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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미러링 - 혐오의 시대와 메갈리아 신드롬 바로보기
박가분 지음 / 바다출판사 / 2016년 9월
평점 :
일베의 사상을 파헤쳤던 젊은 진보 논객 박가분의 최근작이다. 이번엔 메갈리아/워마드를 분석했다. 혐오의 미러링이란 그들 스스로 설명하는 그들의 행동 논리이자 양태다. 의문은 남는다. 미러링 형식을 취했어도 어쨌거나 혐오 맞지 않는가? 미러링이면 혐오는 정당화될까?
인터넷부터 실생활까지 여성 혐오는 공기와도 같다. 만연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박 대통령의 길라임 차명에 모두가 웃음을 참지 못 했다. 이것도 여성 혐오다. 변정수 미디어 평론가는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했다. "길라임은 로맨스의 주인공이고 당연히 성애화된(sexualized) 여성이다. 대통령과 길라임을 포갤 때 많은 사람들이 마주치는 어떤 불균형이 이 드립의 핵심적 유머 코드라면 거기엔 틀림없이 전형적인 미소지니가 개입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글의 첫 댓글에서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늙은 여자가 여자이려 할 때 모두의 조롱이 된다"고.
상폐녀,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 이런 인터넷 워딩을 넘어서 실생활에서도 도저한 멸시, 차별, 유리천장. 난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아니다. 메갈리아 싫어하는 편에 훨씬 가깝다. 그러나 메갈리아의 탄생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고 늘 생각한다. 일베가 오만한 진보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듯이 메갈리아도 만연한 여성 혐오의 필연적 대항으로 탄생했다고 본다. 저자는 이것도 사후 합리화/정당화라고 2014년 남연갤 역사부터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맞는다고 해도 메갈리아가 여성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고 일부 계층의 남성들에게까지 지지를 얻은 데엔 여성 혐오의 지분이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당하게 억압받는 계층의 권리 주장은 그 자체로 진보 담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손이상 문화운동가는 "진보 담론이 여성주의의 대의를 공급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의당 남성 당원 탈당 사태를 비롯한 여러 사태를 볼 때 대다수 진보 남성은 더 이상 메갈리아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여성들조차 많은 수가 메갈리아를 지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현 시점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혐오인가 혐오의 미러링인가. 미러링의 기치를 내세운 혐오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초창기 우스꽝스러운 아저씨 말투 흉내를 넘어서 현재의 미러링은 이런 수준까지 왔다. 유치원 남자 아동을 보고 "좆린이 핑잦 따먹고 싶다"고 말하는가 하면 구의역 지하철 희생자를 두곤 "탈김치 됐는데 축하해줄 일"이라고 말한다. 양보해서 미러링이라 해도 언어폭력의 수위는 이미 혐오 그 자체에 도달했다. 그리고 메갈리아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그들이 여성 혐오 주체들과 단지 남성이라는 것 말고 무엇을 공유하는가. 성姓만 공유할 뿐 여성 혐오 주체는 아닌 무고한 타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미러링은 정반사가 아닌 난반사다.
메갈리아에게 면죄부가 있다면 이들의 위악적 언사(그렇게 믿고 싶다)는 실제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점일 것이다. 위악적 표현이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심각한 죄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범죄학 교수 브라이언 레빈을 인용하며 '생명 경시 발언은 오프라인 상의 폭력과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104)'고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애초에 물리적 완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남녀 사이의 폭력에서 희생자는 주로 여자였다. 메갈리아/워마드가 탄생한지 1년이 넘었는데 오프라인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행하는 폭력이나 살인이 유의미하게 늘었다는 보고나 기사가 있나? 오프라인의 폭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어디까지나 논리의 층위일 뿐, 아직 오프라인에서 그것이 느껴지진 않는다. 면죄부를 넘어선 메갈리아의 순기능도 있다. 인터넷의 거친 남성들은 이제 메갈리아와 같은 수준으로 여성을 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선 메갈리아/워마드가 여전히 어떤 대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쌍방 이성 혐오의 원인엔 인터넷 공론장이 붕괴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인터넷 상의 커뮤니티들은 자유롭게 교류되지 않는 섬-우주 형태를 띤다. 남초 커뮤니티, 여초 커뮤니티란 말에서 드러나듯 각자의 공론장만 가질 뿐 공유할 수 있는 공론장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런 인터넷 지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아무에게나 나의 상상 속에 있는 적대적 이미지를 상대 집단에 무차별적으로 투사하곤 한다. 바로 거기서 '미러링'의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139)"
저자는 현상의 원인 중 하나를 또래문화의 결핍으로 설명한다.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프롬prom 파티라는 고등학교 졸업 문화가 흔하게 나오는데 여기서 젊은 10대 남녀는 서로의 짝을 찾아 춤추곤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이성간의 교류가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성인식인데 한국에선 남녀가 공유할 수 있는 또래문화가 없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섹드립이나 게임 이야기 외에도 또래집단과 놀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교류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문화적 교류의 공간이라는 모호한 단어는 무엇인가. 어쩐지 뜬구름같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저자도 그것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특정하지 않고(못하고) 넘어간다.
저자의 결론은 뚜렷하다. 메갈리아/워마드는 현시점에서 대의를 잃었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뭐 이걸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느냐고 따지면 가만히 있어야겠지만 이 관점은 내가 속한 집단에게도 적용된다. 나는 의사집단의 눈쌀 찌푸려지는 투쟁 방식을 싫어하고 때론 경멸하기까지 한다. 전해 들은바에 따르면, 당연 지정제 의료 보험 제도 하에서 겪는 의사 집단의 불이익을 설명하는 만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고 꾸중하듯 계도하려는 대사가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투쟁이란 대개 이렇게 한숨이 나오는 멍청한 방식이다. 의사들의 영원한 적 (ㅎㅎ) 한의사 집단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공식 문서나 발표에선 한방/무당 운운해선 안 될일이다. 우리가 정통이라면 점잖게 팩트로 반박하며 국민을 설득시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 과도한 분노는 지지층의 결집만 이뤄낼 뿐 중도는 등 돌리게 만든다. 효율이 떨어지는 투쟁 방법이다.
아아... 페미니즘의 대의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만, 너무나 재밌게 읽어버렸다 ㅎㅎ. 한남충이라 어쩔 수 없나보다. 안철수 식으로 말하면 이건 농담이지만 진담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남성이고 메갈리아에 동의할 일은 없을 테니 술술 읽었을 테지. 단, 지엽적인 부분에서 어색한 논리가 보이기도 했다. 메르스에 감염될 것이라는 공포심이 혐오 발언으로의 집단적인 퇴행을 낳았다는 분석(212p)에선 근거가 빈약하지 않은가하는 의문이 들고, 강력 범죄 피해자는 남성이 더 많다는 저자의 주장(222p)에선 남성 대 여성 폭력 사건의 가해자 피해자 비율을 살펴보는 게 더 옳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리는 매끄럽고 인용하는 근거는 정확해 보인다. 특히 혐오의 미러링은 결국 당사자가 배제되는 공감 능력의 독점화/도구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의 분석은 현 세태의 문제를 적확하게 요약하며 비판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지형도 분석에 탁월한 저자는 일베와 메갈리아 이후에 어떤 현상 진단을 내놓을까. 기대되는 젊은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