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에서 빌렘 데 쿠닝(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1904~1997)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레이시는 여성의 모습을 기괴한 토템처럼 표현한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데 쿠닝은 1950년대에 죽어라고 여자를 그렸는데 그 그림들이 1970년대 페미니즘의 공분을 샀다. 데 쿠닝의 작품은 여성을 야수로 묘사한 공격적 그림으로 폄하됐고, 그는 여성을 짐승으로 비하한 여성혐오주의자 남성 화가로 몰렸다.

 

 

빌렘 데 쿠닝,「여자I」, 1950년~1952년


하지만 레이시는 데 쿠닝의 그림 속의 날뛰는 살덩이와 험악한 이빨을 보면서, 그것이 자신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림은 여성을 공격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의 힘을 인정하는 그림이었다. 데 쿠닝은 흉측한 괴물을 그린 게 아니라 강력한 여신을 그린 것이었다. 그 이미지는 레이시가 매일 자신을 느끼는 방식과 비슷했다. 그녀에게도 악귀 같은 이빨이 있었다. 유혹적인 가슴과 기다란 분홍색 다리와 맹렬한 기세가 있었다. 레이시는 자신의 성적性的 저력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칼집에 들어 있지만, 언제라도 그 칼을 빼드는 날에는 자신의 원초적 모습도 데 쿠닝의 여인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레이시는 미술관 계단을 내려가 휴대품 보관소로 갔다. 보관소 앞에 기다리는 줄은 없었다. 그런데 보안요원 세 명이 모여 어깨에 붙은 무전기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레이시가 맡긴 판지상자가 보관소 입구 대리석 벽에 세워져 있고, 말쑥한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여자가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레이시는 즉각 상황을 파악했다. 맨 처음 스친 생각은 ‘이런 젠장.’이었고, 두 번째 든 생각은 ‘재밌겠는걸.’이었다. 레이시는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목소리를 있는 대로 깔면서 말했다. “찾으시는 사람이 저 아닌가요?” 그리고는 돌아서서 등 뒤로 손목을 모으고 수갑 차는 자세를 취했다. 아무도 표정이 바뀌는 사람이 없었다. 레이시의 야심 찬 농담이 썰렁하게 떴다.
“이런, 죄송해요.” 레이시가 다시 돌아서며 말했다. “저는 소더비 직원이고, 지금 이 그림을 배달하는 중이에요. 이건 밀턴 애브리 그림이에요. 여기 제 명함.”
말쑥하게 입은 여자가 말했다. “저희가 그림을 열어 봐도 될까요?”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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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는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거대한 중앙계단을 굽이굽이 내려갔다. 휑뎅그렁한 입구에는 미술이라 할 만한 것이 별반 없었다. 머리 위에서 거대하게, 하지만 공허하게 흔들리는 칼더(알렉산더 칼더: 미국의 조각가로, 움직이는 조각(모빌)의 창시자. 1898~1976.)의 모빌만이 여기가 우주여행 터미널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었다.
현대미술에 관심 없는 레이시는 서관 지하층으로 향했다. 미국회화 갤러리는 텅 비어 있었다. 레이시는 보는 사람 없는 걸작들 앞을 빠르게 걸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반가운 그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책에서 5×8센티미터 사진으로만 봤던 존 싱글턴 코플리의 1778년 작 유화 「왓슨과 상어」도 있었다. 실물로 보니 현장감이 대단했다. 당시의 절박한 상황이눈앞에 순간정지 상태로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배를 빙빙 도는 상어 때문에 지옥처럼 물결치는 바다, 방금 상어에게 다리 하나를 뜯어 먹힌 열세 살 소년, 다급하게 소년을 구하려는 선원들. 레이시는 그림의 엄청난 크기와 가학적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죠스의 원조야. 레이시는 생각했다.

 

 

 

[존 싱글턴 코플리,「왓슨과 상어」, 1778년.]


