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네버랜드 클래식 10
마크 트웨인 지음, 이희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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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기분이 조금 울적한 날엔 이 책을 읽었습니다. 왕자 옷을 입은 거지 톰이나 거지와 옷을 바꿔입은 에드워드 왕자가 만드는 에피소드들이 너무 웃겨서요. 사람들은 그들이 바뀐 걸 아무도 몰랐으니 그들딴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얼마나 우습게 되었던지! 왕자 옷을 입은 거지가 당연히 잘 알고 있어야 할 라틴어를 하나도 모르게 된 것을 발견하곤 궁의 선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왕자가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단정짓지만 그래도 체통을 생각해서 쉬쉬하는 부분이나, 거지 옷을 입은 왕자는 자기에게 집과 옷과 밥을 준 핸든에게 왕과 마주앉아 식사하는 걸 불경하다며 자신의 식탁 맞은편엔 앉지도 못하게 하고 수건이나 손씻을 물 따위를 가져오는 시중을 들게 하는 장면 등등.

나는 이 책을 읽고나면 이 두 어린이가 만드는 좌충우돌의 상황이 너무 웃겨서 언제 기분이 안좋았었냐는 듯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생긴 것이 워낙 비슷하긴 하지만 가족조차도 그들의 뒤바뀜을 눈치채지 못하다니-오직 톰의 어머니만이 자신의 아들이 바뀐 걸 눈치챘죠-,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그리고 이 책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그럴 능력과 성품이 있든지 없든지에 전혀 상관없이-심지어 미쳤다고 단정지어지더라도- 그저 왕의 아들의 옷을 입고 있기만하면 왕이 되고, 사실 존귀한 사람인 건 마찬가지인데, 거지옷을 입고 있으면 아무도 죽든 살든 관심조차 없고 발길로 차이기만 하는 세상이라면 너무 불합리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거와는 조금 다르게 왕자든 거지든 어느 자리에서든 그 자리에 있어본 사람만이 아는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중요한 건 그가 서 있는 자리의 영광이나 비참함이 아니라 사람 자체인 거라고 생각이 되요. 거지였던 톰은 왕자의 옷을 입은 후 손씻을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식의 바보같은 행동만 했지만, 백성에게 관대한 법을 제정하여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고, 자신이 영원히 소유할 수도 있었던 왕의 권좌를 진짜 왕자에게 양보하며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위대해졌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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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
스탕달 지음, 원윤수.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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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에요.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2권의 초반부였는데요, 그건 바로 파브리스가 자신을 파멸시키려고 일부러 죄를 덮어씌운 적인 파르마 공국의 간수장 콘티의 딸 클렐리아를 사랑하게 되는 부분이죠. 파브리스는 클렐리아가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독살하려는 자들이 감시하고 있는 그 감옥탑을 천국이라 여기며 창가에서 늘 그녀를 기다리고 먼발치로 그녀에게 말을 걸고 그리고 클렐리아가 한번 바라봐준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그리하여 나는 지상에서 나의 천국을 발견하리니' 따위의 절절한(조금은 유치한^^) 시를 짓기도 하며 지내죠. 그 시간들이 가슴이 아플정도로 낭만적이었어요.

철이 없고 공상적인 성격에 천진난만한 사랑스러움을 지닌 귀공자 파브리스-주인공인 그의 성격이 그래서인지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는 이야기 전개가 긴박하든 비참하든 일단 밝게 느껴지죠-나 고집세고 영리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파브리스의 고모-조카 파브리스가 어릴때부터 그를 사랑해온-와 파브리스의 탈출을 도와주고는 자신이 아버지를 배반했다며 스스로 파브리스를 다시 안보겠다고 선언하여 그 둘의 사랑을 비극으로 만드는 차분한 구원상의 신비로운 소녀 클렐리아.

비록 후반부의 결말이 상당히 이상하고 허무했지만, 뭐 어떻습니까, 스탕달은 <적과 흑>에서도 그랬지만 정말 글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비범한 재능을 지닌 천재적 작가입니다. 2부 초중반의 파브리스와 그의 고모, 클렐리아가 만든 삼각관계는 무척 인상적으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하고 보살펴온 고모의 마음을 모른체 저버리고, 한순간에 자신의 온 영혼을 가져간 클렐리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파브리스의 괴로웠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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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의 형제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옮김 / 범우사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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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라마조프가의 네 형제 중 첫째인 미샤는 막내 알료사를 끔찍히 아낍니다. 그는 동생에게 말하죠. '얘, 알료사, 네가 이 세상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 내가 만일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다 너를 통해서야. 네가 있기 때문이야'라고요.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미샤의 대사를 읽으면서, 그게 과연 그저 가장 아끼는 동생에게 할 수 있는 정도의 말인가, 아무리 착하다 한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헛점이 있는 미약한 인간일 뿐인 동생에게 갖는 마음치고는 너무 정도를 넘어선게 아닌가, 마치 그는 동생을 '절대선'과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그런 절대적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의 순수한 마음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때문에 미샤가 좋기도 했지요.

그런데 책을 처음 읽은 후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미샤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미샤는 동생 알료사가 완벽하고 선하다고 생각해서 그를 믿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본래 믿음이라는 건, 사랑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미샤가 알료사를 그토록이나 소중히 여겼고, 그런 마음이 드물게 귀한 것이며, 그런 마음 때문에 그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지, 역시 약점이 많은 알료사가 정말 그런 믿음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아닌가가 아닌 겁니다.

