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위의 세계 - 2012년 제43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정영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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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없는 소설이다. 서사를 굳이 말하자면 미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체류한 경험뿐이다. 특별한 긴장을 불러오는 사건이 없다. 서사가 부재하는 자리는 사고(思考)가 채운다. 사변적 소설이 아니라 사변 그 자체, 정념 그 자체인 소설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화자는 정적이고 사고는 동적이다. 몸뚱어리가 머무는 동안 생각은 주변 사물과 인간을 따라 끊임없이 분열한다. 작가는 관찰에서 비롯된 생각의 모든 가능성을 탐색한다. 작가를 흉내 내서 평하면 이렇다. "이런 서술 방식은 매우 흥미롭기도 하고 흥미롭지 않기도 했다. 흥미롭지 않다는 생각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이전의 소설들과 다르게 사건보다 사고의 흐름을 좇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하니 이건 조금 특별한 글 같았고 그래서 흥미롭지 않다고 느낀 내 감정이 흥미로워졌다." 뭐, 이런 식의 '생각과 말의 어지러운 장난 (270)'이 소설의 주를 이룬다. 


작가는 이런 고약한 서술 방식을 작정한 듯한데, 스스로 자신의 글을 '무색의 관념(126)', '지극히 사소하고 무용하며 허황된 고찰로서의 글쓰기(139)', '생각의 익사체(209)' 등으로 정의한다. 이런 서술은 결론 없는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질문인데, 과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일까? 작가는 소설 안에서 소설가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고 글에 개입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소설 쓰기에 대한 소설(메타 픽션)이다. 일상의 경험이 어떻게 사고로 전환되는지, 사고가 어떻게 문장으로 변환되는지에 대해 고백한다. 이건 일견 쉬운 고백이 아니라 일종의 고발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의 경험을 글로 쓰는 습관을 들인 사람이거나, 규칙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실제의 경험이 글로 전환될 때의 왜곡을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가령 분노나 연민의 과장, 필요 이상의 타자 희화화 같은 것들. 그런 왜곡은 스스로 인식하지만 매끄럽고 좋은 글을 위해 용인하곤 한다. 왜곡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쓰기 경험이 누적됨에 따라 왜곡을 인지하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다. 왜곡이 심해질 때 글쓰기라는 행위(글 자체도)는 자칫 위험해질 수 있다. '의식과 감정을 조작하(190)'는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심하게 겪은 글은 실재가 아닌 '어떤 작위의 세계'가 된다. 


글이 완전한 상상의 결과물이라거나, 그것을 표방했을 때는 이런 고민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쓰는 사람은 일상의 경험을 항상 글쓰기의 재료로 인식하는 건 아닌지, '순간의 경험을 글로 옮기기에 유리하게 조작(190)'하는 건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특히 자전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글이 경험을 훼손시키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사고가 사방팔방 뻗어나가도록 내버려 두고, 그것이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질 때의 현상을 보여준다. 독특한 방식으로 글이 생산되는 방식의 윤리를 고찰케 하는 실험적 소설이다. 그러나 자의식이 글과 하나가 될 때 글이 진정 가치 있게 되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글은 양식에 따라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경험과 글이 완전히 일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경험은 어떻게든 가공과 왜곡을 거칠 수밖에 없다. 다만 쓰는 사람은 그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글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되는지, 글 안의 타자보다 자신이 섣불리 우위에 서는 것은 아닌지를 늘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아주 징그럽고 독한 소설이었다. 작가의 글처럼 어떤 누구의 글이라도 '어떤 작위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흥미가 동한다면 읽어도 좋지만 여전히 재미는 없으니 각오 단단히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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