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인행사]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오타케 시노부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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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 있던 여자 아이는 나가자고 한다. "답답하고 시끄럽고 따분하지 않니?"
"곰이 아홉 발자욱 걷고 뒤돌아보는 건 냉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야. 좁은 곳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이 영화, 겉멋을 부리는 영화일 줄 알았는데, 그냥 쿨하다. 자유롭고 싶어하는 주인공처럼, 영화는 자유분방하다.

정일이라는 친구가 재일조선인 여자 아이를 구하려다 칼에 맞아 죽는 장면부터 급격하게 눈물샘을 자극할 것 같지만, 결코 보복이나 슬픔으로 흐르지 않는다.
스기하라는, 복수하자는 다른 재일조선인 친구에게, 정일이는 복수를 원하지 않을 거라고, 그저 난동 부릴 핑계거리 아니냐고 묻는다.

결국 이 영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빌려 이야기한다.
이름이 뭐 중요하냐고. 그저 다 껍데기뿐이지 않냐고.
왜 뭐라, 뭐라 이름 붙여 놓고, 그래서 자신의 우위를 발견하려고, 혹은 그렇게 자신을 확인하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진정으로 코스모폴리탄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무작정 멋을 내기 위해 빠르게 흘러가지도, 괜시리 컷 속도를 흔들지도 않는다. 캥거루처럼 아버지와 시합을 하는 장면에서, 무대뽀로 싸우는 대책없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 화면을 빨라지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벽에 부딪쳐 하늘을 바라보는 샷에서 잠시 멈춤으로 남는다. 후까시를 위한 편집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청춘영화의 겉멋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머러스한 장면에 그런 기법들을 활용한다.
스기하라와 처음 만나는 장면, 마지막 장면에서 사쿠라이는 별똥별을 봤다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 내린다고, 유치하다고, 챙피하다고 한다.

영화는 이러한 대사처럼, 진정으로 멋있는 화면을 거부한다.
그런데도 멋있다.

줄곧 되뇌여주는 스기하라의 대사 '이건 연애 이야기다.'
맞다, 연애 이야기는 그냥 연애 이야기일 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게 바로 이 영화에 대한 예의다.
[GO], 좋은 연애 이야기다. 좋은 연애, 사랑은 언제나 모든 걸 말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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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혈쌍웅 (보정판) [dts] - [할인행사]
오우삼 감독, 이수현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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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종횡사해>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색창연하다.

주윤발은 좀 더 젊은 느낌인데, 이수현과 더불어 폼생폼사의 극치를 보여 준다.
역시나 <종횡사해>에서 친근한 형사로 나왔던 배우와 같이 나와 선후배 관계를 보여 준다.

나 같은 범인은 강호의 의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의리라는 것에 감동하지는 않는 거 같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 윤발 형님은 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의리를 지켰다가도 예의를 져 버리기도 하고, 예의를 지키다가 또 의리로 빠져들곤 한다.

그럼, 의리란 도대체 뭘까?
영화로 보자면 한마디로, 나한테 중요한 사람을 위해서는 무조건 쏜다, 아닐까?
누가 나자빠지든 말이다.

각설하고, 이제는 약간 부담스럽다.
오히려 예전 쇼브라더스 영화들이나 서극 영화에서 보이는 결투 씬들이 더 의리, 예의에 어울리는
협의 정신에 가까운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했던 것보다 잔인한 장면이 많다.
총뿐만이 아니라, 칼 등으로 찌르는 장면도 많은데 어떤 의미에서는 제대로 박정한 그 세계를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의외로 요즘 다시 보게 되는 건 오우삼의 장기는 액션 씬이 아니라
순진할 정도로 낭만주의에 빠져 있는 로망스 씬들이 아닌가 한다.
이 영화는 특히 자신 때문에 눈에 상처 입은 여가수와 그녀를 위해 몰래 도와 주는 킬러, 라는 설정 자체가
그러한 애절함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잦은 몽타쥬와 플래시백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씬들을 남겨 준다.