나 역시 나와 함께인 소중한 사람들을 보며 미샤가 알료사에게 했던 말과 꼭같은 말을 해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게 그들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지 그들은 알지 못하겠죠. 그야 평범하고 지루한 나날 속에서 나도 가끔씩은 잊고 사니까요. 나는 미샤가 그렇듯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삶을 구원해줄 소중한 사람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나는 그런 점을 깨닫게 해 준 미샤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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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41
기 드 모파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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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르와젤 부인은 친구에게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무도회에 참석합니다. 평범한 서민의 딸로 태어난 자신의 인생에 늘 불만 투성이였던 그녀에게 그 단 하룻밤은 대단한 것이었죠. 그날밤 그녀는 자기자신이 더할나위없이 아름답다고 여겼고, 자신이 모든 사람(특히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신은 다른 부유한 여인들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태어났으나 그들과 같은 화려한 차림이 아니어서 늘 주목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즉 화려한 드레스와 목걸이만 있으면 완벽히 사교계를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녀는 그날 밤의 자기자신에게 완전히 취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목걸이를 잃어버리는 사고를 당하고, 그 비싼 걸 잃어버렸다고 친구에게 차마 말을 못한 그녀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그 목걸이와 똑같은 걸 친구에게 사서 돌려주고 10년동안이나 하층민과 같은 생활을 하며 그 목걸이값을 갚아나가기로 하죠. 그리하여 그녀의 생활수준은 서민에서 천민으로 다시 하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다지 그런 상황에 불평을 하지 않지요. 아마도 그녀가 그 고된 10년을 고되다 여기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빛나는 목걸이를 걸고 무도회에서 춤을 추었던 그 단 하룻밤의 달콤하고 꿈같았던 시간이 너무도 아름다웠기에 그 하룻밤이 비록 10년동안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었을지언정 조금도 원망스럽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난 그날 아름다웠어, 그걸로 됐어. 그날 하루의 사치 때문에 이제와서 이렇게 고생하게 되었다고해도 어쩔 수 없지.' 아마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긴 시간의 고생을 감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목걸이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가 그날밤 아름다웠던 건 친구에게 빌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있어서가 아니라, 목걸이를 건 자신이 아름답다고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엔 낡은 옷때문에 자신감이 없던 그녀가 그날만은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하지 않고 유쾌하게 다정하게 환하게 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 이야기는 별로 비극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녀 자신이 10년의 세월과 맞바꾼 그 단 하룻밤을 비극이라 여기지 않고 10년을 지냈으니까요. 10년후에 그 문제의 목걸이가 사실은 값싼 것인걸 알았지만 그게 그녀에게 그리 통탄해할만한 일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 가짜목걸이로 인해, 그게 가짜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절대로 아름답지 않았을 그날밤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으니까요. 진짜 못지 않은 역할을 해낸 가짜 목걸이를 위해 희생한 시간이 뭐 그렇게 아까웠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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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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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 중에 실린 단편 <러브레터>는 전에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파이란>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영화는 <러브레터>의 배경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꾸고 주인공의 상황과 성격 등의 설정과 이야기의 전개를 상당수 바꾼 것이었습니다만, <러브레터>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의 느낌은 그대로 살렸더군요. 바로 죽은 여주인공이 자신의 서류상 남편인 고로씨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아니, 러브레터라기 보다는 감사의 편지말입니다.

그 여주인공은 무척 가엾은 일생을 산 사람이었죠. 중국에서 타국 일본으로까지 건너와서 매매춘을 하며 가족에게 생계비를 보내며 살아가다가 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가난한 여인이요. 주어진 상황으로 볼 때 그녀에게 인생이라는 것이 그다지 아름답거나 축복받은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낯선 타국의 여인에게 주변의 일본인들이 그녀에게 인정을 많이 베푼 것도 아니었을 거구요. 그런데도 그녀는 죽어가면서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서류상의 남편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그 중 당신이 가장 친절하다고, 왜냐하면 자신과 결혼해 주었으니까 그렇다고요.

사실 야쿠자인 고로씨는 그녀를 만난 적도 없거니와 그녀에게 조금만치의 동정심이나 친절한 마음도 가져 본 적 없었죠. 아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당연히 아내라고 생각해 본 적도 한번도 없었겠죠. 하지만 죽은 그녀가 남긴 감사의 편지는 그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을 적에 한번도 친절한 마음을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홀로 타국에서 죽어간 가엾은 그녀의 처지. 평생 외롭고 비참했던 그녀의 일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맑은 그녀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이제 영영 잃었다는 슬픔이 그제서야 그를 흔들었으니까요.

무엇하나 해 준 것 없는 상대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미안한 일이 또 있을까요. 더욱이 그 사람이 너무나 힘든 상황속에 있던 사람이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내가 마음만 있었다면 그 사람 옆에서 무언가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도 있는 처지였다면. 그런데도 그럴 생각조차 못했었다면. 더욱이 그 사람에게 이제는 무얼 해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져 버린 상황이라면...

고달프기만했던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고, 베푼 것 없는 주변 사람에게조차 많은 것을 받았다 여기고 고마워하며 삶을 마무리한 여주인공의 맑은 마음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고운 사람이죠. 그녀와 고로씨는 서류상으로만 부부였지 한번도 만난적이 없지만, 그래도 그녀가 죽어가며 남긴 그 편지로 인해 그들은 서로의 마음속에 평생 사랑으로 감사함으로 애틋함으로, 평생을 부부로 산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그렇게 소중하게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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