레이시가 나중에 나에게 말했다. “그날 그림들을 후딱후딱 보는데, 그러는 내 꼴이 갑자기 눈에 그려지는 거야. 되게 웃겼어.” 레이시는 목부터 길게 나가고 발은 뒤에 끌려오는 모습으로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이동했다. 그림 앞에서 머리의 속도가 떨어져 발이 따라붙었다 싶으면 다시 머리가 앞으로 치고 나가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법을 쓰면 전진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 시선이 최대한 오래 그림에 머무를 수 있었다. 윗몸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움직이는 반면, 두 발은 SF영화의 순간이동 화면처럼 쌩하니 움직이는 꼴이었다.
레이시는 지하층 회화 갤러리에서 그렇게 20분을 보냈다. 소더비에서 일한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레이시는 소더비가 자신에게 미술관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주입했음을 깨달았다. 누가 언제 그렸는지 따지는 것은 당연한 직업병이었다. 시키지도 않은 그림의 의미를 분석하느라 머리에서 쥐가 나는 것도 미술사 전공자의 판에 박힌 숙명이었다. 그런데 이제 다른 버릇이 하나 더 생겼다. 그림의 시장가치를 추정하는 버릇이었다. 맨해튼에서 구른 경험이 레이시 내면의 배선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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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고 아트 시즌이 끝나갈 때였다. 갤러리마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하고 경매장은 파리 날리는 어느 날 오후, 레이시는 케네스 럭스 갤러리에 들어섰다.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의 미국회화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벽에 존 피토가 그린 자그마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피토는 19세기 정물화가로, 탁자 위의 책과 담뱃대와 머그잔을 주로 그렸다. 어두운 녹색과 밤색이 주를 이루고, 가장자리가 해진 책이 등장하는 그의 정물화는 도시 빈민의 누추한 일상을 조명한 것으로 해석됐다. 피토는 1950년대 초에야 이름을 알렸다.

 

                         [존 프레데릭 피토,「머그잔, 담뱃대, 그리고 책」, 1880년경]

 

미술평론가 알프레드 프랑켄스타인의 공이었다. 프랑켄스타인은 19세기 정물화가 중 가장 인기 많은 하넷(존 피토와 함께 19세기의 트롱프뢰유(현실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묘사)의 대가로 통한다. 1848~1892)을 연구하던 중, 그의 작품이 서로 다른 두 가지 화풍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첫 번째 화풍은 사진처럼 정확한 묘사였다. 이런 그림들에서는 모든 오브제가 생생하고 예리했다. 두 번째 화풍은 느슨한 묘사였다. 이런 그림들에서는 오브제들의 가장자리가 증발해 공기 속으로 부드럽게 녹아드는 느낌이 났다. 프랑켄스타인은 하넷의 그림들 중 두 번째 화풍의 그림들이 사실은 피토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하넷의 그림들이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된다는 것을 안 사기꾼들이 피토의 그림이 발견되는 족족 피토의 서명을 지우고 그 자리에 하넷의 모노그램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수십 년이나 계속된 사기가 드러나자 피토의 그림 값이 치솟아 하넷의 그림 값과 맞먹게 되었다.

 

                                   [윌리엄 마이클 하넷,「헤럴드」, 1878년경]

 

소더비에 피토의 그림이 하나 입고될 예정이었다. 레이시는 가격 책정에 참고할 생각으로 갤러리 사장 켄 럭스에게 벽에 걸린 작은 피토 그림의 가격을 물었다.
“3만 5천.” 켄이 말했다.
레이시가 보기에 괜찮은 그림이었다. 레이시는 소더비의 피토 그림과 비교하고 싶은데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물론.” 켄은 레이시에게 작은 슬라이드 필름을 주었다. 레이시는 케네스 럭스 갤러리를 나와 갤러리 탐험을 계속했다. 모퉁이를 돌아 허실 앤 애들러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연히 거기에도 비슷하게 자그마하고, 비슷하게 훌륭한 피토 그림이 걸려 있었다. 레이시는 가격을 물었다. 6만 5천 달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까 쓰리 가이스에서 급히 먹은 델리 샌드위치 때문에 가뜩이나 속이 더부룩했던 레이시는 순간 딸꾹질이 나왔다. 두 그림은 소재 면에서 너무나 비슷했다. 한 쌍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 네.” 레이시는 일단 갤러리 밖으로 나와 케네스 럭스 갤러리에서 받은 슬라이드에서 갤러리 라벨을 긁어냈다. 아트 딜러끼리는 가격 정보를 주고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각자의 제시 가격을 숨기고, 라이벌 딜러가 뒤에서 험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정말 그런지 알아보기로 했다. 레이시는 슬라이드를 들고 다시 허실 앤 애들러로 들어갔다.
(중략) 레이시를 맞은 사람은 스튜어트 펠드였다. 펠드는 미국 미술계의 실세 딜러였다. 웬만큼 허세가 든 수집가도 그의 앞에서는 찍소리 못할 정도로 그림 보는 눈이 매섭기로 유명했다. 펠드는 19세기 회화를 파는 것을 넘어 19세기를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가 미국산 신고전주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가구 못지않게 양복도 멋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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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복도 끝에 너무나 눈에 익은 그림이 나타났다. 레이시는 숨이 턱 막혔다.

