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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J.D. 샐린저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2003년 12월 5일 씀.
이 책은 차라리 고교시절에 만났더라면 더 좋을 뻔 했다. 순수문학은 지성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감수성을 살찌우고 정서를 풍부하게 만드는 힘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세상풍파를 겪을 때보다 인생의 꿈과 사랑에 매달리는 청소년기에 읽은 것이 더욱 적합할 듯싶다.
괴테가 끌어 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던 20대에 사랑의 열병을 다룬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고등학교 때 읽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주체하지 못했다. 사랑에 빠져 있던 괴테는 그 화려하고 눈부신 묘사로 이루어진 문장들로 감동을 극대화시켰다.
감수성이 많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담담하게 읽었다. 1인칭 시점에서 섰기 때문에 작가의 자화상을 차분하게 따라가 보니 정말 흐름이 매끄럽고 한결 같은 주제 의식을 안고 있었다.
16세의 고독한 영혼, 주인 홀든 콜필드의 정체성은 ‘냉소’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결백증’이 있는 그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학교와 사회, 친구와 어른들에게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신물을 느낀다. 작가는 그의 말투나 동작, 내면 묘사도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도 그의 신랄한 목소리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 적이 더 많다. 콜필드가 자동차에 대해 말한 부분을 들어보자.
“대부분의 인간들을 보라구, 그들은 자동차에 대해 미쳐 있다, 이 말이야. 조금이라도 긁힐까 봐 걱정이지. 1갤론의 연료로 몇 마일을 달릴 수 있냐 하는 것이 언제나 화제거든. 새 차를 사고는 곧 또 새 것과 바꿀 생각이나 하고. 나는 차를 증오해. 자동차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차라리 말을 갖고 싶어. 적어도 인간적이야. 말은 적어도…..”
혼돈에 빠져 현실 도피를 꿈꾸는 콜필드의 목적지는 순수함이다. 그것을 대변하는 사람은 여동생 천진난만한 여동생 피비다. 콜필드는 세상 모든 것이 싫지만 피비와 함께 할 때면 언제나 기쁨과 행복감에 젖는다.
책을 읽기 전에 책 제목인 <호밀밭의 파수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호밀밭에서 어린이들을 지키는 사람을 뜻했다. 확대해서 보자면 사람과 세상이 타락으로만 치닫지 말고 어린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순수함’을 지키자는 작가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다.
어찌 보면 샐린저는 통속소설로 빠질 우려가 다분한 플롯과 주제를 선택했지만, 매끄럽게 읽히는 글쓰기와 지성, 재기 발랄한 표현력으로 잘 극복했다. 이 소설이 미국 문학에서 엄청난 위상을 자랑하는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색다른 감동과 현대 사회의 그늘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 훌륭한 배우는 자신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너무 의식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망치고 만다.(176쪽)
★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277쪽)
★ 어떤 일이건 개의치 않겠다. 다만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곳이면 된다. 그곳에서는 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할 참이었다. 누구든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용건을 종이 쪽지에 써서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얼마 후엔 그렇게 하는 것도 귀찮아질 테니까 나는 평생 동안 누구와도 말하지 않은 채 지내게 될 것이다. 모두 나를 가련한 귀먹은 벙어리로 여기고 나 혼자 있게끔 내버려둘 것이다.”(2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