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는 만년필을 아느냐, 만년필 잉크 냄새를 맡으며 코를 벌름거려 보았느냐. 내가 지금의 너만한 아이였을 적에 나에게는 만년필이 없었다. 돈이 없어 그걸 사지 못한 게 아니다. 나는 너무 어려서 만년필을 사용할 자격이 없었던 거다. 어린 것들은 연필로 글씨를 써야 한다는 게 어른들의 생각이었다. 연필은 글씨를 썼다가도 마음대로 지울 수가 있는 필기도구다. 하지만 만년필 글씨는 한 번 쓰면 더 이상 고칠 수가 없다. 고쳐 쓸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소리다. 글씨도 삶도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만년필을 쓰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