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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ㅣ 창비교양문고 10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199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처럼 연필로 꾹꾹 눌러 일기를 쓰거나 애지중지하는 만년필을 들고 지극 정성으로 편지를 쓰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신 인터넷이란 거대한 통신망이 구축됨에 따라 컴퓨터를 이용한 글쓰기가 가장 활발하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컴퓨터 형태나 규격, 통신망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글쓰기. 누구나 잘 쓰고 싶지만 뜻대로 안 된다. 우리 땅에서 평생 우리말을 쓰고 사는데도 말이다. 말은 일단 언어만 깨치고 나면 맘 먹기에 따라서 술술 나오게 할 수 있지만, 글은 전혀 다르다. 분명히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문자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러면 글쓰기에 대한 이러한 부담감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 우선 글쓰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어찌 보면 글쓰기는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작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누구나 책을 쓸 것도 아니고 작가가 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 쓰는 실력을 높이고 싶다면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신선한 재료를 캐낼 수 있을까, 좀더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긴 여운을 남길 수 있을까 등이 문제다. 물론 어느 분야든 연습과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글쓰기 연습은 개인의 몫으로 돌리더라도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좋은 교재가 꼭 필요하다. 오늘날 글쓰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관련 책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 그 속에서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글쓰기관련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글쓰기가 인류 공통의 행위이지만 우리의 정서와 사상을 제대로 옮기려면 아무래도 외국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외국인들이 쓴 책들에서 글쓰기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과 방법들은 배울 수 있지만, 실제 글쓰기에서 대면하게 되는 어법이나 단어의 선택 등 세밀한 부분까지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어떤가. 이 책은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산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경험 풍부한 산지기와 같다. 거대한 산의 생김새부터 산의 지형, 수목의 구성, 계곡,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것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으로 넘쳐 있다.
이태준은 문장과 언어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부터 문장의 유형별 특징과 예, 대상과 표현, 문체, 퇴고 등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분량에 있어서도 주제별 핵심을 간략히 추려 내고, 거기에 꼭 맞은 예문을 친절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론과 실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이밖에도 일제 식민지시대라는 우리 문화의 암흑기에 이처럼 우리 글쓰기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책을 쓴 점, 줄곧 명쾌하고 자신감 넘친 목소리로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설명한 점 등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한번 읽고 책장에 꽂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곁에 두고 자주 들추어 보며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교재로 삼으면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