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과는 좀더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서재에 방문하는 모든이가 볼 수 있는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 페이퍼는 나뿐아니라 방문자 역시 쓸수 있도록 해 놓았다. 내게 쓰는 편지도  좋고 다른 방문자에게 쓰는 편지도 좋다. 단지 공개적인 것이다. 물론....광고는 사절....ㅡㅡ 설마 누가 여기에 광고를 올리겠어? 이 것도 블로그의 하나인데...^^

차차...편지를 써가야 겠다. 그리고 아직 사람들에게 이 서재의 주소를 알리지 않았는데 차차 알려서 어느정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긴 다 공개니까 다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것 같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별오잉어현지 2004-01-3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빨강머리앤에 리뷰인가?
올려 놓으신거 보고 왔습니다.
제가 요새 알라딘을 돌아다녀본결과로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책을 모으거나, 책과 함께 있는걸 좋아하시는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책을 너무 많이 사볼려고 하는것이
저의 욕심이 아닌가 걱정 했는데,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닌것 같네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huguk 2004-02-0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근두근^^처음으로 방문자 코멘트가 올라와 있어서 깜짝놀랐어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책을 살때 너무 욕심부리고 있지 않나 싶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책은 사서 보는 게 좋은것 같은걸요. 한달에 두세권정도 사기로 맘먹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뵙기를 빌게요~ 샬롬~

별오잉어현지 2004-02-1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요즘 알라딘에 들어 왔다가 금방 나가서
여기 제대로 들리지 못했어요~
자주 들릴 게요~
 

박종호의 지명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지금 듣고 있다. 제목은 <이는 그리스도>이다. 바울이 쓴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다. 이 곡은 정말 죄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맘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때로 이런 마음이 들어 나 자신이 미워지고 싫어진다. 그러나 내게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행복하다.*^^* 

나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음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한 일을 도리어 행하니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내게 악이 함께 있으니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나의 육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날 사로잡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아에,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체들과  일본단기 선교를 가자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돈도 충분치 않았지만 기도하고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께 말씀 드렸다. 결과는 반대. 사실 응원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난 응원을 기대하고 열심히 말했는데...금전적 문제도 그렇지만 난 생각하고 기도하다가 뭔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난 정말 가고 싶어서 가는 걸까? 그러니까 지체들과 한 약속이라서 가는 건지 하나님께 선교에 대한 헌신을 위해 가는 건지....난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만약 같이 가자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난 혼자서라도 갈 것인가? 생각해 본 결과...아니다. 혼자서 갈 것 같지 않다.

난 나 자신에게 좀 실망됐다.  난 하나님을 위해 단기 선교에 가려고 했던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가자고 했나보다. 진짜 싫다. 이런 내 자신이...여행도 아니고 선교인데 이런 마음가짐은 정말 옳은게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체들과의 교제도 중요하다. 단기선교 가면 다른 지구의 지체들과도 교제할 수 있고 일본에 간다는 자체만으로도 내 지식이 더 쌓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헌신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 지 알수가 없게 됐다.

일단 기도하면서 더 생각해 볼 작정이지만 내 마음 가운데 정말 지체들을 미뤄놓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일본을 갈 수 있다라는 마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어려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난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 그 중에서도 고등학교 때부터 쓴 "하나님께 드리는 한나의 삶의 시"라는 제목의 주님께 쓰는 편지 형식의 일기는 하루도 안빼먹었다고 해도 좋다. 어쩌다 빼먹어도 다음날 아침에 쓰곤 했다. 그러다가 한동안 안 쓰기도 했다. 일종의 방황기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 공책을 쓸 때의 첫마음 같은 것을 말이다. 쓰는 것이 참 좋았었고 그건 축복이었었다. 그 이후 다시 꼬박꼬박 쓰기 시작했다. 하나님께는 숨김이 없다. 불평같이 보이는 글들도 있었고 괴로움, 슬픔, 아픔...사람들에게는 쉽게 털어놓을 수도 대놓고 불평할 수도 없는 것들을 다 털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신기하게도 해결되어 갔다. 이제는 감사가 더 많아진듯 하다.

지난 1월 20일자의 주님께 드리는 편지의 일부이다.

......사실 친구들과 지체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뒀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떠오릅니다.가끔씩 일상은 지루할지 모를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친하다고 사랑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먼저하지 않으면 다른 연락이 없으리라는 걸 깨닫는 것은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오히려 제 인생에서 제가 사랑할 수록 그 쪽은 멀어져 갔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숙명일 뿐이라고 낙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다정한 태도나 상냥한 말이 사랑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배려와 세심한 관심과 기도가 오히려 사랑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 둘 모두를 갖고 싶습니다. 욕심일까요? 정녕 욕심일까요? /사실 제가 그런 걸 바라는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독립심을 겸비한 저로서는 오히려 자주 전화한다거나 메일을 매일같이 주고 받는 것 따위는 유난스러운 시간낭비라고 생각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사실, 편지 쓰기는 좋아하지만요.) 그러나 저는 변했습니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저를 익숙하게 하고 상냥한 말과 대화로 저는 단련되어 갔습니다. 그러다 방학이 되었고 몇주가 지났습니다. 지난 여름방학때는 생각지도 알지도 못했던 감정이 저를 엄습합니다.언제나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있었으나 이토록 관심에 대한 갈구가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도 전화해 주지도 메일을 보내주지도 문자를 날리지도 않습니다./ 병식순장님이 보내준 카드와 며칠전 성실이가 뉴질랜드에서 한 전화가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일기를 쓴 다음 곧바로 병식 순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신년카드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다음날부터 주님께 고백한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비라고 부르는 지혜로부터 문자가 오고 성림순장님, 보경순장님, 율로부터 문자가 왔다. 샬롬순장님이라고 부르는 분으로부터도 전화가 왔었다. 내가 못 받아서 나중에 내가 전화했어야 했지만...작은 관심이 행복하다.

