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평점 :
어떤 소설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김훈, 박민규, 한강을 좋아합니다. 좋아해서 찾아 읽다 보니 어느새 더 읽을 책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하. 반면에 딸랑 세 권 읽은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어떨까요. 이장욱은 다작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렇다 쳐도 세 권은 적긴 적네요. 단편 두 권, 장편 한 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이장욱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문예지에 실린 그의 단편은 늘 기대됩니다.
단편은 읽기 쉬워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르지만 잘 쓰인 장편 소설이 긴 서사 끝에 주는 감동을 기대하긴 힘듭니다. 또한 그저 그런 단편 소설은 읽어도 기억에 잘 남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 단편 소설엔 그것만의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정교하게 축조된 짧은 이야기만의 재기 넘치는 느낌과 뭉클함이 있죠. 전 많은 단편 소설을 읽었지만 대부분 머릿속에서 쉽게 휘발되는 바람에 (ㅎㅎ) 강렬한 인상으로 온전하게 기억하는 단편 소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꼽아볼까요? 저의 인생 소설인 박민규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가 무조건 먼저입니다 헤헤. 그 밖에는 김연수의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훈의 「영자」, 이기호의 「김박사는 누구인가?」 정도뿐이군요. 이장욱을 빼면 말입니다. 이장욱의 이전 소설집에 수록된 「고백의 제왕」, 「변희봉」과 이번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 「우리 모두의 정귀보」를 최고의 단편 소설 리스트에 주저 없이 포함 시킬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장욱의 단편 소설은 좋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건 3월 말인데, 왠지 감이 안 잡혀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문득 생각해보니 이 책의 화두는 기억하는 방법인 듯합니다. 표제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는 방화 사건으로 체포된 박물관 관리 직원의 독백입니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맹렬하게 기린에 대해 생각하죠. 화자는 초반부터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고 하며 자신의 비뚤어진 성장담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인생은 거짓 증언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엔 기린불이 놓인 자리에 방화를 했는데, 불탄 자리에 기린불의 잔해가 없습니다. 과연 그는 기린불을 태워 없앤 것일까요, 절도를 숨기기 위해 방화를 한 걸까요. 이 이야기는 농밀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기억을 타자에게 강요할 때 발생하는 폭력의 우화이기도 합니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인도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 하루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오의 외할아버지는 미국인이었고, 어머니는 오키나와 태생이었습니다. 어딘지 일본인 답지 않은 하루오는 말합니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어딘지 다른 하루오"라고 말입니다. 전통시장에서 현지인과 섞여 장사를 하고, 갠지스 강을 멀뚱히 떠내려가는 하루오는 차라리 현지인 같습니다. 엉뚱한 하루오의 절반 이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디서든 그의 절반은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하루오는 "아름다운 건, 하루오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하루오의 절반 이상을 경험했고 그가 아름답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정귀보」는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화가 정귀보의 평전 집필을 부탁받은 작가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그의 '놀랄 만큼 단조로운' 인생이 어떻게 사후에 유명해졌는지, 유년기부터 회고합니다. 평범한 남자처럼 여러 여자들과 연애하다 이별하고, 차이기도 하고, 작가로선 별 볼 일 없었습니다. '벨다른 이유는 읎'이 화가의 길을 선택한 정귀보의 인생을 증언과, 유작 등으로 재구성하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실족사인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의 화자는 자신의 기억을 타자에게 백 퍼센트 강제하기에 우리는 그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절반 이상의 하루오」에선 하루오의 삶과 우리의 기억이 절반씩 조화를 이루고, 그래서 하루오에 대한 기억은 왠지 늘 뭉클합니다. 「우리 모두의 정귀보」에선 정귀보의 목소리가 아예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까요. 이처럼 본인의 목소리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남의 목소리'만으로 그 사람의 생을 재구성하기란 얼마나 우습고 말이 안 되는 일입니까. 평전 집필 작가는 정귀보의 시신을 두 눈으로 보고, 정귀보가 죽음을 맞기 전날 밤 혼자 술을 마셨다는 주점에 가본 뒤에야 정귀보를 조금 이해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타자에 대해 말하려면 적어도 그 사람이 처했던 상황에 자신을 놓아봐야 합니다. 타자를 진정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할 때 '정귀보'는 '우리 모두의 정귀보'가 됩니다. 이 소설집은 때론 기억을 편리하게만 이용하며, 겪지 않고 남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곤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키가 작고 몸이 왜소했어. 몸무게의 변화는 별로 없는 편이었는데, 최근 몇 개월간 체중이 확 줄었지. 종양 때문인 게 틀림없어. 옥시콘틴 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서랍에 쌓여 있었으니까. 머리카락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휴대전화는 폴더식 구형이 확실해. 카드는 두 개. 하나는 거래 은행의 비자카드고 다른 하나는 오케이캐시백 적립용이지. 오케이 캐시백이라니. 옥시콘틴의 세계와 오케이캐시백의 세계는 대체 얼마나 먼 것일까? 하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샴쌍둥이처럼 붙은 세계인지도 모르지. 마약성 진통제와 오케이캐시백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 인생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죽어가면서도 습관처럼 오케이캐시백 포인트를 적립하는 게 빌어먹을 인생이라는 것이니까. 47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