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정육 동양미술 에세이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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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소양이 미천한 나는 구도나 필법이니 미술 용어들을 들먹이면 할말을 잃어버린다. 어릴 적부터 미술에는 소질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미술과 관련된 책들도 거의 읽은 적이 없다. 최근에 1, 2년 사이에 읽은 책이라면 ‘빈 센트 반 고흐’,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정도며, 미술관에도 기껏해야 1년에 한 두 번 갈 정도다.

평소 미술 관련 책들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지만, 나 같은 미술 문외한들이 부담 없이 재미 있게 읽을 만한 책들도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아주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은 40대 초반의 미술평론가가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에피소드, 어린 시절의 추억, 삶에 대한 단상을 들려주는 에세이다. 그 속에는 결혼 생활의 갈등, 자전거 배우기, 목욕탕 아줌마와 오뎅가게 아줌마, 뻐드렁니 등 자신의 일상을 너무나 솔직하게 들어낸다. 어찌 보면 이야깃거리가 너무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이야깃거리에 동양화를 끌어들인다.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세 나라의 그림들이다. 일상 속에서 가슴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거나 뭔가를 일깨우는 순간을 접할 때마다 거기에 어울리는 그림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우리의 일상과 멀어진 형식적인 미술을 뒤로하고 삶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미술과 만나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미술을 보는 관점이 지극히 주관적으로 치우쳐 미술의 진정한 가치를 놓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헛된 걱정이다. 저자는 10년 동안 미술평론가로 내공을 쌓아 왔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주관적으로 들리지만 그 속에는 객관성이 담보되어 있다. 저자는 작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훤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도인 저자가 가고자 하는 길은, ‘아침밥’이란 제목의 마지막 에세이에 삽입되어 이는 ‘연화수금도’에 그대로 응축되어 있는 듯하다. 이 작품은 12폭 크기에 아름답게 핀 연꽃과 물고기, 새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화사한 그림이다.

저자는 이 그림에서 “연꽃은 가장 더러운 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이치를 일깨운다. 저자도 기쁨보다 고뇌가 많은 현실과 그림을 사랑하는 삶 속에서, 쉼 없이 자유로운 정신 세계를 찾아가는 구도자이고 싶은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따뜻한 사연과 하나가 된 김홍도, 신윤복 등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의 그림을 다시 보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일본, 중국 작가들의 대작들과 만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저자가 박물관에만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시대 우리 화가들 우리의 일상으로 불러들인 지난 10여 년간의 작업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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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 책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크리스티아네 취른트 지음, 조우호 옮김 / 들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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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이라니. 참으로 야심차고 만인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솔깃한 제목이다. 만약 저자가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았다면 부분을 전체로 보는 오류에 빠진 것이고 출판사가 달았다면 철저한 홍보판매 전략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세상은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라고 치자. 이 나무에는 커다란 두 가지가 뻗어 있고 그 가지들에 많은 잔가지와 입들이 붙어 있다. 둘 중 사람의 눈 높이에서 볼 때 굵은 줄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서양’이다. 그에 비해 가는 줄기가 ‘동양’이다. 그런데 나무에 오르다 보면 ‘서양’은 멀지 않아 끝이 보이고, 그에 비해 ‘동양’은 그 줄기가 아득히 하늘로 뻗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지식의 바다에서 방향을 찾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섰다”라며 집필 동기를 밝혔고, “현대 세계를 이해하려면 서양 세계를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현재 세계 문화의 주류는 서양, 특히 유럽에서 발전된 것이다. 그러나 서양은 동양에게 엄청난 은혜를 입고 있다. 단적으로 활자의 광범위한 보급을 가능케 한 ‘종이’는 후한의 채륜이 발명했으며, 무력을 앞세운 서양의 세계 제패를 가능케 한 ‘화약’도 중국에서 먼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상정고금예문’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저자는 서양 문화유산을 철저히 배우고 그 우수성에 주목한 반면, 동양 문화유산에 대한 소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그 점이 이 책이 가지는 근본적인, 태생적인 한계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를 제외하면 모든 이야기에 공감을 보낼 수 있었다.

우선 우리가 지식사회, 정보사회에 살면서 전문지식의 중요성이 역설되지만 정작 세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양이 부족해지는 문제점을 지적한 점, 그리고 매체의 범람 속에서 세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서양문화에 큰 발자취를 남긴 점과 현대 세계에까지 이어지는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성서부터 해리포터까지 100여 권의 책들을 골라냈다. 이 책들을 시대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세계, 사랑, 정치, 성, 경제 등 15가지 테마로 묶었다.

