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한 내 방 태학산문선 109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 태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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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지음.
태학사 펴냄.
2003년 11월28일 씀.

지금까지 허균(1569~1618)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사실뿐이다. 양반가문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자신의 신분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하고, 결국 자신의 규정하는 시대와 현실의 부조리에 과감히 맞서 부패한 권력을 타도하고 시대의 변혁을 꿈꾸었다.

허균이란 인물에 대해 좀더 알아보니, 사회개혁가이자 뛰어난 시인이지, 훌륭한 비평가로서 살았다. 허균은 친가와 외가 양쪽으로부터 엄청난 책을 물려받았고 역사상 손꼽히는 독서가다. 또 놀라운 암기력의 소유자로 주위 인물들의 문집을 엮어 오늘날에 전해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의 부조리를 꿰뚫어 보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구축한 그는 관직생활에서 임명과 파직을 반복하였고 1616년 역모죄 시비가 발단이 되어 1618년 저자거리에서 처형을 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누추한 내 방’은 허균의 혁명적인 글쓰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글 속에서 민중을 억압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소수자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글쓰기 역시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사유와 삶이 잘 투영되어 있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형식과 표현, 내용을 추구하고 있다.

이 책에는 척독(尺牘)이라는 짧은 편지글과 일상의 산문, 독서론, 논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려 있다. 시대에 대한 그의 답답한 심정과 자유로운 정신은 ‘대장부의 삶’이란 제목의 편지글의 끝머리에 잘 나타난다.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나는 겁니다. 공께서 보시기에 제 혀가 아직도 붙어 있는 것 같습니까? 큰 골짜기의 용을 괴삐와 쇠사슬로 묶어 두려 하지 마십시오. 진실로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또 산문 ‘누추한 내 방’에서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방을 묘사하지만 정신 세계만은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가롭게 숨어살며, 천지와 고금을 살핀다. 사람들은 누추한 방이라 말하면서, 누추하여 거처할 수 없다 하네. 내가 보기엔, 신선이 사는 곳이라, 마음 평온하고 몸 편안하니, 누추하다 뉘 말하는가”

글쓰기에 있어서는 우선 인위적인 수식어를 덧붙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남의 문장을 본뜨거나 답습하거나 표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논설에서는 배움이나 인재 등용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 세상을 일깨우고 있다. 내가 느낀 허균은 언제나 현실에 비판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문하에 있어서도 이태백이나 도연명, 소동파 등과는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그것은 역시 엄청난 독서와 깊은 사색, 굴곡 많은 인생의 경험이 가져다 주는 산물일 것이다.

★ 나는 세상에 곤액을 당하여 관직 생활은 오히려 쓸쓸하여 장차 벼슬을 버리고 영동으로 돌아가서 만 권 책 속에 좀벌레가 되어 남은 생을 마치려 한다.(119쪽)

★ 아! 사람의 일이란 영원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번성함과 쇠미함이 번갈아 바뀌는 법이다. 이것은 예부터 똑 같은 것이니, 성인과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면할 수 없는 것이다.(133쪽)

★ 어찌하여 산림초목에 보배를 품고 팔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으며 낮은 관직에 머물러 있는 영재는 끝내 자신의 포부를 시험할 수 없는 자가 또한 많이 있는가. 그러니 인재를 모두 얻기도 어렵지만 그들을 등용하기란 더욱 어렵다는 말을 믿게 된다.(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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