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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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코끼리를 쏘다>


교수대까지는 40야드 정도가 남았다. 나는 바로 앞에 걸어가는 죄수의 갈색 등을 지켜보았다. (˙˙˙) 그리고 한 번, 어깨를 한쪽씩 붙든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는 도중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하느라 살짝 옆으로 비켜갔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 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조직은 계속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pp.25-26


그 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2000명의 의지가 나를 거역할 수 없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p.37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는 자신의 이해관계가 막히는 지점까지만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이다. 그들은 "능력에 따른 지위"란 말이 뜻하는 정도의 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p.55


심각한 비상사태가 벌어질 경우, 대중전선에 내재된 모순은 절로 모습을 내보이게 되어 있다. 노동자도 부르주아도 파시즘에 맞서 싸우긴 하되, 둘이 같은 것을 위해 싸우는 건 아닌 까닭이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를 위해 싸우며, 노동자는 문제를 이해하는 한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p.55




<좌든 우든 나의 조국>


물론 유치하긴 하지만, 나는 너무 '계몽'되어서 가장 일상적인 정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좌파 지식인처럼 되느니 그런 식의 훈육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p.85


<영국, 당신의 영국>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대단히 문명화된 인간들이 내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 그들은 흔히 말하듯 "자기 임무를 수행할 뿐"인 것이다. 나는 그들 대부분이 사생활에서는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꿈도 못 꿀 선량하고 준법정신 투철한 시민임을 의심치 않는다. 반면에 그들 중 하나가 폭탄을 잘 떨어뜨려 나를 산산조각 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가 그 때문에 특별히 잠을 못 이룰 리도 없을 것이다. p.87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p.88




<민족주의 비망록>


아무리 공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 해도 갑자기 고약한 열성 당원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상대를 '제압'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자기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얼마나 많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지에 대해선 무심해질 수 있다. pp.203-204


평화주의자. 폭력을 '포기' 하는 사람은 남들이 그를 대신해 폭력을 저지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p.205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p.289-290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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