인도양 코끼리 같은 건 어떤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당선 통보를 받은 것은, 내가 그 '귀'를 실을 카누인지 뗏목인지를 겨우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두 귀를 의심하는 대신, 나는 그 '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걸 싣고 갈 수 있을까? 갑자기 눈앞에 인도양이 펼쳐진 느낌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타이슨이 은퇴를 눈앞에 둔 선수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발신자는 더, 아이언, 마이크, 타이슨이었다. 축하해, 바톤 터치야! 편지에는 짧게, 그렇게만 적혀 있었다. 좋아, 기꺼이! 라는 짧은 답장을 쓰고 난 후에야,, 그가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진짜 이유를 나는 겨우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의견을 나누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거란 생각이다.


目...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