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접경,

그 접경의 맞물림과 엉킴은,

나를 끌어당기고 매혹시킨다.

특히나, 그 접경이 ‘나’와 내 ‘밖’의 것들 사이의

스밈과 얽힘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도시의 경사, 도시의 고도, 도시의 굴곡은 그대로 근육이 되어 육체 속에 새겨진다.

                                                                                                   김영하, <포스트 잇> 중에서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가 명멸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 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나간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

                                                                                     김훈, <자전거 여행> 프롤로그 중에서

 

 시간은 현실을 기억 속에 실어 나른다. ... 시간에 의해, 내 몸 바깥 현실의 물질성은 내 뇌 안에서 관념으로 해체되어 갈무리된다. 그러나 그 기억이라는 관념은 현실을 얼마나 일그러뜨리는지 것인지...

                                                                                            고종석, <엘리아의 제야> 중에서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김훈, <풍경과 상처> 서문 중에서



나를 그 접경 언저리로 불러낸다.

김영하에서 김훈을 거쳐 고종석에 이르고, 다시 김훈으로 이어지는 이 문장들은,

내 밖의 것들이 나의 육체로, 나의 정신으로, 나의 심연으로

서서히 육박해 들어와, 그것들 속에 점점이 박히는 과정에 따라 배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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