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내 실수는 사랑을 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필연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사람들은 필연속에서 우연을 가장하기도 한다.
분명 나에게 한 사람, 나의 사랑임에도 행여 보다 나은 사람, 사랑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을 가지고 있기에 필연보다는 우연을 강조하기도 한다.
아주 미련하게...
사람들은 우연을 필연으로 단정짓기도 한다.
분명 내 것이 아닌 사람, 사랑임이 틀림없음에도 누구나 꿈꾸는 객관적 이상형에 빠져 서로 자기의 것이라 싸운다.
아주 미련하게도...

나를 떠난 사람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그리워 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바보같이 왜 그리 사냐고...
넌 버림받은 것에 아무런 화도 나지 않으냐고...
세상에는 그녀보다 더 나은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내 인연은 그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무리 필연적인 사랑은 없다해도 난 있다.
사람들이 아무리 단언한다 해도 난 있다.
그녀는 나의 필연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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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믿음...클로이가 내 삶에서 하게 된 역할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녀의 눈이고, 그녀가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키스를 하는 방식이고, 그녀가 전화를 받거나 머리를 빗는 모습인데.

믿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우리는 함께일거라고...
세상의 어떤 것이, 그것이 사람이든 사고이든 무엇이 되었던 우리는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서로에게 맹세를 했다.
믿었다...
나에게는 그녀가 그녀에게는 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어떤 사람도 그녀에게서 나를, 나에게서 그녀를 대신할 수 없을 꺼라 했다.
믿었다...
난 그녀의 모든 것을 믿었다. 심지어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돌아다닐 때도 난 그녀를 믿었다. 그녀의 입맙춤을 믿었다.
그런데 그녀는 떠났다. 이제 그녀는 없다. 내가 더 이상 그녀에게서  남자가 될 수 없기에 그녀는 떠났다.
이제는 더 이상 난 그녀의 남자가 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난 떠난 그녀를 사랑한다.
여전히...
비참하게도...
맹세를 했으니깐, 약속을 했으니깐.
나에게 첫  맹세와 약속은 그녀 것이니깐.
어쩌면 다시는 다른 곳으로, 다른 사람에게로 갈 수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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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것이다<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한다> 그러나 클레이를 만남 직후 그녀를 필생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 다면...
수 없이 만나왔던 인연들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을 할 수 있을까...
그래, 정답은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를일이다.
그렇다고 만나는 여자마다 돌아가며 살아 볼 수도 없는 것...
그러나 운명을 믿는 다면 다른 사람은 모르는 그녀에 대한 나만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어울리지 않는 대도시의 한쪽 쓰러져가는 인간들의 유희의 무덤가에 선 그녀를 보았는데 순간 그 배경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온통 하얀 방안에서 살짝 기울어진 머리를 하고 웃고 서 있는 그녀만 보이는 그런 느낌.
얼른 그 무덤가에서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기사도의 맹세가 불끈 솟아오르는 그런 느낌...

그래서 나는 그녀를 내 필생의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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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언젠가 꿈 속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와 마주치게 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 받을 수 없을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그리움을 해소해 줄 존재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은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기도는 절대로 응답받을 수 없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참한 순환에는 끝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에 하나 하늘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서 우리가 그리던 왕자나 공주를 만나게 해준다면 그 만남을 단순한 인연의 일치로 치부해 버릴수 있을까? 한번만이라도 이성의 검열에서 벗어나서 그 만남이 우리의 낭만적인 운명에서 정해진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난 너를 만났것이 운명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분명 너는 나를 만난것을 일생의 큰 실수나 생기지 말았어야 할 일중의 하나였겠지만 말이야.
이별이 무엇인지, 그 이별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채 날 두고 가버린 너를 두고 운명적 만남이었다고 하면 바보같은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넌 나의 운명이야.
이제는 볼 수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이을 수없는 사랑이 되어버렸음에도 여전히 나는 너를 그리워하고 하루에도 골백번 너를 생각하는 거 보면 말야, 더 지독한건...여전히 잠자리에 들때 품에 들어찬 벼게에다 너의 이름을 부르고 사랑해라는 말을 내 귀에 또렷히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을 해야 하루를 마친 안도감을 느끼거든.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넌 나의 운명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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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읽기 시작하면서 받은 느낌은 어렵다...왜 이리 힘들까하는 기분이었다.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분명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그 연결점을 찾아 가다 보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어렵다의 느낌 또한 이로써 느낀 것인데 그 부딪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오래 걸렸기에...
그리고 아직도 내가 제대로 찾은 것인지 하는 의구심 또한 여전하기에...
15세 소년...
너무 성숙한 어른 같은 아이...
그 아이를 이해하려면 나이를 벗어나야 하기에...
하루키의 소설을 찾아 읽다 보면 작가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비유, 은유...
책을 읽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찾게 만드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번 보다는 두번, 두번 보다는 열번...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것도 하루키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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