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美)를 사랑하지만 절도 있게 사랑한다. 지(知)를 존중하지만 탐닉하지 않는다. 부(富)를 추구하지만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 어리석게도 부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일신의 가난은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함은 깊이 부끄러워 한다."

- 페리클레스 연설 중에서

<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김경준, 원앤원북스, 200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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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극장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영화를 보았다. 와이프 생일이어서 용인 민속촌에 가려다가 작년과 같은 이유로(추워서) 그냥 서울에서 영화를 봤다. 와이프가 <사랑해 파리> 보자고 하는 걸 내가 이 얘기 저 얘기 해서 <황혼의 사무라이> 보는 걸로 바꿨다. 맘씨 고운 와이프 히메. 참고로 이 글은 스포일러성이다.

잠시 나 사는 이야기 좀 하고.

사무라이의 일상을 잘 그리는 데 성공했다기에 맘이 끌린 영화다. 요새는 그렇다. 삶 그리고 그 속의 사람. 이 둘이 없으면 영화를 봐도 본 것 같지 않다(가끔 보는 스트레스 해소용 영화는 빼고). 이제 서른을 갓 넘겼을 뿐인데, 한동안 먹기를 거부했던 나이를 이제 다시 먹고 있나보다.

내 기억이 미치는 가장 오래된 시간부터 남들은 내게 '어른같다'는 말을 했다.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다보니 애어른으로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갑자기 원통했다. 제 나이에 맞게 살지 못한 서러움이 밀려와서 그 전에 못했던 애 노릇 좀 하기로 결정했다. 한 10년쯤 그렇게 살았다.

여기부턴 영화 이야기다.

폐병으로 아내가 죽자, 아니 아내가 죽기 전부터 홀로 집안일을 모두 챙겨온 이구치 세이베이. 창고 관리 공무원인 그는 업무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향하는 '황혼의 세이베이'다. 직장 동료들은 몸도 잘 씻지 않고 옷차림도 변변치 않은 그를 두고 뒷담화를 즐기곤 했지만, 우연히 치른 결투에서 상대를 가볍게 제압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그를 '황혼의 사무라이'라 부른다.

이구치가 살던 번주의 주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전통에 따라 이전 정치 세력들은 할복을 명령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요고라는 한 사무라이가 할복을 거부한다. 일대에선 최고의 검객으로 인정받는 인물이었던바, 그를 죽이는 임무가 이구치에게 하달된다. 이구치는 자기의 소신과는 상관없이 가족을 위해 명령을 받아들인다.

그를 죽이러 갔으나 그를 기다린 건 칼이 아니라 가슴 깊은 대화. 요고는 자신의 비참한 삶을 술과 곁들여 술회한다. 요고에 못지않게 어려운 삶을 사는 이구치는 대화에 빠져들고 그에게 마음을 연다. 생활이 어려워 칼을 팔았다는 이구치의 말에 일순간 분개한 요고가 드디어 칼을 빼들고, 요고의 장검과 이구치의 단검이 맞부딪힌다. 가까스로 승리한 이구치에겐 첫사랑 토모에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 행복은 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세이베이는 메이지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뜬 불운한 '황혼의 사무라이'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정말 불운했을까? 요고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이구치는 자신의 삶이 절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가족을 위해 밭을 일구며 최선을 다하는 자기의 삶을 이구치는 긍정한다. 그렇기에 사무라이의 긍지인 검도 가족을 위해 처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삶을 '가족주의'라 비난할지도 모른다. 다른 이는 구차하다며 이런 삶을 거절할지도 모른다. 분명 폼 나는 삶은 아니다. 허나 진실한 삶이다. 생계만을 위해 사는 게, 어쩌면 인간답지 않은 삶일지도 모른다. 생계 이상을 꿈꾸는 것, 불멸을 꿈꾸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말도 설득력 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진정 '초월'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명예의 탑 꼭대기에 이름을 남기는 것만이 인간이 꿈꿔야 하는 초월이고 불멸의 삶일까. 초월, 무언가를 넘어서는 것, 나를 넘어서는 것, 치매에 걸린 노모를 위해, 이제 막 생명의 파란 싹을 틔운 어린 딸들을 위해 자기를 버리고 투신하는 것. 나는 이 영화에서 '일상의 초월'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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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는다. 아마도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거나, 책보다 더 매력적인 매체가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비주얼 시대라 하지 않는가. 이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실용적 필요 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 나를 찬찬히 돌아볼 때마다 내 마음속 청개구리를 발견하곤 한다. 남들이 뭐라건 내 하고 싶은 대로 살려고 애쓴 삼십 년이다. 그게 지나쳐 어떤 때는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남이 그걸 하라고 하면 하지 않기도 했다. 몸쓸 기질이다. 약간은 후회도 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걸 누군가 권했던 적이 많았고, 진작 그걸 했더라면 지금보다는 좀 더 맘에 드는 내가 되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만난 건 대단한 행운이다. 이미 밝혔듯이 난 이 책을 순전히 실용적 필요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대해 아는 이와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해서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들러 제 값을 주고 책을 샀다. 솔직히 18000원이란 돈은 이 책의 제 값은 아닐 거다. 인터넷 서점에서 각종 할인을 받아 사는 사람에게는 적정한 가격인지 몰라도 나처럼 버스비 들여가며 표지에 적힌 가격 그대로 지불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분명 거품이 낀 가격이다. 그래서 돈을 지불할 때는 아까웠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십여 쪽 읽었을 때 이런 감정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책이 있을 줄이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주얼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문자보다는 이미지와 영상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 책을 잡고 있는 순간만큼은 TV도 만화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내가 강연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오주석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문장 중간중간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적어두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아하!' 하고, '하하~' 했다.

