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제이미 제파 지음, 도솔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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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여성인 제이미가 결혼을 앞두고 갑작스런 마음의 변화로 부탄의 교사자리를 지원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떤 선도 넘어보지 않은 삶, 그대로 따라가면 평탄할 것만 같은 삶을 살던 여자에게 교사모집 광고는 신비한 힘으로 일생의 첫 해외여행을 떠나게 한다. 

책 제목에 여행이란 말이 들어가 있지만 이 글은 여느 여행기와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서양인이 동양의 아이들, 그것도 엄청난 오지에 속하는 나라의 아이들을 가르치러 간 이야기라고 하면 왠지 헐리우드식 사랑의 학교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런 우려를 가졌지만 다행히 제이미는 자신의 학생들을 가난하다고 측은히 여기거나 미개하다고 생각하며 서양의 문화를 전파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다. 

식구들과 약혼자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부탄에 도착했지만 정작 오리엔테이션을 거치고 발령지에 도착해서 얼마간까지  제이미의 머릿속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런 상황이 십분 이해가 된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뭐하자는 짓이지? 나라도 그런 마음이 들 것 같다.
하지만 친구집을 찾아가다 길을 잃고 자신 속의 어둠에 사로잡혀 앉아 있을 때 때마침 지나가던 자신의 학생과 그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건을 계기로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제이미는 자신이 왜 부탄을 그토록 사랑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다. 자신이 여행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은 여기에 남지 않을 사람이므로 그 곳을 이상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볼 줄 안다.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의 입장으로 바라만 보아야 하는 부탄의 복잡한 여러 "상황"들에 대한 그녀의 조심스런 의견들도 거부감 대신 공감을 준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제이미가 불교의 진리를 몸소 체득하고 실천하게 되는 점이다(물론 그녀는 불교에 대한 연구도 열심이다). 틱낫한 스님이나 달라이 라마의 책을 통해 많이 들었던 진리들은 마음과는 달리 생활속에서 실천하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녀는 부탄생활에서 자연스럽게 그것이 몸에 배이게 되는 것이다!!! 부럽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을 여행기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제이미는 부탄에서의 3년을 보내고 진정한 자신의 집이 그 곳이라 느끼고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으니까...집으로 돌아갔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여행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는 여자들...한비야씨도 정말 부러웠는데 제이미까지...그래서 이 여행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가.

잘 알지 못했던 부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특히 자연 그대로의 자연!), 러브스토리까지 겸비한 정말 읽어볼 만한 여행기...강추!!

(흠...근데 제이미는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궁금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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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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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은 세번째로 읽는 코엘료의 책이다.

책의 서두에 코엘료는 독자가 원하는 글만 쓰기 보단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하나의 화두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야만 할 필요성에서 이 글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며 시작한 11분의 주제는 일단 성(性)에 대한 것으로 보였다(뒤로 갈수록 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코엘료가 말하고자 한 성이라...그것도 여성의 시각에서...흥미가 간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코엘료는 마리아라는 여성의 시각을 따라가는 구조를 취하면서 중간중간 그녀의 일기라는 글을 끼워넣고 있다. 이 방식 자체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이야기 속에서 제대로 정제하지 못함을 메꾸려는 의도 같아 거슬렸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우화적인 이야기는 작가의 개입이나 설명없이 그 하나로써 매끈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그 만큼 깔끔한 이야기를 다 표현하지 못한 게 아닌가..그래서 잔소리처럼 끼워둔게 아닌가 싶다.
후기를 읽어보니 코엘료는 나름대로 많은 여성들의 조언을 받았고 결정적인 힌트를 준 여성에게도 감사하고 있다...역시 코엘료 혼자서 여성의 시각이라는 구조를 소화하기는 힘들었을게다.

마리아가 사람들이 과연 11분에 목을 매며 살아가는 것인지 탐구하고 고통을 통한 쾌락의 추구에 대한 경험까지 거치면서 결국 소유하지 않는 사랑의 기쁨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는 나름의 내밀한 구조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하지만 이 책으로 코엘료를 처음 알았다면 그 결과는 아주 좋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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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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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을 읽을 때만 해도 폴 오스터는 마음에 드는 작가였다. 하지만 뉴욕 3부작에 다시금 3주정도 발목이 잡혀있다 보니 이젠 오스터의 다른 책을 내가 읽어낼 수 있을지 두려워진다..