“이걸 좀 봐요.” 알버그가 말했다. “내가 무릎만 성했어도 이 앞에 무릎을 꿇었을 거요.”


존 싱어 사전트, 「엘 할레오」, 1882년


그들 앞에 사전트의 「엘 할레오El Jaleo」가 있었다. 폭이 3.5미터나 됐다. 레이시는 이 그림이 이렇게 거대할 줄 상상도 못했다. 잘못 다가섰다가는 그림이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림 전면에 에스파냐 무희가 있었다. 무희는 머리를 한껏 젖히고, 캐스터네츠를 쥔 손을 앞으로 쭉 뻗고, 다른 손으로는 하얀 드레스 자락을 멋스럽게 들어 올리며 열정적으로 스텝을 밟고 있었다. 무희 뒤에는 기타를 든 남자들이 나란히 앉아 플라멩코 리듬을 연주했다. 그림에서 플라멩코 선율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무희 뒤에 박수하는 남자도 있었는데 남자의 박수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짝 하고 울렸다. 반면 코를 고는 남자도 있었다. 불이 난 것처럼 아래쪽에서 빛이 올라와 방 전체로 퍼지고, 무희 뒤로 거대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춤과 악사들과 구경꾼들의 흥분감과 열기가 손에 잡힐 듯 전달됐다.

그림은 레이시 안에 도사린 모험에 대한 갈증을 뜨겁게 일깨웠다. 현세의 보스턴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레이시는 다른 세기에서 보내는 음탕한 저녁을 갈망했다. 가파르게 뒤로 젖힌 머리. 현란하게 움직이는 캐스터네츠. 쭉 미끄러지는 다리. 그리고 더는 산 자의 땅에 있지 않은 젊은 남자들과의 섹스. 그때 조슈아가 레이시 쪽으로 기대며 속삭였다. “드레스가 환상적이네요.”

힌튼이 입을 열었다. “놀라운 것은, 사전트가 이 그림을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는 거야.”

“알버그 씨…….” 레이시가 말했다.

“알버그 씨?” 알버그 씨가 대꾸했다. “그게 누구야? 힌튼이라고 불러요.”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시죠?”

“어이, 내가 말했잖아요. 나는 다 사랑한다고.”

코넬리아가 끼어들었다. “모아들이는 데 있어서는 이이가 국세청보다 나아요.”

“그럼 왜 현대미술을 모으시죠?”

“이런 그림들은,” 힌튼이 벽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끽해야 2년에 한 점 또는 두 점밖에 못 사요. 너무 희귀해. 반면 현대미술은 싸. 온종일 살 수도 있어. ‘수집가’란 말은 나한테 과해요. 난 쇼핑객이야.”




레이시 이야기: 그림, 돈 그리고 음모

스티브 마틴 장편소설, 이재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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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프리드먼, 「무제」, 1994년


1990년대 말이 되자 아티스트들의 결과물은 거대한 것부터 눈곱만한 것까지, 정교한 것부터 날림까지, 사려 깊은 것부터 지각없는 것까지 다양해졌다. 리처드 세라는 무게를 톤 단위로 매기는 작품을 만드는가 하면, 톰 프리드먼은 아스피린 알약에다 자화상을 조각했다. 작품은 아티스트 본인의 성적 취향과는 상관없이 마초적인 것부터 야릇한 것까지 다양했다.

이 와중에 파일럿 마우스가 동네마다 다니며 벽과 문에다 검정 스프레이로 박쥐를 그렸고, 그게 눈에 띄어서 미술계에 어물쩍 이름을 알렸다. 그는 제프 쿤스.와 데미언 허스트..를 롤모델 삼아 예술적 난동을 돈벌이로 바꿨다. 파일럿 마우스는 버려진 창고를 개조해 아트 팩토리를 가동했다. 자원봉사자 조수들로 바글대는 그의 스튜디오는 그림과 조각들을 연신 찍어냈고, 비평가들의 서슬 퍼런 비난에도 미술시장은 그에게 현금으로 답했다.

