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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평점 :
처음 알았는데 후일담 문학이란 게 있었다. 뭐에 대한 후일담인가 하느냐면, 지나간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에 대한 후일담이다. 이 소설집에는 네 개의 소설이 수록돼 있는데 대개 플롯은 이렇다. 80-90년대 운동에 몸담았던 주인공은 세상에 등 떠밀려 이전 같지 않다. 그리고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한 무기력한 사람이다. 서사를 가로지르는 정서는 물론 패배감이다. 이런 주인공과 병치되는 인물은 아직도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다. 신념을 지키는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반추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여기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역할은 바뀌어도 좋다. (ㅎㅎ)
좋은 문장도 몇 개 눈에 들어오고, '운동'에 대한 작가의 신념도 존중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서 소설이 유치해진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방식이 특히 그러한데, 이거 되게 촌스러운 연출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선명한 선악 구분과 의도가 빤히 보이는 노골적 대사들이 못내 아쉽다. 지금의 노조나 운동은 많이 변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다. 이 소설들이 쓰인 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그래도 공감할 여지가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현재로서는 시의성을 잃은 소설의 한계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전쟁중에 우린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것도 영원히. 처음 만난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드냐 하면 말이야, 내가 저 사람을 앞으로 두 번은 더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세 번? 그 안에 우린 대부분 죽게 마련이니까. 살아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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