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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R.ef 의 노래 <이별 공식>의 가사엔 이런 내용이 있다 (킁킁, 아재 냄새).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열대 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나. (...)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비오는 날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잖아.'
햇살 쨍쨍한 한낮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선 웃음 이외의 표정은 허락되지 않는다. 한낮의 슬픔, 한낮의 분노, 한낮의 부끄러움, 한낮의 체념, 모두 있을 수는 있지만 낮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삶에서 얻는 모욕은 햇살처럼 언제나 우리를 비추고 있다. 우리는 남몰래 울거나 화내거나 하며 표정을 감추고 살아야 할 뿐이다.
김금희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의 세계에선 모욕이 일상화되어 있다.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에선 무덤덤한 양희와 세속적인 필용이 나온다. 양희는 무심하게 사랑을 고백하고 무심하게 사랑을 철회한다. 모욕 받았다고 느낀 필용은 한낮의 맥도날드에서 양희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십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 필용은 회사에서 한직으로 좌천 당한다. 모욕을 감내해야 할 때 우연히, 운명처럼 양희의 연극을 보게 된다. 우리는 갑자기 받은 모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때로 견딘다는 건 조용한 투쟁이기도 하다. 「조중균의 세계」의 조중균씨는 괴짜에 외톨이다. 세속적인 화자는 외톨이인 그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사연을 듣고 나서 그제야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는 부당함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항거하고 있었다. 복수를 잊어버리지 않았고, 빈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만 적지 않았고, 식사를 하지 않았음과 나태하지 않았음을 고집스럽게 직접 확인받고자 했다. 그의 세계에선 긍정적인 것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부당한 것은 없다. 부당함에 고개 숙이지 않고 그것을 묵묵히 삶의 밖으로 밀어내는 조중균의 세계는 숙연하고 아름답다.
「세실리아」의 세실리아는 애인 있는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동아리에서 따돌림당하고 「반월」의 이모는 무언가 모호하고 알 수 없는 것을 견디며 섬에서 산다.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의 모과장은 생산직으로 좌천당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불행은 설명되지 않고 이유 없이 찾아온다. 그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속물적이고 폭력적이고 돼먹지 않은 세계(147)'다. 소설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모욕을 어떻게 견뎌야 하느냐고 반복해서 묻고, 대답처럼 여러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세실리아는 실컷 웃으며 술 마시고 나서 화자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고, 이모는 아들을 만나지 않고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모과장은 회사가 원하는 대로 어려운 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에 몰두한다. 삶을 인정하고, 그립지만 아픈 것들과 단호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이들에게 모욕은 '그냥 그런 보통의 일(222)'이 된다.
다시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로 돌아오자. 필용은 맥도날드에서의 막말을 사과하기 위해 양희의 문산 집으로 찾아간다. 굉장히 가난한 양희네 집을 보고 숙연해진 필용에게 양희는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라고,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고,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라고 말한다. 십수 년이 지나 필용은 관객 참여형 연극 무대에서 양희와 마주한다. 세상으로부터 모욕 받는 필용은 나무로 분한 양희를 보고 나와 걸을 때 울음이 터진다. 양희는 나무처럼 성숙한 용서를 했었고, 지금은 성숙한 위로를 하는 것이다. 필용은 비로소 지나간 양희와의 시간의 의미를 깨달았지만 지금은 슬퍼하기도, 다시 사랑하기도 애매한 너무 한낮이다.
인간은 불행과 모욕 앞에서 '고양이처럼 단련'되지 않는다. 잊을 수도 없다. '이미 봤는데, 이미 들었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다만 우리는 인생의 쓴 부분을 인정하고 견딤으로써 삶의 중요한 부분을 지켜야 할 뿐이다. 견디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견디고 있는 세상이다. 작가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고 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적어도 웃지 않는 것, 어설픈 위로보단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절실하다. 남이 울어도 쳐다보지 않아야 나도 언젠가 편히 울 수 있다. 이것이 어차피 울어야 하는 인간이 울기엔 너무 환한 한낮을 살아가는 방법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