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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로랑 베그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3년 12월
평점 :
제목 보고 이거다 싶었다. 내가 경계하는 도덕주의, 도덕적 엄숙주의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제목의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스스로) 도덕적(인 줄 아는)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가 정확한 제목이다. 책의 내용은 인간의 선행과 악행의 기저에 어떤 심리가 깔려있는지, 대개 인간은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인데 왜 그런 건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책 후반에 인간의 도덕주의와 그것의 오작동에 대한 내용을 확인했으므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ㅎㅎ).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저술 방식이었다. 문장마다 심리학 실험과 관련 저서를 근거로 인용한다. 『사피엔스』의 서평에서 저자의 추측만으로 진행되는 주장이 아쉽다고 말했는데 이 책은 그와 상반되는 좋은 논지 전개 방법을 보여준다. '사회과학'도 '과학'이라면, 그것을 다루는 책은 추측을 배제하고, 근거 중심으로 저술되어야 한다. 좋다. 리뷰 시작.
최근 설현과 기타 1명(ㅋ)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몰라본 죄로 사죄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중은 아이돌의 지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도덕성을 재단했다. 어떻게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모를 수 있어? 긴또깡이라고 시시덕거릴 수 있어? 참 개념 없네. 상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대중은 기어코 돌팔매질을 한다. AOA는 졸지에 민족정신이 결여된 아이돌이 돼버렸다.
AOA가 안중근 의사를 모르고 긴또깡 아닌가? 하며 웃었을 때 누가 피해를 봤을까? 피해자는 없다. 이런 행동을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너선 하이트라는 사람이 이런 상황을 브라질과 미국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 반응을 조사했다. (174p)
(1) 어떤 아들이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무덤을 매주 한 번씩 찾아오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아들은 너무 바빠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2) 어떤 여자가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낡은 성조기(혹은 브라질 국기)를 걸레로 썼다.
(3) 한 가족이 자기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차에 치여 죽자 그 고기를 먹었다.
(4) 오빠와 여동생이 입술에 키스를 했다.
(5) 한 남자가 죽은 닭의 사체로 자위행위를 하고는 그 닭을 구워서 먹었다.
사회 경제적 수준이 낮을수록 엄격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필라델피아의 상류층은 정의, 인권, 타인에 대한 침해에 근거한 도덕적 사유를 하는 반면, 브라질의 하층민들은 도덕을 자율적 윤리보다 훨씬 광범위하게(이를테면 공동체나 집단의 정신과 관련된 부분까지 포함해서)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편 AOA에 대한 비난은 집단과의 동일시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집단과의 동일시가 강력할수록 그 집단의 규범은 영향력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는 자들은 용서받기 어려우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집단의 영향력을 덜 받지만, 권위적 성격의 소유자는 그런 영향력에 더 많이 휘둘린다는 연구 결과(98p)를 주목할 만 하다. 전 국민이 붉은 악마로 변신하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그렇지도 않지만) 황우석이고 박태환이고 일단 복귀시켜야 하며, 스포츠 경기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현수막을 거는 한국 대중의 심리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인들은 자신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유교적 관습을 주입받았고, 오랜 독재 하에서 국가와 민족에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교육받았다. 국민들이 안중근을 모르는 AOA를 못 마땅해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저자는 '가혹한 역설이지만 스스로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는 생각이 모범적일 수 없는 행동을 낳는다. (240p)'고 말한다. 도덕성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유도했더니 타인에 대한 엄격한 비난을 퍼붓거나 앙심을 품었다는 연구 결과가 주장을 뒷받침한다. 대중은 자신이 안중근 사진을 안다는 걸 지식의 우위가 아니라 도덕성의 우위로 인식한다. 이로써 AOA가 안중근 사진을 모르는 건 도덕성의 부족으로 변한다. 대중은 비난으로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
설현 이야기는 그만할까. 그럼 며칠 전에 있었던 터널 안 연쇄 추돌 사고를 떠올려 보자. 종종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을 목격한다. '버스 사이로 달린 마티즈 잘못도 있네'. 레미콘이 크루즈를 덮쳤을 땐 '크루즈 끝까지 브레이크 밟고 있네, 레미콘 달려오는 거 봤으면 피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법규를 위반하지 않은 피해자가 부정적 판단의 대상이 될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 이유는 설명을 찾고, 가급적이면 원흉을 지목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히려 피해자가 예상치 못한 뭇매를 맞는 것이다. 사고를 '당한' 운전자는 사고의 피해가 클수록 비난받는다. 피해자는 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증거를 사후에 찾아 들추는 사람들 때문에 또 다른 피해를 입는다. 성폭행 피해자의 상황 진술에서는 평소 아무 문제도 되지 않거나 오히려 좋게 받아들여질 법한 요소들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06p". 사람들은 세상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그 믿음의 핵심에 타인의 어쩔 수 없는 불행을 설명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말이다 (222p). 말살당한 아메리카 인디언부터 최근 강남역 묻지마 살해당한 여자까지 이 병리적 현상은 여전하다. '당할만해서 당했다'. 명백한 2차 가해다.
한편 의사라서 재밌게 읽은 부분도 있다. "사회복지사, 의료인, 간병인이나 상담사 등이 그 직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냉혹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감정이입능력이 뛰어난 의료계 종사자들이 제일 먼저 자기 일에 염증을 느끼고 말기 환자들을 회피한다는 보고도 있다. 고통을 치료하는 데 익숙한 의사들은 괴로워하는 환자의 동영상을 보아도 임상 경험이 없는 의사들만큼 고통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의사들은 환자가 당하는 고통을 그렇게까지 힘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222p". 감정이입이 지나치면 자신도 우울해지므로 진정한 의미의 동정심이 발휘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의사는 강철이다'라는 말과 부합하는 이야기다. 지금은 친절함을 자부하지만 (ㅋㅋ) 전공의 시절엔 그러지 못했다. 삶이 짜증 나고 피곤하니 병마와 싸워야 할 의사가 환자, 보호자, 간호사와 싸우곤 했다. 힘들면 인간이 부박해진다고 핑계를 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던 걸 보면 그 시절의 나는 분명 병리적이었다. 다행히 (ㅎㅎ) 책을 읽으며 핑곗거리를 조금 찾아냈다. 저자는 자기조절능력이 소진되면 이타심을 발휘하기 어려우며 충동에 굴복하기 쉽다고 말한다 (284p). 더군다나 '자기조절능력은 일반적으로 수면을 취하거나 포도당을 섭취함으로써 회복된다 (286p)'는 말은 얼마나 적확한가!.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한 전공의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일이 어느 정도 끝난 새벽에 포도당을 과도하게 섭취하려 한다 (ㅋㅋ). 오프 때는 자기 파괴적(!) 과소비를 한다. 의사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현대 사회의 대중은 몰개체화로 인한 자의식 저하를 겪으며, 익명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환경에서 살아간다. 또한 격무에 시달려 자기조절능력이 소진된 상태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권위에 복종하기 쉬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악을 자행하기도 한다. 이런 인간들이 나쁜 사회를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연구 결과도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목격자가 너무 많으면 방관자가 되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접한 사람들에게서는 책임 확산 현상이 한결 적게 나타났다고 한다. 비합리성의 극복은 그것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도 될까?. 저자는 타자야말로 인간 도덕성의 근원이자 목적이라고 말한다. 도덕성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품기보다는 명철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도덕성은 더욱 완전해진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염증을 쉽게 느끼는 요즘 시대에 많은 걸 시사한다.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이렇다. <아는 만큼 도덕적으로 살 수 있다>. 아, 이제부터라도 내 병신스러움을 알고 착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