파일럿 마우스가 결정적으로 뜬 데에는 정력적인 수집가 힌튼 알버그의 공이 컸다. 영국에 찰스 사치•가 있다면 미국에는 알버그가 있었다. 알버그가 다운타운의 어떤 이름 없는 기획전에 들이닥쳐서 마우스의 그림을 하나도 남김 없이 몽땅 사들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별로 좋은 그림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힌튼 알버그가 사들이자 갑자기 좋은 그림이 되었다. 상대성이론은 미술에도 강력히 적용된다. 중력이 공간을 비틀 듯 영향력 있는 수집가는 미학 기준을 비튼다. 차이점이 있다면 중력은 공간을 영구히 일그러뜨리고, 수집가는 미학을 기껏해야 몇 년 왜곡할 뿐이다.





레이시 이야기: 그림, 돈 그리고 음모

스티브 마틴 장편소설, 이재경 옮김



하지만 알버그의 구매 자체가 파일럿 마우스를 스타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림을 사가고 몇 주 후에 알려진 사실이 마우스에게 최소 10년짜리 아트 스타 자리를 보장했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려면 힌튼 알버그의 기이한 버릇부터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힌튼 알버그는 지갑을 빨리 열기로 유명한 수집가였다. 돈 받는 쪽에서야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알버그는 뉴욕 현대미술관, 디아 미술재단, 휘트니 미술관은 물론이고, 색다른 비주류 미술 행사들도 많이 후원했다. 따라서 신진 미술과 기성 미술을 막론하고 뉴욕 미술계 동향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알버그는 체형이 볼링핀을 닮았는데, 가끔은 무심코 옷까지 볼링핀처럼 입었다. 특히 흰색 양복에 널찍한 붉은색 혁대를 차면 영락없었다. 그의 아내 코넬리아는 남편이 불룩한 부분은 들어가고, 들어간 부분은 불룩해서, 둘이 나란히 서 있으면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처럼 딱 들어맞았다.

알버그가 얼굴을 내미는 곳마다 뒷소리가 높았다. 대개는 흉보는 소리들이었다. 하지만 마냥 조롱당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다. 힌튼 알버그에게는 적어도 본인의 수집벽을 솔직히 인정하는 유머 감각이 있었다.

“작년에 내가 바젤 아트 페어에 갔잖아. 출발하기 전에 코넬리아가 이번엔 좀 작작하라고 하더군. ‘죄다 사지는 말아요, 여보?’ 하길래 내가 그랬지. ‘여보, 내가 미친놈인 거 몰라?’”

알버그는 그림으로 미어터지는 자기 집 창고를 ‘보석으로 가득한 쓰레기장’ 또는 ‘쓰레기로 가득한 보물창고’라고 불렀다. 하지만 알버그는 어떤 면에서는 숫기가 없었다. 그 탓에 정작 그의 유머 감각은 아는 사람만 알고 미술계 주류까지는 파고들지 못했고, 돈 자랑한다는 조롱만 무성했다. 알버그의 재산도 알고 보면 자동차산업으로 벌어들인 처갓집 돈이라는 놀림도 빠지지 않았다.

힌튼 알버그의 기벽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는 술을 즐기지 않았고, 다른 어떤 것도 남용하지 않았지만, 음식에는 사족을 못 썼다. 거기다 선천적 재주인지 후천적 노력인지 몰라도 후각이 놀랍게 발달해서, 음식을 입으로 삼킬 뿐 아니라 코로도 흡입했다. 식사가 시작되면 그는 접시 위로 몸을 잔뜩 숙이고, 때로는 냅킨까지 머리에 덮어쓰고 아로마틱 벨을 형성한 뒤 음식 냄새를 깊고 길게 들이마셨다. 건너편에서 보면 음식 위에 기절하는 올리버 하디•처럼 보였다. 본식 때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뭐든 먹거리가 나타날 때마다 똑같이 행동했다. 칵테일 파티에서 사람들 사이로 오르되브르 접시가 돌 때, 알버그가 거기 대고 코를 문지른다고 생각해 보라. 역겨운 일이었다. 알버그가 매디슨 애비뉴의 어떤 타운하우스에서는, 이탈리아 골동품 탁자의 밑면을 킁킁 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알버그가 전시회를 싹쓸이한 후 파일럿 마우스가 이런 후일담을 늘어놓았다. 알버그가 갤러리에 온다는 소식을 접한 마우스는 직접 갤러리로 가서 그림들을 모두 벽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림 뒷면 캔버스 틀에다 송로버섯 오일을 톡톡 바르고 다시 걸었다. 그 이야기가 기사로 떴다. 마우스는 『뉴욕타임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은 돼지가 가장 좋아할 냄새를 풍기는 그림을 만들어서 돈 냄새를 풍기는 수집가들을 조롱한 것뿐이라고 했다.

파일럿 마우스는 이 말로 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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