알라딘에 찾아보니 별점도 꽤 높다...후아...대단한 독자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읽으면 읽을 수록 머릿속이 뒤엉켜 버리는 느낌이었는데..어렵기도 어려운 데다 하도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정신이 쏙 빠지는 거 같다.

이 책엔 누군가를 미행하고 감시하고 추적해가는 3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새로운 추리소설 이라느니 하는 서평은 그냥 잊어라...절대 추리소설이 아니다...
앞 이야기에 나왔던 인물이 뒷 이야기에 언급된다던가 슬쩍 흘렸던 이야기가 후에 비슷하게 전개된다던가 하는 구조는 재미있지만, 3주나 읽고 있다보니 기억력만 더 가물가물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만 누군가를 감시하다가 혹은 쫓아가다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감시하는 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다가도 곧 자신과 동일시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점점 누가 나고 누가 너인지 희미해지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렇게 자신을 잃을 때까지 또 극한까지 내달은 후에 다시 자신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들이 조금만 더 공감이 갔더라면 이해도 더 쉬웠겠지만...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오스터를 미워하지는 않으련다. 머리는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달의 궁전에서 처럼 전체적인 인상만큼은 강하게 남는 책이었으니.

다음 책은 좀 더 쉬운 것으로 골라 머리를 좀 식히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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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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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를 읽을 즈음엔 누군지도 몰랐던 작가 김영하의 예전 책을, 그러니까 아주 유명한 예전 책을 읽어봤다.
김영하의 팬인 언니가 이 책이 나았다고 하기에 내심 기대를 하고서.

한 마디로 <오빠가..>보다 훨씬 잘 읽히는 편이라고 할까?
순전히 내 느낌이지만 "무거움"이 덜한 것 같다...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무게는 그대로일 지라도 표현한 결과의 무게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술술 읽히는 소설이야말로 무식한 나같은 독자에게 최고의 글이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재기발랄해서 마음에 들었고, 나머지 소설들은 뭐랄까..일상속의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오헨리의 단편을 읽고 있을 때의 느낌(마지막 잎새 말고 굉장히 짧은 다른 단편들)...하지만 오헨리는 따뜻한 편이고 김영하는 좀 더 차갑다고 해야 하나.

작가도 나이가 들면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고 펜도 더 무거워지고 그러나 보다.
작가도 뭣도 아닌 나자신도 이렇게나 우울에 지쳐가는데 말이다...
하지만 더 나이를 먹다 보면 무거워졌던 펜이 날개가 달린 듯 다시 술술 읽히는 글을 써내려가는 날이 올 것이다...경지에 이르렀다고들 하는 그런 거.

그런게 또 나이듦의 맛이겠지...김영하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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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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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이 책에 발목을 잡힌게 3주 가까이 된다..하지만 절대로 재미없단 이야기가 아니다.
폴 오스터는 대단한 이야깃꾼인것 같다. 세 남자의 이야기가 숨이 찰 정도로 쏟아져 나오니까.

달이 기울었다가 차고, 다시 기울고 하는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갔다가 다시 새로운 삶으로 되돌아 온다. 비록 그 새 삶이 더 정화된 좋은 삶은 아니더라도.
절망이라는 녀석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이 책은 결코 궁상맞다거나 우울하지 않다.
마치 오헨리의 단편을 읽고 있을 때처럼 판타지같은 묘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을 분리시킨 냉소적인 유머가 마음에 들었다.

이 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이야기일까?
그러기엔 주인공 3명 뿐만 아니라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삶과 사연들이 너무도 세세하고 생생하다...폴 오스터가 이야기 솜씨가 굉장한 것이거나, 주변에 모델로 삼은 사람이 있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M.S.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만큼은 아니지만 참 정이 가는 주인공이다.
어릴때부터 가지고 살았던 그 끔찍한 외로움, 나약한 본성, 유머와 궤변을 늘어놓는 버릇들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은 그런 사람.

에핑의 동굴을 찾으러 떠난 서부에서 차를 잃고 태평양과 맞닿은 미서부 해안까지 걸어가서 떠오르는 해를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는 M.S...그는 또다시 새로운 삶을 얻었다.
절망 때문이든 희망 때문이든 갈 수 있는 끝까지 가보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삶을 얻고자 하는 마음...나에게도 간절히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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