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짧막한 글들을 읽으며 에쿠니 가오리가 참 관계에 대해 냉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녀가 그 관계를 조금만치도 덜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너무 소중하기에 더욱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어떤 선, 꼭 유지해야만 하는 어떤 정도의 거리. 그런 것이 나를 좀 슬프게 했어요. 그냥, 따뜻할때는 나중에 그 느낌이 사라지거나 변할 거라는 걸 생각하지 않고, 그냥 따뜻하다고 말하며 걱정없이 행복해하면 안되는 것일까,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사람이란 존재인가 봅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일상풍경이 마음에 들어요. 아침에 빵을 사러가고, 비오는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책을 읽으며 오래 목욕을 즐기고, 공원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남편과 함께 벚꽃이 활짝 피어난 길을 드라이브하고, 그런 시간을 가만히 마음에 담고, 조금 더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그녀의 단정한 글이 그런 풍경들을 조용히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마음이 냉정해지는 듯, 혹은 절실해지는 듯, 혹은 행복한 것도 같고, 불행해지는 것도 같은 그녀의 차분한 글들, 대단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어쩐지 자꾸만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일반적인 삼각관계나 불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단순한 단어로는 설명불가능한 지극히 아름답고도 위태위태한 관계. 여기 자기자신이 지닌 본능적인 이익 대신 단순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연민만으로 함께일 것을 택한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깊은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서로의 아픔을 더 안스럽게 여기고,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따뜻히 보듬어 안아줍니다. 그리고 서로가 함께인 한 순간순간을 그토록이나 소중히 여기지요. 그렇지만 세인들의 눈으로 보기엔 아무래도 사이좋게 병립하기엔 너무도 어려운(서로의 이익이 너무나 배치되는) 세 사람입니다.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관계이고 그렇기에 더욱 짠하고 더욱 찬란한, 쇼코와 무츠키가 자주 함께 바라보는, 그리고 무츠키와 곤이 오래도록 바라봐 온 저 멀고도 먼 어두운 밤하늘 가득한 작고 애처로운 별들처럼, 바라보기 가슴아플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힘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성석제의 소설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간의 평들이 너무나도 훌륭해서 이미 어느정도는 그를 좋아할 준비를 하며 그의 소설을 펼쳤습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조금은 서툰 글이었어요. 어딘가가 허술한 듯 싶은 그의 글, 그러나 사실 사람이나 인생 자체가 본시 그리 허술한 것이기에 그런 그의 글이 오히려 인간을 그려내기에는 적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글에서 제법 날카로운 풍자나 해학, 반전을 찾으려했던 제게 그는 인간에 대한 너무도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그려놓은 조선선비 조동구의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를 통해 조선에서 선비로 살다간 많은 사람들의, 살아남기 위한 고충을 생각합니다. 충도 효도 그 시대에는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동구는 처음에는 생존의 수단이었던 그런 대의를 점차 살아가는 의미로 바꾸어나갑니다. 이 책의 말미에 쓰여있는대로 어쩌면 그의 대의가 옳으냐 그르냐는 이 이야기에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요. 그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진지하게 의미있게 살아나갔습니다. 그것이 위대하지까지는 않더라도, 어찌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기특하고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나도 조동구처럼 한걸음씩 성장하고 싶습니다. 처음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도구였던 것들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지키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내 생명을 걸고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할 소중한 그 무언가를 갖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삶의 무료함과 무의미함을 잊고 싶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4-05-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시드니 셀던을 가리켜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했지만, 진정한 연금술사는 성석제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그의 글맛을 들이면 헤어나올수가 없더라구요.
저도 '황만근은~' 이후 닥치는대로 성석제씨의 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의 신간장편소설. 너무나 보고싶어하다가 드디어 첫장을 넘겼을때 거기에 적혀있던 까마귀소년의 '모래폭풍'이야기에서부터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한문장 한문장이 모두 내겐 소중한 무언가가 되었고, 물론 중반에 상당히 구역질나는 살인사건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단연 최고로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자신이 가야할 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는 어릴때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후엔 어디에도 속할 곳이라곤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저주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지켜가야겠다며 15세에 가출하죠. 그리고 가출지로 정한 시코쿠로 가는 길에 누나같은 사쿠라를 만나고, 운명처럼 마음이 이끌려 머물게 된 고무라도서관에서 어머니이자 연인인 사에키상과 오시마상을 만나죠.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어머니와 누나와 형을 얻습니다. 진짜 피를 물려받은 아버지로부터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혈연을, 인생의 상처를 공유한 타인을 통해 따뜻하게 만나게 된거죠. 세상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았던 소년 카프카는 이제 드디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돌아갈 가치가 있는 장소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더없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카프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삶을 견뎌내기 위해 강해지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강해진 것은 그가 그토록 강해지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조건없는 이해와 사랑을 받고 그들의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 담을 쌓는 강함으로는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서로 보듬어주는, 영원히 자기편인 사람을 갖게 되면 그에게는 이미 두려울 게 많지 않은 겁니다. 정말 강해질 수 있는 거죠.

