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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엔딩 (양장)
김려령 외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평점 :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요."
『아몬드』『페인트』『유원』『우아한 거짓말』…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작품, 모두가 기다려 온 그 뒷이야기!
외전을 읽는 행운이 내게 왔다.
가끔 우리는 소설을 읽고나서, 다른 한편을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두 번째 엔딩』으로 시원하게 외전을 읽어서 좋았다.
사실 저 외전들의 실전은 아직 하나도 읽은 상태가 아니어서 조금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내가 알던 작가들에 대한 반가움과 『두 번째 엔딩』을 읽고서 꼭 찾아서 읽고 싶은 책들이 생긴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언니의 무게〉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아픔은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듯.
<언니의 무게>를 읽으며 나 또한 그런 방식은 아니지만, 가족을 잃었던 마음이 있어서 만지같고, 엄마같고, 그런 마음으로 읽어냈다.
<초보 조사관 분투기>
SF는 여전히 내게는 어렵다는 선입견에 한 겹 더해준 글이었다. 이해력이 워낙 떨어져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이야기였다.
<보통의 꿈>
보통들 바라는 거. 미래도 그런 걸 바랄 뿐이었다. 보통의 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링그에서 뛰는 것. 온 힘을 다하는 것... 대단할 거 하나 없는 꿈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이었다.
참 재밌고, 감동적이고 와닿는 것도 많은 그런 <보통의 꿈>이었다. 거기에 마지막에는 긴장감마저 확 들고, 다시 풍선 바람빠지듯 긴장이 휴~ 하고 풀리는 경험도 하게 하는 등 짜임새가 좋았던 <보통의 꿈>이었다.
<나는 농부 김광수다>
사흘간의 베트남 여행은 내 안에 있던 울타리 하나를 허물었다.
아빠의 말이 그 남자가 날린 주먹보다 더 아프고 화가 났다.
읽는 내내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타인의 주먹보다 아프지 않은 말을 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야기는 조금 진부한 면도 농촌 계몽 소설의 느낌도 나고, 그런게 요즘 농촌의 현실인 것도 알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한번 쯤 생각해볼 문제가 가득있어 생각하게 만든 <나는 농부 김광수다>였다.
<상자 속의 남자>
불행만 나열한 듯 쓸쓸한 삶. 그 삶이 우리의 것이 됐다.
누군가가 고마워할 만한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더 위험해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뜻이니까.
어떻게 하든 누군가는 아프게 된다고.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는 기쁘게 되는 거야.
삶은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위안 삼을 수 있는 점은 아픔도 기쁨도 한 종류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거다.
누군가를 위해 나의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론은 나는 그러기 힘들 것 같다는 것. 씁쓸해지는 기분.
그래도 그 아이를 위해 희생한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마음에 위로가 되었던 <상자 속의 남자>였다.
<모니터>
" ~ 밖에 아이들처럼, 때론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면서 자연스럽게 커도 된다고 말해주려고요. 말도 좀 안 듣고……."
나는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어려운 그런 류의 소설이었다.
<초원조의 아이에게>
그저 누군가 소리 내어 말하기 전까지 관습에 불과했음을 알아서였다.
날개는 제 일을 다했어요. 다만 내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일찍 초원조 곁으로 갈 뿐이야.
당신은 언젠가 나 대신 다른 사람을 구할 테니까요.
나에게 미처 못 해 주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도와줘요…….
그의 마음속에는 이시아가, 시와의 마음속에는 벽안인이, 흉터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을.
어떤 인연은 생의 끝까지 그 막다른 골목까지 함께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인연과 나누지 못한 삶을 다른 이와도 정답게 나누며 살아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흉터처럼 남아있어도 그 흉터를 안은 채 새로운 인연을 보둠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한 <초원조의 아이에게>였다.
<서브>
두 사람이 그 모든 일들을 자세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너무 행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건 기대가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엄마, 아빠는 당시에 느낀 행복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왜 서로를 한심해하는 방식으로 좌절을 견디게 된 걸까.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 진 후에 그 아이에게 미안해하며 살면 안 되는 걸까.
이런 엄마와 아빠 밑에 있는 상인과 인하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부모보다 더 나은 아이도 우리 주위에는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슬픈 자화상같은 모습이 <서브>에 담겨 있어 응원하며 화가나며 그렇게 <서브>를 읽었다.
정식 출간된 『두 번째 엔딩』의 표지를 보니 예쁜 단장이 꽤나 잘 어울려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