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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K라는 친구가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처음 알게 됐고, 고등학교에선 기숙사 방을 같이 쓰며 졸업할 때까지 친하게 지냈다. 지금도 친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만나서 어색하진 않지만 적극적으로 연락은 하지 않는다. 친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예전만 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K가 우정을 유지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했는데 이런 식이었다. 보통은 학년이나 학교가 바뀌어도 아주 친했던 친구라면 연락을 하며 관계를 유지할 텐데, K는 그렇지 않았다. 학년이 바뀌면 일 년 내내 같이 지냈던 친구는 금방 잊고 새 친구와 금방 친해져 새로운 일 년을 같이 지내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K의 이런 성향을 뒤에서 흉보곤 했다. 나는 K와 6년 동안 친하게 지냈으나 서로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서히 멀어졌으니, 나와 K가 6년을 친하게 지낸 건 그저 6년을 같이 지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K는 회장의 손자였다. K의 할아버지가 창립한 회사가 대기업은 아니고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xx 유업이었지만, 작은 도시라서 그 정도라도 충분히 손에 꼽을만한 부자였다. 1998년 K의 어머니가 운전하던 새빨간 티뷰론과 K가 살던 64평 아파트가 생각난다. 4인 가족이 살기엔 너무 넓어 보였다. K의 집에서 장식이 화려한 과도 같은 걸 봤는데, 암만 봐도 과일 깎는 칼은 아닌 것 같아 물어보니 편지 봉투 뜯는 칼이라고 했다. 그 즈음엔 우리 집도 괜찮게 사는 편이었지만, K의 집과 차이는 확실했다. 우리 집에선 편지 봉투를 손으로 찢었고, K의 집에선 봉투 접착면에 칼을 집어넣었다. K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초 래미안으로 이사 갔다.
K가 평소에 이런 부를 과시하고 지낸 건 아니었다. 그러나 민감한 아이들이 K가 부잣집 아들이란 걸 놓칠 리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K의 할아버지가 교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넌 부잣집 아들이니까, 넌 돈 많으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오래 친했던 나도 가끔 농담으로 그런 소리를 했다. 그렇다면 K는 살면서 그런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을까? 오백 번? 천 번? 말이 아니라 면봉이었다면 귀에서 진물이 넘쳐 흘렀겠다. K는 공부도 잘했다. 이 사실은 아이들의 열등감을 더 크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걔는 돈만 많아, 가 아니라 돈도 많아,라는 소리를 해야 했으니. 더 나아가선 집에 돈이 많아서 공부를 잘하지,라는 근거가 모호한 평가절하까지 돌았다. 아이들이 자격지심을 가진 순간 K와 아이들과의 우정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너무 깊게 우정을 유지하지 않는 K의 방식은 자신을 보호하는 무의식적 방편일지도 몰랐다.
최은영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실패한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의 화자는 쇼코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와도 정상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 한다. 화자의 눈엔 쇼코의 부족함만, 할아버지의 못남만 보인다. 그러나 화자도 철저하게 실패한 인간이다. 차이가 있다면 쇼코와 할아버지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던 사람이고, 화자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던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한지와 영주」에선 프랑스의 수도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영주는 그곳에서 케냐 흑인 한지를 만나고 가까워진다. 한지는 자신의 불우한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패배감을 가지고 있던 영주는 한지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작별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한지는 영주를 일부러 외면한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었지만 한지의 입장에 서면 이해할 수 있다. 케냐 흑인 한지의 눈에는 한국인 영주가 어떻게 보였을까? 생각할수록 그녀와 나는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명확한 한계만 느끼지 않았을까? 영주가 자신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174)'지 못 하고, 드러내지도 못 했을 때 관계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다. 한지는 이별을 앞두고 자신이 받을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른 소설들에서도 주로 실패한 관계가 이야기의 동기가 된다. 안타깝게도 타인의 고통은 그것을 보는 사람도 불편하게 만든다. 양자의 관계에서 한 쪽만 고통받을 때, 혹은 한 쪽은 고통을 숨겨 다른 쪽의 고통만 드러날 때 관계는 틀어진다. 고통받는 자신이 자격지심으로 상대방을 밀어내든지, 그나마 나은 자신이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든지. 정해진 수순처럼 이별이 다가오면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에둘러 자신을 '안전하게 갈라놓(82)'는 게 고작이다.
우린 살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서로 완벽하게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역치만 다를 뿐 사소한 상처로도 멀어지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관계의 회복은 영원히 불가능한 게 아니다. 「쇼코의 미소」의 화자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두 달을 지킨다. 화자는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것 같은 관계를 지켜내고 미워하던 어머니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관계는 '껍데기만 보고 단죄(48)'하지 않을 때,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206)'지 않을 때 회복될 수 있다. 다시 만난 쇼코는 서늘하게 웃었다.
K는 거의 십 년이 지나 다시 볼 수 있었다. 결혼식 전에 청첩장을 전달하겠다고 술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어쨌거나 꽤나 가까운 친구였으므로 난 그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다시 만난 K는 여전히 먹고사는 데는 문제없어 보였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같이 나이 먹어가는 입장에서 다시 만난 게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K가 학창시절 받았던 은근한 미움에 이유야 있었지만 그게 합당한 것은 아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실패한 관계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K를 생각했다. 우리의 실패한 관계들은 그때 우리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이 들고도 그게 다시 회복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 사이 늙어버린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 어느새 성공보다 실패를 먼저 상상하는 인간이 돼버렸다. 시도하기 전에 고개를 젓는, 실패로 인한 자존감의 손상을 두려워하는, 그런 인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