다무라 카프카군, 사에키상, 오시마상, 사쿠라. 그리고 직접 카프카와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다해도 이 이야기에서 카프카에게 다시없을 중요한 선물을 준, 머리가 좋지 않아 글자는 읽지 못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더없이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나가는 나카타 할아버지와 그를 따르는 호시노군, 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세상은 이토록 두렵고 거칠지만 그래도 진정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이런 역작을 쓸 수 있는 하루키는 역시 드물게 대단한 작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평점 :
일시품절


지난 여름에 이 책을 읽었어요. 두 달의 시간이 흘렀건만 이 책 속 등장인물들은 마치 내가 만났던 사람들인 양 하나하나가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허약한 몸에 열정적인 영혼을 지닌 매력적인 심술장이 츠구미를 비롯해, 그런 츠구미를 속속들이 이해해주는 참말 좋은 사촌이자 친구인 마리아, 천사같은 츠구미의 언니 요코, 그리고 어느날 산책길에서 만난 후 츠구미의 남자친구가 된 상쾌하면서도 어른스런 성격의 교이치.

여관을 운영하는 츠구미의 부모님, 아버지가 전처와 이혼할 때까지 오랜세월을 웃으며 바닷가 마을에서 아버지를 기다린 마리아의 어머니. 그리고 마침내 마리아의 법적인 아버지가 되고 만 모난데 없이 착실한 성품의 아버지, 그리고 츠구미의 조그만 강아지인 포치와 교이치의 덩치큰 강아지 겐고로 까지도... 모두 언제 떠올려봐도 너무나 사랑스럽죠.

하지만 이 소설을 떠올릴 때마다 그 인물들만큼이나 많이 생각나는 건, 늘 그들 곁에서 모두의 삶을 따스하게 감싸안아준 눈부신 바다예요. 이 소설 책을 펼치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바닷가의 짜고 습하고 시원한 바닷바람 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듯 합니다. 낮게 바닷가의 하늘을 나는 갈매기 소리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하구요. 이들처럼 어린시절을 바닷가마을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 소설의 마리아와 마리아의 어머니가 그렇듯이, 몸이 어디에 있든 마음 어딘가엔 항상 바다를 담고 살아가게 되지 않았을까요? 어느 거리를 걷든 바다가 있는 방향을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이들이 어린시절을 보낸 바닷가 마을 풍경이 너무 따뜻해서, 이 인물들이 서로, 그리고 그들의 개들과 함께 나눈 일상이 너무 특별한 것이어서 오래도록 이 이야기는 내게 그립게 추억할 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한없이 맑고 아름다운 수채화와 같은 이야기를 내게 선물해준 요시모토 바나나와 내 친구에게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