이미지 시대라고 책에도 이미지가 많이 들어 있곤 하는 게 요즘 추세이다. 하지만 이미지가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글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있으면 우선은 보기가 좋긴 하지만 글이 이미지를 리드하지 못하면 (특정 분야의 책을 제외하곤) 책은 뒤뚱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글과 그림을 오가는 내 시선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편안했다. 글의 리더십이 대단했다. 이런 글을 가능케 한 강연자의 수준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오주석 선생님 생전에 강연을 듣지 못한 게, 아니 그런 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게 아쉽다. 내용이 얼마나 공정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평가야 지체 높은 학자 양반들이 할 일이고, 나 같은 사람이야 이렇게 친절한 안내서를 보고 한국의 미가 무엇인지 어슴푸레하게나마 아는 게 목적 아니겠는가. 우리의 미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이 책을 계기로 분명 달라졌고, 앞으로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탐사하는 즐거움이 나와 함께할 것이다. 내게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모든 분께 감사한다. 앞으로 오주석 같은 분이 많이 나와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수준 높은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길을 터주었으면 좋겠다.

하나만 짚고 글을 마치겠다. 이 책은 대단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다른 책에서라면 별로 아쉽지 않을 부분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두어 군데서 드러나는 출판사의 무성의한 태도 때문이다. 우선 74쪽 이미지가 흐릿한 게 맘에 안 든다(내가 갖고 있는 책은 1판 24쇄임). 74쪽의 흐릿한 이미지는 하단부에 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 이상을 하지 못한다. 흐릿하기 때문에 71쪽으로 자꾸 돌아가게 만든다. 기술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선명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또 227쪽과 229쪽 사진 이미지는 도대체 뭔가. 사진 자료는 이보다 더 좋은 걸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24쇄 정도나 팔았으면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문구-"워싱턴 주미대사관이 선정한, 전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가장 훌륭한 명저!"-가 부끄러울 지경이다(혹 외국판에는 더 좋은 이미지가 들어가 있는 건 아닌지?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무슨 자동차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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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5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에도 그런 결정적 결함이 있었군요.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더욱 아쉽게
느껴지셨을 것 같아요. ..
 
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 작품이 한데 묶여 있어 평을 하는 게 만만찮다'라는 생각이 들 만한 단편 모음집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독서 경력이 워낙 미천해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한때는 판타지를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판타지가 무척이나 진지하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의 현실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판타지들이 보여준 세계가 자못 놀라웠기 때문이다. 이 작품집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한용운의 <복종>이 연상되는) <자유의 감옥>, 악의 근원을 대중의 망각에서 찾은 <교외의 집>, 삶의 평안을 위해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망각한 사람들을 회의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 <미스라임의 동굴>, 좀더 진지한 버전의 <연금술사> 정도로 여겨지는 <긴 여행의 목표> <길잡이의 전설>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유쾌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등장하는 <조금 작지만 괜찮아>, 무언가의 본질을 찾아 떠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사람들의 냉소를 표현하려는 듯이 보이는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까지. 어쩌면 판타지는 삶과 사회의 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에 구애받지 않고 상상력과 기지를 맘껏 펼칠 수 있는 장르가 판타지니까 말이다.

 

판타지여서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대개 (넓은 의미의 정치와 좁은 의미의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글들은 재미없기 마련이다.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그 정답을 좀더 정답답게 보이기 위해 애쓰는 글이 재미있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지 않을까. 엔데도 참 올바른 생각만 하는 사람 같다. 글에서 그런 냄새가 솔솔 풍긴다. 그런데 글이 재미있다. 어려운 일인데 훌륭하게도 잘 해냈다. 오랜만에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재미있는 책을 한 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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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베틀북 그림책 13
프리드리히 헤헬만 그림, 미하엘 엔데 글, 문성원 옮김 / 베틀북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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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미하엘 엔데의 작품이다.

시골 마을의 작은 극장에서 대사를 잊은 배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대사를 읊어주는 일을 하던 오필리아가 주인 없는 그림자들을 받아들여 그림자 극장을 열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다가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

그림자들의 이름이 유별나다. 그림자 장난꾼, 무서운 어둠, 외로움, 밤앓이, 힘없음, 덧없음, 죽음. 멋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떨쳐 버리고 싶은 자신의 초상들이다. 마지막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거부하고 싶은 삶의 종착역. 엔데는 이런 가치들을 거부하거나 못 본 체하지 말고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각각에 걸맞은 역할을 찾아주라고 말한다. 동화 속 오필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으니 오필리아처럼 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른다. 안 되는 게 되길 바라는 것만큼 무모한 것도 없으니까. '숙명'이니 '운명'이니 하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문제는 엔데의 제안을 머리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점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하긴 오필리아도 쭈글쭈글 할머니가 되어서야 (원래는 자기 것이었겠지만) 주인 없는 그림자를 처음 만났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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