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2003년 여름 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쯤 집에 누워 있다가 아르바이트 생활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3개월 만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한 7개월쯤 더 일했다. 직장을 옮겨 8개월 동안 일하고, 또 한 달 쉬고 직장을 옮겼다. 그 직장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직장을 잡고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처음 직장을 잡을 때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정답은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직장은 내게 낭만적 공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정말 그런가?'싶었다. 낭만과 현실이 일치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 세상에 그런 행운을 손에 쥔 사람은 흔치 않아 보였다. 한 택시기사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아서 일 하는 사람이 흔한가. 그냥 하는 거야. 하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좋아지기도 하고. 그러니 그냥 해."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욕심이 많으니까.

그런데 난 나빴다. 내가 지고 있어야 했던 수많은 책임들을, 나를 아끼는 분들에게 떠넘겼다. 그러고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눈을 감는다고 있는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의 어깨 위에 있는 짐은 원래 내 몫이었다는 것. 나는 이것을 머리로만 알았다. 머리로만 아는 건 내 문제가 아니다. 머리로만 아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쉽게 생각하고 쉽게 내뱉는다. 세상이 쉽다.

고민을 해야 한다. 도덕 교과서 속 정답을 외우고 있다가 줄줄 내뱉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런 말과 행동은 울림이 없다. 속이 텅 비어 있다. 그 사색의 깊이가 빤히 보인다. 그런 것으로는 자신도, 남도, 세상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위안일 뿐이다. 적어도 자기는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산다는 위안. 냉정히 따져보면 그 착한 삶은 나쁜 삶이다. 꼭 그렇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럴 가능성은 많다. 무인도에 있지 않은 한, 사람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무책임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편한 것은 전염성이 높다. 세상이 무책임해진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대학 시절 한 선배가 말했다. "세상에 좋은 것 볼 시간도 모자란데 나쁜 것 볼 시간이 어디 있냐." 그땐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내 시선은 변했다. 그래서 그때 그 선배의 말을, 지금은 용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이 책의 본문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만약 당신의 가치관이 '능력에 따른 차이도 인정하기 어렵고, 성과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면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살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경제활동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중략) 자신이 따를 수 없는 규칙을 가진 게임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이는 그 게임에 참여하는 개인의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불행이고, 다른 사람의 건전한 게임 진행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더 큰 불행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냉랭한 세계관이다. 1,2년 전에 이 책을 만났다면 책을 펼치자 마자 바로 던졌을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그때의 대학 선배와 같았다. '이상', '꿈',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들', 내가 신처럼 떠받들던 가치들을 통째로 짓밟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이 사회의 시스템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개혁할 의지도 시스템 바깥으로 뛰쳐 나갈 용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자각을 한 지금은, 이 책이 보여주는 현실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기에 좀더 진지하게 생각할 예정이다.

나는 이 책이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젠 가벼운 농담 같은 말을 줄여야 할 것만 같다. 비록 내 농담에 진리가 담겨 있을지라도 나의 진실이 아니라면 함부로 하지 않겠다. 사람들이 사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그 현실에 메스를 대려면 책임을 깊이 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변증법 원리대로 돌아간다. 오직 그것만이 영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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