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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고유명사로 산다는 것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평점 :
공자를 싫어한다. 천 원, 오천 원, 오만 원 권에 유가의 사상가 두 명과 그중 한 명의 어머니가 들어있는 게 싫다. 단정적으로 말해 그 위인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뭘 해줬나?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것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가의 입김이 은연중에 작동함을 보여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에선 비실용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가 만연했겠지만, 근대 이후 지금의 한국에도 그것들이 아직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데에는 분명 유교의 책임이 있다. 만동묘라고 들어보셨는지... 검색해보시길. 만동묘 아니더라도 지금 만연한 꼰대 문화, 명절에 모여서 지내는 제사,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시작되는 남의 삶에 대한 참견, 여자들만 신나게 뒤집어야 할 동그랑땡. 다음 주면 일상에서 생생히 겪을 일들이다.
노자 인문학 리뷰에 웬 공자 이야기만 잔뜩? 노자의 사상이 공자의 사상과는 상당히 반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가령 공자는 '인仁'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공통의 본질이라고 말했는데, 노자는 이 기준이 결국 폭력으로 행사될 소지가 크다고 비판했다. 더 설명하면 이렇다. 공자는 '본질'을 긍정한다. '본질'을 긍정하면 그 확장으로 '이상'이 설정될 수밖에 없다. 이 이상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기준은 필연적으로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 배제와 억압에서 갈등과 차등화가 비롯된다. 노자는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기준을 전제하는 한, 극단적인 경쟁과 폭력의 가능성을 없앨 수 없다고 봤다. 사회는 경직되고 자율성은 발휘될 길을 잃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진보도 쉽지 않게 된다. 사회를 폐쇄적이고 경직된 길로 나아가지 않게 하려면, 그런 부정적 기능을 조장하는 '기준'이 건축될 길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아주 거칠게 줄이자면 하나의 본질(진리)를 인정하고 추구하는 것이 공자의 사상이고, 모든 사물과 이치에는 대립하는 양면이 있다는 게 노자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대립면의 긴장이 주는 탄성을 잃은 모든 일은 광신이기 쉬우며 자기가 진실이라 믿는 어떤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견제하는 내공을 발휘해 긴장을 유지할 때, 오히려 폭발력이 터져 나온다고 말한다 (215). 이런 해석은 다양성을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는 현대 사회와 놀랍게도 맞닿아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만, 그도 아니라면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식만을 진짜라고 믿으며 남에게 섣부른 충고를 일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몇 달 전엔 홍대의 '일베' 조각상이 다른 학생에 의해 파괴되었다. 어찌 됐건 적법한 절차로 세워진 조형물을 파괴한 것이다. 작가는 그것으로 예술이 완성됐다고 속으로 웃었을지 모른다. 일베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 단지 손 모양을 옮겨놓은 조각상을 파괴했을 때 파괴자가 보여준 건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치기 어린 분노일 뿐이다. 그 시점에서 파괴자는 완벽히 패배했다.
책은 중국의 고대 역사부터 시작해서 다분히 당연한 말들을 늘어놓기에 약간 지루했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만큼은 곱씹어 볼 수밖에 없었다. 노자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고 말했다. 이는 단지 꿈을 위해 현실의 삶을 저버리는 것만을 안타까워하는 말이 아니다. 거창한 대의를 위해 일상을 무시하는 이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미래는 '지금의 이것'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기 마련이고, 작은 것들의 실천 없는 대의는 공허하기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노자를 해석하며 '인간의 인격과 동력이 진정으로 나타나는 곳은 구체적인 일상이'라고 말한다.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 사상의 노자였다. 자 이제 노자를 실천합시다. 모든 선善과 가치 실현은 '지금 여기'부터 시작되어야 하니까요. 당장 우리가 시작할 일은 추석 때 오지랖 안 떨기, 남자는 부엌일 돕기입니다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