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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선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덕무(李德懋, 1741~1793). 나는 그가 좋다. 그의 삶이 마냥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그가 결코 화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훼예포폄(毁譽褒貶)에 초연한 채 소박하고 우직하게 그리고 묵묵히 선비의 길을 일생 동안 관철했기 때문이다.
뼈저린 가난과 병마를 벗삼아 오로지 책만 읽었던 젊은 시절이나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규장관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되어 벼슬 생활을 하던 시절이나 한결 같은 인품으로 일관한 고결한 인격자다.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법이 없는 진실한 휴머니스트였다.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선비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막강한 신분제의 사슬 속에서 많은 위대한 인물들은 신음해야 했다. 이덕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왕족 출신이지만 부친이 서자였기 때문에 그 또한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세속적인 출세를 바라지 않고 철저한 독서로 학문을 배우고 자기 수양을 통해 내면을 갈고 닦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말했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하여도 잘난 척 하지 않았으며, 오직 책 보는 일만을 즐거움으로 삼았기에 춥거나 덥거나 배고프거나 병드는 것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선인들의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책에 미친 바보’라는 소품에 있는 이 글은 이덕무의 삶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그의 친구들은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이다. 그와 30년 동안 우정을 나눈 연암 박지원은 그자 죽자 “그의 곧고 깨끗한 행실, 분명하고 투철한 지식, 익숙하고 해박한 견문, 그리고 온순하고 단아하고 소탈하고 시원스러운 용모와 말씨는 다시는 볼 수 없어서 그것을 애석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 친구가 저 세상으로 떠난 뒤 나는 이리저리 방황하고 울먹이면서 혹시라도 이덕무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까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또 연암의 말에 따르면 이덕무는 평생 2만 권의 책을 읽었으며, 손수 수백 권의 책을 필사했는데 아무리 바빠도 속자(俗子)를 쓴 것이 한 글자도 없었다니 그의 됨됨이를 가늠할 만하다.
이 책은 18세기 새로운 지식인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선비]의 전형이었던 이덕의 삶과 사상의 정수(精髓)를 담은 산문집이다. 사람들이 ‘책에 미친 바보’라고 부르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덕무는 책을 읽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이렇다 할 일도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작게는 정신 없이 잠자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돈벌이와 여색에 힘쓰게 된다. 아아! 그러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수밖에.”
또 평생 동안 숙명처럼 따라다니던 가난과 병마를 안고 살았던 그는 책을 읽는 유익한 점을 네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해주는 것이요, 둘째는 추위를 잊게 해주는 것이요, 셋째는 근심걱정과 번뇌를 없애주는 것이요, 넷째는 기침을 그치게 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박지원이나 홍대용 등 다른 학자들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참 선비 이덕무와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책에는 이덕무의 독서광으로서의 면모를 비롯해 문장과 학풍, 벗들과의 만남, 군자와 선비의 도리, 자연 예찬 등 여러 가지 소품들이 실려 있다. 글 쓰기에 있어서도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진솔하고 재미 있고, 그리고 잔잔한 감동이 배어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