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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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로랑 베그의 책에서 인간은 불행에 대해 원인을 찾고 원흉을 지목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문장을 읽었다. 어떤 문제 상황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건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유 없는 막연한 불행에서도 원인과 원흉을 지목하려 하기에 더 큰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관동 대지진 때는 대상을 찾지 못한 분노가 조선인을 향해 수천 명이 학살 당했으며 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경제 대공황에 대한 독일인의 좌절은 유태인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이처럼 인간은 이유 없는 불행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필립 로스는 1940년대 중반, 당시에 정복되지 않았던 폴리오에 맞닥뜨린 인간 군상의 혼란을 그린다.

주인공 버키 캔터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체육 교사였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던 아이들이 폴리오에 감염되어 죽자 죄책감에 휩싸인다. 애인이 있는 곳으로 일터를 옮긴 후에도 유태인 거리의 아이들은 폴리오로 죽어나간다. 그리고 버키 캔터가 옮겨간 인디언 힐에도 폴리오의 마수가 뻗친다. 그곳에서도 가장 친했던 학생이 죽고 본인도 폴리오에 걸려 건강했던 육체를 잃는다.

폴리오에 속수 무책으로 아이들이 죽어나갈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유태인 거리의 한 여인은 누가 책임자냐고 공격적으로 묻고 희생자의 아버지는 왜 하필 자신의 아들이 죽었는지 이게 공정한 건지 묻는다. 히스테리와 공황이다. 시간이 지나 유태인 거리 놀이터는 모두 폐쇄된다. 삶의 터전이 오염물로 간주되어 격리된 것이다. 그러나 진정 불행한 반응은 자신을 향한 분노다.

인간이 신을 믿는 건 생의 유한함과 능력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재앙을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버키 캔터는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강하게 성장했고 단단한 자아를 지니게 됐기에 인간의 한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버키 캔터는 이유 없는 불행을 선사한 신에게 분노하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그는 아이들에게 폴리오를 퍼뜨린 게 자신이라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결과는 가혹하다. 그의 장애에도 결혼을 결심한 애인과 헤어지고 그는 평생을 혼자 지낸다.

네메시스는 신의 노여움을 의인화한 여신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가 실제로 보이지 않는 화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화자의 말은 무엇을 뜻할까. 신 없는 세상에서 인간을 벌하는 건 네메시스가 아니라 그 자신이라는 말 아닐까. 그러나 "벌어진 일은 벌어진 거야. 내가 한 짓은 한 짓이야. 나에게 없는 것은 그냥 없이 사는 거고."라는 버키 캔터의 읊조림은 왜 이다지도 쓸쓸하게 느껴질까. 이토록 헌신적인 남자의 전락은 왜 이리도 안쓰러울까.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망가뜨리곤 했던 인간이기 때문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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