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시 이야기: 그림, 돈 그리고 음모

스티브 마틴 장편소설, 이재경 옮김



앤디 워홀은 1987년에 죽었다. 그는 그를 욕했던 사학자와 감정가를 여럿 황당하게 하면서, 두더지처럼 미술사에 한 구멍 제대로 파고 들어앉았다. 소묘가 훨씬 뛰어나고 물의는 훨씬 적게 일으키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조차 2인자로 만들면서 워홀은 지명도를 높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나 마돈나처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예수나 마돈나처럼, 거론됐다 하면 신성시되거나 신성모독으로 욕을 먹거나 둘 중 하나였다. 혹자는 워홀이 뜬 것을 두고 약삭빠른 투기꾼의 시장 조작이라고 했다. 하지만 워홀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시장에서 유례없던 일이 일어났다. 기존의 반응을 뛰어넘는 현상이었다. 1989년에 피카소의 자화상 「요 피카소Yo, Picasso」가 4천8백만 달러에 팔렸다. 이렇게 걸작 하나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팔리면, 전에는 같은 작가가 그린 같은 수준의 작품 가격이 모두 치솟았다. 같은 해에 반 고흐의 「붓꽃」이 비슷하게 전설적인 가격에 팔렸다.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모든 걸작의 가격이 올랐다. 그런데 워홀의 작품들이 눈 돌아가는 가격에 팔리기 시작하자, 현대미술의 가치가, 아직 창조되지 않은 미술까지 합쳐서, 모두 뛰었다. 워홀의 존재는 너무나 강렬했고, 그는 너무나 최근 인물이었다. 그는 죽은 거장들의 클럽에 합류하는 대신, 골드러시를 일으킨 캘리포니아 서터스 밀의 금덩이 같은 존재가 됐다. 그 러시는 멈출 줄 모르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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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앤디 워홀이 살아서 자신의 미술계 정복을 목격했다면, 그의 반응은 그저 심드렁한 “와우.” 정도였을 거다. 워홀이 남긴 예술적 영향도 영향이지만, 그는 전설적인 뉴스거리로도 크게 자리매김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기 할 말만 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관심 없었고, 답이 질문을 충족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무심함이 오히려 역반응을 일으켜 그를 인기 스타로 만들었다. 언젠가 영화 제작 비용으로 백만 달러가 생기면 무엇을 하겠냐고 물었을 때, 워홀은 “50만 달러는 영화에 쓰고 나머지는 꿀꺽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다운 대답이었다. 실제로 워홀이 제작한 초기 영화 중 하나는 그의 친구 테일러 미드[미국의 작가겸 배우]의 엉덩이만 70분 연속으로 찍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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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 이야기: 그림, 돈 그리고 음모

스티브 마틴 장편소설, 이재경 옮김



“소더비라. 그러면 내가 오래 고민하던 질문의 답을 아실지도 모르겠군.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젊으신가?”

“일단 질문을 던져 보세요.”

“부자들은 말이죠,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어떻게 알죠?”

레이시는 대꾸 없이 계속 말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생각해 봐요. 그 사람들의 기준은 뭘까요? 벨라스케스 같은 거창한 이름은 왜 항상 5백만 달러씩 받고, 베르나르 뷔페는 왜 그렇지 못하죠?”

“방금 본인이 답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레이시가 말했다.

“내가요?”

“‘거창한 이름’이라고 하셨잖아요. 사람들이 구매하는 건 어쩌면 그림이 아니라 이름 아닐까요?”


벨라스케스, 시녀들, 1656


“그렇다면 벨라스케스 그림 중에 엉망인 그림도 같은 돈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부자들은 좋은 게 뭔지 기가 막히게 아는 것 같아요. 학자들이 수십 년 공부해도 알까말까한 것을 철강왕이나 자동차 딜러나 석유재벌은 어떻게 그리 쉽게 알까요?”

“기차표 포도주라도 마시면 답이 나올 것 같아요.” 레이시가 말했다.

“대령하죠.” 남자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기며 일어섰다. 그리고 몇 분 후, 포도주 잔처럼 보이려는 노력조차 상실한 플라스틱 컵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레이시가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1994년 산産 애치슨 토페카[애치슨 토페카 산타페 철도회사(Acheson, Topeka and Santa Fe Railway)를 말한다].

