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맨입으로 할 수 있을까?
사랑은 가슴이 시키고 섹스는 맨몸으로 하는 것이지만 연애를 맨입으로 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종종 간과되는 사실은 연애에는 ‘교제비’가 든다는 것과 모든 기회를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기회의 입구를 여는 데는 대개 돈이 든다는 사실이다.
모든 관계에는 유지비가 수반된다. 부모 자식도 서로의 도리를 다하려면 비용이 들고, 일정 연령대가 지나면 사람 만나는 게 다 돈이다.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사람 앞에선 최소한의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지만, 그것이 위클리나 에브리데이로 변한다면 소득 수준에 비례해서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더욱이 구애라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최상의 준비’를 요구하게 만드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수려한 용모나 타고난 재치나 고운 성품을 물려받지 못하였다면(혹은 키우고 관리하지 못하였다면 ; 이것도 돈이 든다) 그만큼 준비에 더 큰 비용을 들여야 하고 결과의 차원에서도 어려운 확률싸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구애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든 투자비용을 상대적으로 더 들일 수밖에 없다. (수요공급의 냉혹한 법칙은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의 메시지 읽는 권한을 여성에게는 무료 남성에게는 유료 구매로 주어지도록 설정한다.) 그러나 생활비 압박이 크면 교제비를 없애거나 줄일 수밖에 없고 적은 자원으로는 그만큼 힘든 게임을 펼쳐야 한다. 연애의 당사자들에게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기초에 해당한다.
따라서 교제비가 아니라 생활비 자체가 허덕인다면 양자가 이루어 질 수 없을 확률이 높다. 관계의 시작은 무료일지 모르나, 관계의 유지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적어도 연애를 (안정적으로) 하려면 상대는 물론 그 상대에게 쏟을 사랑과 시간과 돈 삼박자 중에 최소 두 가지는 갖춰야 한다. 오늘 날의 청년 세대가 연애의 삼각형에서 과연 몇 가지나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면 어느 정도 청년들이 처한 외로움이 이해 될 것이다.
젠더갈등과 연애결핍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무슨 접촉이 있어야 일도 터지고 사랑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보편화 되고 고립이 심화된 세상에서 접촉자체가 드물고 앵간한 접촉에는 비용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구조적 원인을 잘 따지는 사람도 연애 문제만큼은 개인의 잘나고 못남의 문제로 쉽게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의 정신적 측면이 너무 미화되어 그 최소한의 물질적 필요가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고비용의 연애시장과 연애문화에서 더는 맨입으로 교제하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고 바라봐야 한다.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절대빈곤 시대의 절규로 들렸다면, 상대적 빈곤시대의 마음과 지갑과 사회적 여유가 모두 부족한 청년 세대에게는 원룸촌 유투브 댓글의 [팍팍한 혐오노래] 변주되며 메아리치는 것일 테다.
청년세대의 젠더 갈등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증폭조건 중 하나는 연애 기회가 적어지면서 성별간의 접촉이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애가 의무이며 신격화 되어야 하는 숭고한 행위인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부족한 꼭 그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 또한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의 영역이 결국 자존심을 걸고하는 투쟁이라면, 숙맥들이 벌이는 어설픈 싸움은 쉽사리 자존심의 손상을 가하기 쉽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 혹은 편견이 증폭된 환경에서 숙맥들이 그 아슬아슬한 도덕 감정의 경계선을 부드럽게 넘어서리라고는 일반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성비와 기성 문화에 따라 대개는 구애자의 입장에 처한 20대 남성에게 연상되는 찌질함의 문제 또한 상당부분 위의 요소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20대 남성 숙맥들은 예전처럼 마초나 젠틀맨으로 살기 어렵지만, 가부장적 고비용 연애 문화의 구습에서 아직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랑할 자원이나 기회를 받지 못한 초식남들이 여성을 두려워하거나 적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우리가 종종 목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과 혐오는 사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기회로 인해 연애 시장에 훈련된 남성이 아닌 숙맥 남성들을 공급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때다.
구조적 실업이 있듯이 구조적 솔로도 있다
젊은 층이 연애를 그만두고 있는 것은 미국, 일본, 한국 가릴 것 없이 유행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구적으로 젊은 세대가 윗세대 보다 못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젊은 사랑의 총량이 줄어들고 혈기가 섹스로 분출되지 못하고, 접촉자체가 희귀해진 시대에서 성욕의 프로이트가 재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개인이 노력이 부족해서 가난한 것이라는 주장이 신빙성이 없듯이, 사랑과 연애에도 구조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 기성세대는 전쟁 통에도 사랑이 싹텄다며 우스갯소리로 젊은 세대를 나무란다. 거기다 대고 전시만큼 평등이 유지되는 게 없고, 전쟁은 망설임을 제거 해준다는 진지한 반론을 가해야 한다는 것도 영 모양새가 이상하다.
그러나 자판기 커피로도 사랑을 나눌 수 있던 시대의 낭만이 이미 오래전 그 유통기한을 다했다는 것을 빠르게 인식해야한다. 못난 사람이 연애를 못한다는 주장을 단순하게 못난 세대라 연애 하지 못한다며 그대로 확대할 수 없듯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조적 솔로들의 고립이 성별혐오의 요람이 될 수 도 있다는 걱정이 벌컥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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