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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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이 저명한 문학 평론가인 줄은 진작 알았지만 그의 글을 이제야 처음 읽는다. 사람들이 꽤 많이 읽길래 대단한 에세이일 것이라 기대했는데 솔직히 기대보단 못했다. 내가 감히 황현산 선생의 문학적 소양과 깊은 비평에 대해 품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단 장삼이사의 뛰어나지 않은 글이라도 신변잡기나 문학과 예술에 대한 비평에 채점표를 들이밀 순 없다. 정답 없는 사안에 대해 불평하는 것밖엔 안 되니까. 그러나 글이 사회, 경제, 세계의 정의를 말한다면 어쩔 수 없이 채점의 대상이 된다.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면, 챕터 2의 사진 비평과 중간중간 나오는 영화와 문학에 대한 통찰은 명불허전이었다. 과연 한 평생 문학에 매진한 사람의 통찰이었다. 가령 기형도의 시 <빈집>과 사람이 떠나가고 빗장만 걸린 '빈집'을 연결하여 이끌어 낸 "불안이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라는 통찰이나, 글로 서로를 연결하는 것은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선생은 문학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문학의 울타리 안에선 그 시선이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투쟁하듯 살아가는 이 세계는 문학의 감수성으로 온전히 해석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선생은 오래된 것,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제일의 가치로 여겨 개발 논리를 종종 비판한다. 분명 그 논리의 일정 부분은 맞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에서 옛것이 그리움을 자아내고 자연이 안식처로 기능한다고 해서 현실의 옛것과 개발되지 않은 자연이 항상 그리움, 안식처와 동치 되진 않는다. 개발은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분명 우리가 지금 누리는 편리한 삶은 그 개발된 땅 위에 존재한다. 이미 누리고 있는 우리가 이제 와서 개발 논리를 감수성만으로 비판할 순 없다고 느낀다. 정치적 주장의 논거가 단순한 문학적 감수성에 기반을 둔 정의라면 그 주장은 정의롭긴 하지만 영 헛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글에선 사실에 기반을 둔 논리가 글의 아름다움을 보장할 것이다. 선생의 이러한 '문학으로 세상 바라보기'는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의 과학 수식을 이용한 철학 논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단순한 언어상의 일치를 논증으로 확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찬가지다. 자금성은 규모가 크고 화려하지만 깊이가 없다? 근거는 오로지 문학적 감수성이다. 난 물음표를 찍을 수밖에 없다.

 

문학과 세계는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왜 이 세계가 꽃동산이 아닐까. 몇몇 악한의 악행으로 꽃동산이 망가지진 않을 것이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죄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문학은 단순한 언더독보다 모두의 죄를 예민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며 이 에세이들에 좀 더 예민한 현실 인식이 더해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끝내 떨치지 못했다. 다만 문학의 본령은 약자와 잊힌 자를 기억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적어도 그 층위에서라면 선생의 문학적 세계관은 끝내 옳다. 선생은 말한다.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이 말을 오래 기억하려 한다. 꼭 투쟁적인 삶으로 돈을 더 벌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잊고 살았던 아름다움을 가끔 예술로 확인하자는 뜻에서. 밤을 잊지 않아야 낮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그 밤을 기억하자는 몸짓이 문학이고 예술일 것이다. 무기력한 허무주의로 살아도 문학의 정의와 세계의 정의 사이 간격을 좁히는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고 싶다.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정답이 여기에 있다. "밤이 선생이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잘 만들어진 실패담이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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