남자는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서류가방을 테이블 삼아 무릎에 올려놓고 인조가죽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림도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는 겁니다. 두꺼비의 눈이 입체 시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그림은 돈을 향해 움직여요. 사람들의 탐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명작도 지하실이나 쓰레기장에서 썩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거죠.”

레이시가 웃었고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제가 취했나 봐요. 선생님 말씀이 이해되는 걸 보니.” 그리고 레이시는 몸을 옆으로 틀어서 신사가 뿌듯해하는 표정을 제대로 감상했다.

낮술의 취기가 가실 무렵 기차가 역에 들어섰다.

신사가 일어나서 말했다. “레이시, 멋진 하루 보내요. 덕분에 여행길이 짧았어요.”

레이시도 열렬히 인사했다. “저도요. 즐거운 여행되세요.”

레이시가 신사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 그의 책 표지 안쪽에 실린 저자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그 신사는 존 업다이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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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 이야기: 그림, 돈 그리고 음모

스티브 마틴 장편소설, 이재경 옮김



뉴욕 최고의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하버드와 그 비슷한 대학들을 갓 졸업한 젊은 인재들에게 입사 희망 1순위 회사였다. 거기서는 미술사 전공자가 마케팅 전공자보다 우대받았고, 남녀를 불문하고 용모가 많이 단정해야 했다. 경매회사들은 직원들도 번지르르하기를 바랐다. 그런 직원들이 전시회 때 서류와 팩스와 슬라이드를 팔에 안고 붐비는 갤러리를 누볐다. 하지만 연봉은 쥐꼬리였기 때문에 젊은 직원들은 보통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살았다. 그래도 부모들은 자식들이 거기 다닌다면 뿌듯이 여겼다. 일단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들인 데다 만국의 돈이 공기를 후끈 달구는 화려한 업종이기 때문이었다. 돈이 모이는 것은 같지만 경매회사들은 어쩐지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처럼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딸 가진 부모 생각에는, 유리천장과 성희롱이 곧바로 연상되는 금융권보다야 나았다.

소더비는 사람들이 유럽식 말씨로 예술 사조를 논하고, 물려받은 돈부터 금융자금까지 각종 돈다발이 고급 양복과 실크 넥타이 차림으로 공존하는 기관이었다. 그곳은 산뜻하고 깔끔한 뉴욕을 대표했다. 거기 직원들은 매일 빼입고 출근해서, 담배 연기 없고 약물 없고 오직 흉상과 청동과 억만장자들로 가득한 천장 높고 유서 깊은 건물에서 일했다. 하지만 부모들이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퇴근 후와 주말에는 자식들이 세잔과 마티스의 품을 떠나 어둠의 세계에 합류한다는 점이었다. 날이 저물면 자기 자식들도 다운타운에 모여서 록밴드에 들어간 자식들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산다는 것을 부모들은 몰랐다.

레이시가 소더비에서 처음 배정받은 곳은 작품보관소였다. 한적하고 휑하고 어둑한 지하층에서 19세기 그림들의 목록을 만들고 크기를 재는 일이었다. 선적서류와 나무궤짝 틈에서 도나카란 정장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였다. 하지만 레이시는 가끔이라도 4층 사무실로 올라갈 때를 대비해 항상 옷에 신경 썼다. 대학 시절이 미술의 고급 과정이었다면, 소더비의 지하실은 미술의 기본기를 생으로 닦는 과정이었다. 레이시는 융단을 깐 테이블 위에 그림을 차례로 올려놓고 뒤판을 줄자로 쟀고, 잰 것을 빠짐없이 적었다. 다음에는 그림을 다시 앞으로 돌려서 화가의 서명과 모노그램을 찾았고, 마구 휘갈겨 쓴 이름을 판독했다. 그리고 무명의 화가를 찾아서 들기도 버거운 미술 인명사전을 뒤졌다. 성공하면 상급자에게 작가불명이던 작품의 작가를 보고해서 점수를 땄다. 입사 첫 1년간 레이시는 수천 점에 달하는 그림의 앞뒤를 살폈다. 일단 그림을 타진하는 법을 터득했다. 노크하듯 두드렸을 때 캔버스가 단단하고 팽팽하면 원래 있던 캔버스 위에 다른 캔버스를 덧댔다는 뜻이고, 그것은 그림 상태가 나쁠 거라는 경고였다. 광택제를 먹여서 원화로 가장한 프린트[원화를 필름으로 찍어서 출력한 이미지를 말한다. 화가나 미술관이 한정 수량으로 제작한 프린트는 가치가 높다.]를 골라내는 법도 익혔다(소장품이 진품이라고 믿었던 위탁자에게는 비극이지만).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인쇄물 특유의 미세한 점들이 보였다. 에칭화와 석판화도 구별하게 됐다. 에칭의 경우 강한 불빛을 그림 표면에 비추면 부식작용으로 생긴 선들이 만드는 미세한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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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어떤 노부부가 밀턴 애브리의 그림을 카트에 싣고 왔다. 그림은 작았지만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액자는 섬뜩했다. 어찌나 섬뜩했던지, 미국회화 부서장 체리 핀치는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서 액자를 가리고 그림을 봤다. 체리가 노부부에게 추정가로 6만에서 8만 달러를 제시하자 노신사는 바지 멜빵이 튕겨나갈 정도로 놀랐다. 노부부는 그림이 완성된 1946년에 3백 달러를 주고 샀다고 했다. 그때의 가격표가 아직도 그림 뒤판에 붙어 있었다.


