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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3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일까. 아니라면 우린 어떻게 연결된 걸까. 소설에선 무엇보다 '연결'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인다. 라디오를 들으며 '밤하늘을 떠다니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처럼 누군가에게 연결되기를' 원하는가 하면 '개인적 삶은 모두 시대와 연결돼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급기야 후반부에는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고 말하거나 '처음부터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개인과 세계의 연결을 말한다.
뭐가 어떻게 연결됐다는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이하 화자)는 이 모든 건 할아버지가 가져온 입체 누드사진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화자의 할아버지는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에 징집된다. 이후 간척지 사업을 하려다 간첩으로 몰려 징역까지 살고 자신의 모든 걸 태운다. 화자는 불속에서 타들어가던 사진 한 장을 꺼낸다. 이국 여성이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외설적 사진이다. 화자는 방북 예비 대표로 베를린에 건너가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행복이라는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고 말한다. 그가 꺼낸 행복의 증거는 화자의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입체 누드사진이다. 그는 마약 밀매를 했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 사진을 챙겨 나온다. 화자와 정민과 강시우의 김제, 정민과 정민 삼촌과 안젤라의 공황장애, 정민 삼촌과 강시우 부친의 마약, 강시우 조부와 레이 조부의 불이농촌도 마찬가지이며 이는 각각의 개인이 부지불식간에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 연결고리를 좇는 동안 독자는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 각 개인의 일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개인끼리의 연결, 개인과 세계의 연결은 어떤 함의를 지니나. 여기에 대한 대답은 조금 미뤄두자.
보잘 것 없는 입체 누드사진은 역사의 거대한 시간 속에 묻힌 개인의 시간을 재구성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한 개인의 삶을 몇 줄 문장으로 정리한들 그것이 올바른 그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입체 누드사진 같은 사물들일 뿐이다.'라는 종반부 화자의 고백은 타인의 삶을 재구성한 이야기의 윤리성을 되묻는다. 지젝은 '언어는 그것이 가리키는 사물을 단순화하고, 사물을 단일한 하나의 속성으로 환원해버린다'고 말했다.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몇 줄 문장으로 쓸 수 없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할아버지의 삶을 두 차례 전쟁을 겪고 난 후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징역형 살다 죽은 한국인이라고 쉽게 말하는 건 그 삶의 개별성을 모조리 무시하는 일이다. 화자가 할아버지의 일생을 논리적으로 요약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게 아니다. 할아버지가 입체 누드사진을 어디서 무슨 심정으로 샀는지 왜 그것을 태워버리려 했는지 상상한 순간, 그는 몇 발자국이나마 할아버지의 인생에 다가간 셈이다.
다시 소설 내 연결고리로 돌아오자. 이것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실 현실의 사람 사이에선 이렇게 교묘한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다. 다만 이것들이 소설적 장치임을 인정하면 독해는 조금 쉬워진다. 헬무트 베르크, 강시우, 정민의 삼촌은 모두 시대의 폭력에 휘말렸다. 이들이 겪은 '증오는 하나일 뿐 (259)'이었으므로 공유하는 시간과 장소와 사물은 개별적 삶이 공유하는 보편적 고통을 의미한다. 이들은 다시 태어난다. 칼 하프너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헬무트 베르크가 됐고, 이길용은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텔레비전에 머리를 처박았을 때 강시우로 다시 태어났다. 정민의 삼촌은 수류탄 투척 사건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폭력을 겪고 마약 밀수와 자살에 이른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우연으로 폭력을 당하고 죽던 시대에서 화자는 '우연한 존재'가 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그건 정민의 삼촌에게 일어난 일이 진짜였는지 확인하는 것, 우연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의 삶에 혹시 그 어떤 필연의 흔적이 있는 건 아닐까 (329)'묻는 것으로 이뤄진다. 화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달하려 한다. 우연히 살아남은 자의 윤리다.
종반부에서 화자는 브레히트나 벤야민도 한때 자신이 숨쉬는 이 공기를 마신 적이 있었다고 생각함으로써 위로를 얻는다. 고립된 개인들은 외로움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사랑은 제각각이지만 증오는 하나인 시대임에도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 세상은 온통 읽혀지기를, 들려지기를,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것 천지였'기 때문에 화자가 기록한 이야기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가닿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떠날 것이다. 강시우는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레이와 떠났다. 화자도 이제 자기 자신이 되었으므로 한국으로 떠날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리뷰를 마치고 소설가가 일부러 그리 지어놓은 듯한 미완의 제목을 바라보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ㅡ
여백은 읽은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