선별한 한 권의 책마다 작게는 1, 2페이지에서 많게는 10페이지를 넘지 않게 다뤘다. 이처럼 위대한 저작을 충분히 소개하기에 부족한 분량이지만, 저자는 알기 쉽고 충실하고 간결하게 내용을 요약분석했으며 반론도 소개했다. 특히 오늘날의 세태나 위대한 저자들의 에피소드, 유명한 문장 등을 활용하여 처음 접하는 책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요리했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지 않아 생소한 책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앞으로 서양 고전을 고르는데 좋은 지침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또 책장을 한장씩 한장씩 넘기면서 왜 그렇게 읽지 않은 책들이 많고, 편식해 왔는지 많이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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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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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샐린저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2003년 12월 5일 씀.

이 책은 차라리 고교시절에 만났더라면 더 좋을 뻔 했다. 순수문학은 지성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감수성을 살찌우고 정서를 풍부하게 만드는 힘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세상풍파를 겪을 때보다 인생의 꿈과 사랑에 매달리는 청소년기에 읽은 것이 더욱 적합할 듯싶다.

괴테가 끌어 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던 20대에 사랑의 열병을 다룬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고등학교 때 읽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주체하지 못했다. 사랑에 빠져 있던 괴테는 그 화려하고 눈부신 묘사로 이루어진 문장들로 감동을 극대화시켰다.

감수성이 많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담담하게 읽었다. 1인칭 시점에서 섰기 때문에 작가의 자화상을 차분하게 따라가 보니 정말 흐름이 매끄럽고 한결 같은 주제 의식을 안고 있었다.

16세의 고독한 영혼, 주인 홀든 콜필드의 정체성은 ‘냉소’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결백증’이 있는 그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학교와 사회, 친구와 어른들에게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신물을 느낀다. 작가는 그의 말투나 동작, 내면 묘사도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도 그의 신랄한 목소리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 적이 더 많다. 콜필드가 자동차에 대해 말한 부분을 들어보자.

“대부분의 인간들을 보라구, 그들은 자동차에 대해 미쳐 있다, 이 말이야. 조금이라도 긁힐까 봐 걱정이지. 1갤론의 연료로 몇 마일을 달릴 수 있냐 하는 것이 언제나 화제거든. 새 차를 사고는 곧 또 새 것과 바꿀 생각이나 하고. 나는 차를 증오해. 자동차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차라리 말을 갖고 싶어. 적어도 인간적이야. 말은 적어도…..”

혼돈에 빠져 현실 도피를 꿈꾸는 콜필드의 목적지는 순수함이다. 그것을 대변하는 사람은 여동생 천진난만한 여동생 피비다. 콜필드는 세상 모든 것이 싫지만 피비와 함께 할 때면 언제나 기쁨과 행복감에 젖는다.

책을 읽기 전에 책 제목인 <호밀밭의 파수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호밀밭에서 어린이들을 지키는 사람을 뜻했다. 확대해서 보자면 사람과 세상이 타락으로만 치닫지 말고 어린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순수함’을 지키자는 작가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다.

어찌 보면 샐린저는 통속소설로 빠질 우려가 다분한 플롯과 주제를 선택했지만, 매끄럽게 읽히는 글쓰기와 지성, 재기 발랄한 표현력으로 잘 극복했다. 이 소설이 미국 문학에서 엄청난 위상을 자랑하는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색다른 감동과 현대 사회의 그늘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 훌륭한 배우는 자신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너무 의식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망치고 만다.(176쪽)

★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277쪽)

★ 어떤 일이건 개의치 않겠다. 다만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곳이면 된다. 그곳에서는 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할 참이었다. 누구든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용건을 종이 쪽지에 써서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얼마 후엔 그렇게 하는 것도 귀찮아질 테니까 나는 평생 동안 누구와도 말하지 않은 채 지내게 될 것이다. 모두 나를 가련한 귀먹은 벙어리로 여기고 나 혼자 있게끔 내버려둘 것이다.”(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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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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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한문화 펴냄.
2003년 12월 3일 씀.

‘미국 내에서 백 만부 판매, 전 세계 9개 국어로 번역 출간된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
책 표지에 또렷이 인쇄된 이 한 줄의 글이 나의 눈을 유혹했다.

오늘날 우리는 최고, 최다, 최대 등 어떤 분야에서든 한계를 뛰어넘는 사실이 발생하면 거기에 현혹당한다. 거기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인다. 나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인간이란 존재의 불완전성이 완벽하고 무한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는 걸까?