이 영화의 리메이크 같은,미키 루크가 나왔던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역시 꽤 좋았던 걸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지금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뒤를 잊지 마'(뒤에 있는 친구, 라고 했나?)라며 하여간 총을 뒷춤에 숨겨 놓고, 악당을 죽이는 장면은, <다이하드> 1, 2 중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아마도 <첩혈쌍웅>이 먼저가 아닌가 한다.
재밌네...

다음에는 <다이하드1>을 찬찬히 봐야겠다. 나에게는 왠지 크리스마스 영화로 기억되는, 아... 설렌다.

아, 약간 섭섭함만 늘어놨는데, 그래도 <첩혈쌍웅>을 비롯한 오우삼의 영화들은 좋다. 몇 가지 영화들은 각각의 스타일에서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순박하니까. 그리고 <첩혈가두>도 얼른 다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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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도니 다코 감독판 (2disc)
리처드 켈리 감독, 제이크 길렌할 외 출연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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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판단착오였다!
완전 새로운 물건을 보았다!

꽤 새로운 공포영화일 거라는 기대감으로 디비디를 구입하고 두근두근, 오래간만에 움찔해 보고자 마음 잡고 영화를 시작했는데, 그냥 평온한, 조금은 엇나가는 한 청년의 이야기만 계속 나온다. 저러다가 언젠가는 확 터지겠지,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괴물도, 세상 종말도 나오지 않은 채 갑작스런 플래시백(플래시백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되돌려 놓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으로 결말을 맞는다.

아, 이 영화 공포영화 아니었구나, 끝나고나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서플먼트를 보면서 혼자서 영화를 다시 짜맞추기하면서, 나만의 플래시백을 해 보는데 스멀스멀 영화의 기운이 나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의 포인트를 잘 보여 주는 한 장면이 바로 극장에서 주인공 남자(제이크 길렌할, 인가... 브로크백 마운틴에 나온 남자란다. 아직 안 봐서...)와 여자 친구, 그리고 영화를 끌고 가는 모호한 토끼 캐릭터가 함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다음 그림은, 그 토끼의 정체이다. 마치 피 흘리는 유다 같다는 느낌이다.

글쎄, 이 영화의 내용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사실 원래의 취지에 안 맞는 것일 수도 있다. 한마디만 하자면,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 그렇다면 그 시간은 절대적인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축약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미래의 나가 건드릴 수 있는 지금의 나, 그렇다면 그 미래의 나 역시 지금의 나처럼 불확정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모든 변화의 시점이 되는 곳에서 결단을 내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게 된다.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내가 이것저것 짜깁기해 본 결과, 그렇다는 것이다.

1988년 부시와 듀카키스가 대결을 벌이던 때가 배경으로, 극단적인 반부시 노선을 보여 준다. 한편으로는 한없이 보수로 치달아 가던 80년대 후반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중간에 클린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금 역시 하나도 나을 바 없는 쌩보수의 시대라는 걸 얘기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그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불안정한 청춘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주인공 주변의 캐릭터들을 통해, 상처받은, 혹은 나름의 짐을 하나씩 지고 있는 그 나이 또래, 혹은 그 세대 전체의 트라우마를 보여 주는 듯도 하다.

어쩌면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와 또 다른 방식으로 불안정한 시간과 공간, 그 속의 인물을 보여 주는 영화는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몇 번은 더 보아야 할 것 같은, 그렇게 봐도 질릴 거 같지 않은 영화다.
참고로, 김봉석 기자가 쓴 리뷰가 있는데, 아주 잘 정리해 놓은 것 같다.
http://www.cine21.com/Magazine/mag_pub_view.php?mm=005004001&mag_id=15585

