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다른 아이들이 불행하니 그것에 비하면 나는 행복하다고 느끼라는 것인가?
그건 마치 옆집 남편은 술먹고 늦게 들어오는데
우리 남편은 일찍와서 밥먹고 퍼자니 고맙습니다 하라는 말같이 느껴져서 와닿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이 책은 복에 겨워 늘상 브랜드가 어떻고 친구들이 죄다 스마트폰을 쓰고
이따위소리나 하루종일 지껄여대는 아이에게 보라고 사준 책이다.
물론, 그것은 이들은 이러니 너는 행복한줄 알아라 하는 마음이 아니라
(아이를 둔 엄마라면 알겠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말해도 절대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지구상의 다른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 쳐다볼 수 있는 눈좀 가져라, 제발~!!!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아이에겐 역시나 이건 '책 속에 나온 저 아이들의 삶'이되,
마치 영화처럼 만들어진 괴로운 영화속 삶처럼 느낀듯하다.
책이 괴로워서 못읽겠다고 손사래를 쳐댄다.
뭐, 원래 나는 억지로 읽힐 마음도 없었다.
대신에 착한 무역이나 공정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설명을 해줬다.
나는 아이에게 대하여 기대치가 무척 높고 크다.
내가 원하는 기대치란 보통의 엄마들처럼 성적이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주변을 돌아보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책을 욕심을 갖고 억지로 읽히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에게 이 책을 내밀고 나는 다시 어떠한 실망을 했다.
이것밖에 안되는 아이가 참으로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그런 아이를 좀 더 잘 키워보려고 또 다른 고민을 해본다.
세계의 아이들이 겪고있는 가난, 불공정함, 뺏겨버린 인권등
이 책이 던져준 화두는 내게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을 한다.
원래 나의 계획은 이러한 것에 동참하여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었으나,
이 비루해빠진 썩은 몸뚱이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방향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아이들 처럼 살지않아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 아니라,
이런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줄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