어찌되었건, 글 쓰기에 대해 관심이 다분한 나는 지금까지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대학 다닐 때 논문 잘 쓰는 방법을 다룬 책을 읽은 다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면서 우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언제나 꾸준히 출판되고 있는 처세서나 성공스토리 등이 ‘인생 전략서’라고 한다면, 이 책은 ‘글쓰기 전략서’다. 수십 년간 선(禪) 명상을 해온 이채로운 경력의 작가 나탈리 골드버그는 자신만의 글쓰기 핵심을 수십 가지로 선별해 확신 있는 목소리와 간결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런데 그 핵심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들어보았거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쓰고 또 쓰라, 멈추지 말고 계속 쓰라, 나태함과 싸우라, 몰입해라,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고 또 읽어라, 글과 자신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라, 고독과 외로움을 극복하라, 평가하는 잣대를 가져라……

저자는 글쓰기가 정신을 건강하게 해주고 인생을 충실하게 만든다고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작가뿐 아니라 확신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저자의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목소리가 가장 와 닿았다. 누구나 노력하고 도전하면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계속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핵심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글쓰기를 갈고 닦으면, 나도 흡족한 마음으로 나만의 진실한 글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게 한다.

앞으로 손에 닿은 곳에 두고 틈틈이 필요한 부분을 읽으며 나의 글쓰기에 적용해 보고 싶다.

★ 당신의 글쓰기를 누르던 자아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인간적 감정과 인생의 단면이라는 파도를 타고 더 큰 조류를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29쪽)

★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마음을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가져가는 과정이다.(32쪽)

★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당신이 아무리 훌륭한 대가 열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68쪽0

★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작가는 의미 없어 보이는 삶의 작은 부분들마저도 역사적인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89쪽)

★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도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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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내 방 태학산문선 109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 태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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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지음.
태학사 펴냄.
2003년 11월28일 씀.

지금까지 허균(1569~1618)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사실뿐이다. 양반가문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자신의 신분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하고, 결국 자신의 규정하는 시대와 현실의 부조리에 과감히 맞서 부패한 권력을 타도하고 시대의 변혁을 꿈꾸었다.

허균이란 인물에 대해 좀더 알아보니, 사회개혁가이자 뛰어난 시인이지, 훌륭한 비평가로서 살았다. 허균은 친가와 외가 양쪽으로부터 엄청난 책을 물려받았고 역사상 손꼽히는 독서가다. 또 놀라운 암기력의 소유자로 주위 인물들의 문집을 엮어 오늘날에 전해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의 부조리를 꿰뚫어 보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구축한 그는 관직생활에서 임명과 파직을 반복하였고 1616년 역모죄 시비가 발단이 되어 1618년 저자거리에서 처형을 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누추한 내 방’은 허균의 혁명적인 글쓰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글 속에서 민중을 억압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소수자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글쓰기 역시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사유와 삶이 잘 투영되어 있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형식과 표현, 내용을 추구하고 있다.

이 책에는 척독(尺牘)이라는 짧은 편지글과 일상의 산문, 독서론, 논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려 있다. 시대에 대한 그의 답답한 심정과 자유로운 정신은 ‘대장부의 삶’이란 제목의 편지글의 끝머리에 잘 나타난다.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나는 겁니다. 공께서 보시기에 제 혀가 아직도 붙어 있는 것 같습니까? 큰 골짜기의 용을 괴삐와 쇠사슬로 묶어 두려 하지 마십시오. 진실로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또 산문 ‘누추한 내 방’에서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방을 묘사하지만 정신 세계만은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가롭게 숨어살며, 천지와 고금을 살핀다. 사람들은 누추한 방이라 말하면서, 누추하여 거처할 수 없다 하네. 내가 보기엔, 신선이 사는 곳이라, 마음 평온하고 몸 편안하니, 누추하다 뉘 말하는가”

글쓰기에 있어서는 우선 인위적인 수식어를 덧붙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남의 문장을 본뜨거나 답습하거나 표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논설에서는 배움이나 인재 등용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 세상을 일깨우고 있다. 내가 느낀 허균은 언제나 현실에 비판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문하에 있어서도 이태백이나 도연명, 소동파 등과는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그것은 역시 엄청난 독서와 깊은 사색, 굴곡 많은 인생의 경험이 가져다 주는 산물일 것이다.

★ 나는 세상에 곤액을 당하여 관직 생활은 오히려 쓸쓸하여 장차 벼슬을 버리고 영동으로 돌아가서 만 권 책 속에 좀벌레가 되어 남은 생을 마치려 한다.(119쪽)

★ 아! 사람의 일이란 영원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번성함과 쇠미함이 번갈아 바뀌는 법이다. 이것은 예부터 똑 같은 것이니, 성인과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면할 수 없는 것이다.(133쪽)

★ 어찌하여 산림초목에 보배를 품고 팔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으며 낮은 관직에 머물러 있는 영재는 끝내 자신의 포부를 시험할 수 없는 자가 또한 많이 있는가. 그러니 인재를 모두 얻기도 어렵지만 그들을 등용하기란 더욱 어렵다는 말을 믿게 된다.(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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