참, 그리고 제이크 길렌할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몽롱하고, 순수해 보이고, 좀 덜 떨어져도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는 날카롭게도 변하는 주인공, 처음에는 뭐 저런 인상의 녀석이 있나 싶었는데, 영화를 쭈욱 보다 보니, 아, 저게 캐릭터였구나... 그렇다면 저 배우 진짜 장난 아니게 연기한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눈빛, 잊히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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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팔이 3부작 박스세트 (3disc) - 할인판
장철 감독, 왕우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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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티브이로 봤던 쇼브라더스 영화를 오래간만에 제대로 감상했다.
스펙트럼에서 꾸준하게 출시하고 있는 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인데, 장철 박스세트 중 하나다.
(여담이지만, 스펙트럼의 시리즈들 참 괜찮다. 뭐랄까 뚝심이랄까, 공력이 느껴진다. 조타아~~~)

몇 년 전에 봤던 <용문객잔>과 비교해 봤을 때, 영화적 밀도는 떨어지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무협물의 구조로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 같다.
그리고 세트 미학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감흥을 준다.

액션 씨퀀스 역시 지금의 것들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 컷 분할은 정말 대단하다.
(몇몇 과장된 표정들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반영이니 넘어간다.)

거의 끝나갈 즈음 나오는 어느 길목 찻집에서 왕우와 네 명의 방해자들과의 결투 씬은 이후 모든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후까시의 전형을 보여 주는 놀라운 씬이다. 원더풀~~~!

그리고, 후반부에 사부를 구하러 가는 왕우와 어렵게 싸우고 있는 사부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 주는 기법은 대단한 긴박감을 안겨 준다.

뭐, 왕우의 표정은 더할나위 없이 이후 주윤발, 양조위, 이연걸를 비롯해 많은 중국 남자 배우들에게 일정 정도 영향을 준 듯하다. 음, 묘하다!

나머지 네 편, 그리고 이명세의 <형사>, <용형호제 1,2> 섭렵해야 하는 무협 리스트다.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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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리버 (1disc) - [할인행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숀 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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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잔인한 것이고, 살아 남은 자들의 잔치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슬픔을 담고도, 살아 있다고, 손으로 총 모양을 하면서 서로를 겨눠도, 웃을 수 있는 자다. 살아 있기에.

어릴 적 소꿉친구였던 세 명(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은 어린 팀 로빈스가 추악한 백인 남성 두 명에게 끌려가 3일 동안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부터 운명의 갈림길에 들어선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지만, "그때 다른 사람이 잡혀 갔다면..." 이라는 가정은 운명의 잔혹함을 말해 줄 뿐이다.
사실 어린 세 친구 중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었다. 비겁하지도, 회피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다. 그저 추악한 백인 남성 두 명을 만난 것이 잘못일 뿐.

그리고, 모두가 어른이 되고, 팀 로빈스는 그때의 충격으로, 겉으로는 정상적이지만 약간은 나사가 풀릴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셋은 모두가 자주 얼굴을 보지 않는, 얼굴을 봐도, 그냥 동네 이웃인 양 지나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숀 펜의 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줄거리를 다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문제는 운명일 뿐.
그 누구도 가해자가 아니다.
그저 피해자만 존재하는 비정한 현실, 그건 신의 장난일까?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제시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 이전 영화인 <미스틱 리버>에서는 그 선택마저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지경으로 인물들을 몰아간다.
혹시 이 영화에서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초월자-신이 아닐까?

유장한 흐름의 플라잉 캠으로 강을 따라 도시로 진입하는 첫 신과 마지막 신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안개가 낀 강과 마을과 사람들의 얼굴은 어쩔 수 없다.
혹은 그에 대비해서 햇살이 강하게 내리비치는 화면은 서글프다.
영화 중간에 딸의 장례식을 치르고, 집 뒷편 베란다에서 어설프게 위로하는 팀 로빈스와 숀펜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그때 팀 로빈스는 야트막한 그늘에, 숀 펜은 강렬한 햇살에 노출된 채 울먹이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어쩌면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이었을지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답게 음악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배우들의 연기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간을, 우연성을, 딜레마를, 사람과 사람 사이를 탐구하는 노장의 시선은 그 어떤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진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대중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이다.

클린트에게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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