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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평점 :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 가문을 되살리고자 에도로 온다. 에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삶에 임하는 자세를 새로이 느낀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누명을 밝힐 결정적인 증인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은 오히려 더 큰 혼란만 가져온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면 조용히 덮어두는 게 나을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 중 한편인 <벚꽃, 다시 벚꽃>은 에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이면서 삶의 애환을 그린 군상극이다. 온화하고 정직한 아버지가 뇌물을 받았다는 죄목을 덮어쓰고 죽자, 둘째 아들 쇼노스케는 진상을 파헤치고자 한다. 초반에 던진 이 미스터리는 무척 흥미롭다. 도대체 누가 왜, 온순한 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덮어씌우고 죽게 했을까?
결정적인 증거는 아버지가 쓴 뇌물 영수증이다. 아버지와 똑같은 필체이기에 아버지조차 자신의 글씨가 맞다고 인정할 정도다. 과연 그런 능력을 지닌 대서가가 정말로 존재할까? 쇼노스케는 그 유령 같은 대서가 뒤에 더욱 큰 흑막이 존재함을 직감한다. 그 흑막의 정체를 밝히고자 에도로 간다. 아버지의 명예와 가문의 재건을 위해.
이 소설의 진가는 쇼노스케가 에도로 와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이야기에 있다. 소시민이 겪는 크고 작은 문제, 그리고 인간 사이에 피어나는 갈등과 애증. 쇼노스케는 그들과 거미줄 같은 관계를 이어가며 비로소 좁은 우물 안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본다.
'마물이 씌었다'라는 말이 있다. 돈과 명예, 복수와 증오 때문에- 본래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 그것이 곧 마물이 씌는 것이다. 소설은 바로 그 선택의 지점을 파고든다. 자신을 버리고, 마물이 되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그것이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인가?
평범해선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만큼 중간의 기준이 높아진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범함에서 벗어나고자 특별해지려 애쓴다. 하지만 특별해지려는 몸부림만큼 평범한 것은 없다. 평범함에 만족하고, 그 삶에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특별하다. 부와 명예의 기준점이 아무리 올라가도, 행복의 가치는 아주 낮은 곳에서 움튼다. 문제는 그것을 보는 바른 눈을 가졌냐는 것이다. 그 근본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서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쇼노스케는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따뜻한 밥 한 공기에 나물 반찬, 그리고 편안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름다운 벚꽃 풍경을 볼 수 있는 눈- 살아간다는 것은 낮은 자세로 세상의 작은 것들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아무리 크고 작은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도, 겁먹을 필요 없다. 삶의 가치는 그 문제들을 마주하고 함께 헤쳐나가는 데에 있으니.
p.s. 극중 와카라는 여성은 너무 멋진 캐릭터였다. 쇼는 와카를 만나 서로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