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밀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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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남자가 마당에 설치한 핵전쟁 대비 지하 벙커에 들어가 체험을 해본다. 매일 아내에게 생존 교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이상한 교신을 받는다. '녀석들이 왔어. 난 여기서 버틸 테니 당신은 도망쳐!' 그 직후 아내와 집안 일꾼들이 벙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는 몸통이 절단된 채 죽어 있다. 벙커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는 닫혀 있었고, 벙커는 무척 좁아 누군가 숨을 공간도 없다. 이 불가능한 밀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천재 탐정 시그마가 나선다. 그는 현장을 둘러본 후 단번에 진상을 알아낸다. 모두를 놀라게 한 사건의 진실은 과연?  


'완구 수리자'로 일본 호러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 2020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까운 작가다. 국내엔 '앨리스 죽이기'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미스터리와 호러, SF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은 소설을 썼다. 이제 작가의 신작은 볼 수 없는 만큼, 이미 발표한 작품이라도 국내에 모두 소개되길 바란다. 


'전망 좋은 밀실'은 7편의 중,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불가능한 밀실 사건을 해결하는 초한 탐정의 이야기를 그린 '전망 좋은 밀실', 섬뜩한 꿈 얘기를 늘어놓는 이웃집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눈 비비는 여자',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조수의 이야기를 그린 '탐정 조수', 미지의 괴물체에 맞서 친구와 지구를 지키려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망각의 침략', 시간 여행의 모순에 관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미공개 실험', 인류의 궁극적 행복을 우주적 관점으로 사유하는 '죄수의 딜레마', 주산과 숫자로 형성된 가상 세계와의 교류를 그린 '미리 정해진 내일'까지- 하나하나 장르와 색깔이 모두 다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전망 좋은 밀실'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언뜻 이 소설집을 추리 단편집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집은 오히려 SF 단편집에 가깝지만 SF라고 딱 규정하기도 애매하다. SF적인 용어들이 다수 등장하고 그것을 플롯에 멋지게 활용하기도 하지만, 뭐랄까 그저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결과물로 보는 게 맞는 듯하다. 어떤 논리성이나 이성적인 기승전결을 기대한다면 조금 허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저 작가가 만든 어마어마한 상상력의 롤러코스트에 탐승해서 신나게 즐기는 게 좋은 독서법이다.


가장 인상적인 수록작은 '망각의 침략'이었다. 소년의 망상 같은 상상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어마어마한 가설이 더해지며 인류를 위협하는 괴생명체와의 아슬아슬한 사투를 담아낸다. 특히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절묘하게 활용해서 괴생명체를 제압하는 후반부가 압권이었다. 수록작 중 가장 황당한 상상력을 가졌음에도 가장 논리적인 추리 플롯으로 끝맺는다. 그러면서도 아포칼립스적인 세계관과 청춘 소설의 설렘까지 두루 아우르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들 마음속에 아직 관측되지 않은 슈레딩거의 고양이는 살아있을까,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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