난 아직 크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여전하다. 내가 먼저 연락 할 수도 있는 건데 아직 나의 자존감 형성의 완성은 멀고 멀었나 보다. 그렇지만 기대하고는 있다. 부족하나마 보탬이 되고 보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갈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일기장은 그런 기대를 갖는 데 큰 원조를 한다. 그것도 더구나 주님께 쓰는 편지 이므로 그렇다. 앞으로도 나는 이 공책을 계속 써나갈 것이다.

회개. 감사. 희망. 꿈. 기도. 사랑....나를 자라나게 하는 것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친구는 상당히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다. 사회적 이슈에서부터 정치적 문제까지...가장최근에는 우리나라사람의 안전불감증 문제까지 거론됐었다. 가끔은 오버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내게서 가장 가깝고 오래된 친구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고 했던 도전은 많았다.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록 그녀는 내게서 더욱 부각되는 것을 느꼈다. 녀석은 내게 가장 편하고 가장 친근했다. 우린 많이 싸웠다. 서로에 대한 오해도 많았고, 불만도 가장 많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래도 가장 좋은 친구였다. 아이러니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우리는 싸웠기 때문에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오해가 있었기에 서로에 대한 불만을 말하고 털어버릴 수도 있었다. 친하고 편했기 때문에 불만은 즉시든 조금 나중에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해는 늘 풀렸다. 불만은 있어도 풀리지 않는 오해는 없다. 복잡하지만 그것 역시 사실이다.

 

사실 나는 변명하는 것이나 잔소리는 싫어한다. 나 역시 변명을 안해버릇해서 가끔 오해의 소지가 난다. 걱정해 주는 소리조차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말로는 뭘 못해.”그 소리에 딱 동감하는 사람이었다. 난 좀 비뚤어진 모습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는 것을 싫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에 좀 느끼게 되었다.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를 수도 있다고. 나는 말보다 행동이나 표현에서 애정이 드러나는 스타일인데 잘 모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친하지 않을 수록 더 그렇다. 그 녀석과 나는 타입이 좀 반대였다. 가치관은 비슷했지만 표현방식이나 생활 방식이 많이 달랐다. 덕분에 오해의 소지가 많았다. 잘못한 일에 대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고 하는 말이 내게는 변명으로밖에 안 들렸던 일이 흔하다. 붙잡은 일은 어떡하든 제시간내에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녀석에게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에 쉬웠다.(둘 다 고지식 하긴 마찬가지지만...ㅡㅡ) 우리는 약 7년을 함께 지냈지만 그래도 오해가 생긴다. 그리고 또 싸운다. 예전과는 다르게 훨씬 빠르게 풀리지만...우리가 뒤끝이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새삼스레 생각했다. 세어보면 우리 서로에게 정말로 많은 오해와 다툼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린 둘다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가치관도 비슷했다. 얘기할 수 있는 수준도 비슷했다. 예를들어 오늘 한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토론은 아무나 붙잡고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의 토론은 이런 것이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을 것인가? 문제가 번져서 결혼을 안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식...그러고 보니 이녀석과 이야기를 하면 항상 사회적 문제로 번진다.ㅡㅡ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점도 있다. 그 녀석은 “낳을거야.” 주의였고 나는 “입양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아?”라는 둥... 뭐, 그래도 이 녀석과 하는 토론은 재밌다. 그리고 사회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녀석이 정말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요즘 신문을 보고 있다.ㅡㅡ

 

이 친구가 얼마 후면 떠난다. 아쉽다. 사실은 갈테면 가라지라고 말하고는 있다. 그리고 때로 그런 생각이 든다. 가서 좋으면 좋지,뭐. 떨어져 있는 것이 때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도 있어. 우린 너무 오랫동안 같이 있었잖아. 때론 떠나서 따로 자랄 필요도 있어. 그리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녀석에 대한 생각을 많이 지우고 잊으려고 했다. 효과는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녀석을 보낼 준비가 차차 아주 순조롭게 되고 있다.

 

헤어짐이 있는 사귐을 두려워했었다. 그 녀석을 보낼 생각을 하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대학 들어와서는 친구를 사귈 생각을 안했다. 더구나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내게 있어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지금은...많이 나아졌다. 헤어짐이라는 것이 별로 두려운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한다. 주님의 뜻이라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거고 주님의 뜻이 영원히 헤어지는 거라도 그게 가장 내게도 그에게도 유익한 것일 거라는 걸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내게 용기를 준다.

  

 잘가라, 친구야. 넌 반드시 잘 될거야. 믿음을 꼭 지키고 빛되고 소금된 크리스챤으로서 살아가기를... 사랑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