밀턴 애브리, 「목욕하는 여인들」, 1946년


밀턴 애브리는 미국 화가 중에서 딱히 어느 범주에 넣기 힘든 독특한 화가였다. 그는 형체와 풍경을 몇몇 색 덩어리로 단순화시켜 표현했다. 검게 칠한 곳은 바다고, 노란색을 쓱 바른 곳은 모래고, 파란색은 하늘이었다. 그런데도 완벽했다. 애브리 그림은 점잖았다. 하지만 총 든 남자가 점잖을 때의 점잖음이었다. 요구하지 않아도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애브리는 평생 스타일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판에 박힌 작가는 아니었다. 좋은 그림만큼이나 그렇지 못한 작품도 많다는 게 그 방증이었다. 이날 체리가 보고 있는 그림은 좋은 그림이었다. 

노부부가 떠난 뒤 체리는 레이시에게 애브리 그림이 얼마에 낙찰될 것 같냐고 물었다. 레이시는 이것이 테스트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치밀하게 예측하되, 예측치를 부풀려 말하기로 작정했다. 자신의 예상치가 평범하게 묻히는 것보다는 기억되는 쪽이 유리했다. 레이시가 보기에 그 그림은 작은 보석이었다. 무난히 좋은 가격에 낙찰될 듯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17만 달러요.” 그러자 체리가 어리고 딱한 아이 보듯 미소 지었다.

레이시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애브리 그림을 가져온 노부부가 막 건물 문을 나설 때 부부를 따라잡았다.

“저희가 액자를 다시 짜도 될까요?” 레이시가 물었다. “그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부부는 딱히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이 액자로도 50년 이상 무탈하게 있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레이시의 긴급 제안에 전문성이 느껴져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레이시는 그림을 아래층으로 가져가 치수를 쟀다. 액자도 쉽사리 분리했다. 그 뒤 지체 없이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미국 최고의 액자상점 로위로 갔다. 레이시가 안내데스크의 여자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소더비의 레이시 예거라고 합니다. 밀턴 애브리 작품에 쓸 액자를 문의하고 싶은데요.”

레이시의 목소리가 안내데스크를 넘어 호사스런 액자 견본들이 즐비한 진열대까지 들렸다. 진열대 앞에 벨벳을 깐 이젤들이 있었다. 그림을 올려놓고 귀퉁이에 액자 견본을 대보는 용도였다. 레이시는 손님들이 이젤에서 한발 물러나 해당 액자가 그림을 완전히 두른 모습을 상상했다.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래리 샤입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밀턴 애브리 그림에 쓸 액자가 필요해서요. 다음 경매에 출품할 예정인데요, 그때까지 맞춤이 가능할까요?”

“그럼요. 그림은 어디 있습니까?”

“그게, 상황이 이렇습니다. 판매자는 액자 비용을 댈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요, 이곳에서 액자를 투자하는 방식이면 어떨까요? 출품할 때 응찰자들에게 액자를 이곳에서 협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거죠. 그림을 누가 사든 액자도 구매할 게 분명해요. 여기 액자는 알아주니까요.”

“저희는 통상적으로—”

“만약 구매자가 액자는 사지 않겠다면,” 레이시가 얼른 덧붙였다. “그땐 제가 살게요.”

래리가 신기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 말로 레이시는 래리의 동의가 떨어졌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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