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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1.
무의미의 축제라니 제목 참 멋들어진다. 여자가 "요즘 쥬드 씨는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라고 물으면 무슨 책을 읽고 있든 상관없이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야지. 폼 나니까. "이기호의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읽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폼이 안 나잖아... 이미지 세탁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거짓말은 스스로 용서할 수 있다. 어 그런데, 읽어보니 책 속엔 나처럼 허풍 떠는 인간들뿐이다 (ㅎㅎㅎ).
150페이지 정도의 짧은 책 속에 많은 인물이 나온다. 그들의 에피소드와 발화는 서로 얽혀 의미와 무의미를 규정한다. 종국엔 그의 다른 소설 '불멸'에서 그랬듯 소설 내의 진실과 허구의 경계까지 허물어진다. 우리는 종종 무의미한 삶에 진저리 친다. 그런데 쿤데라는 일상이 무의미의 '축제'라 말한다. 왜일까?
2.
이야기 속 인물들은 서로 속이고 속는다. 다르델로의 암 환자 행세, 칼리방의 캄보디아인 행세, 사람들이 유머와 포도주를 음미하는 법. 이것들은 거짓이고, 실재를 가리는 표상이다. 이는 병치된 스탈린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3.
스탈린은 흐루쇼프를 비롯한 협력자들에게 자고새 우화를 들려준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회의장에서 그것을 반박하는 이는 없다. 그들은 화장실에 모여 분개한다. 스탈린은 벽 너머에서 그것을 엿듣고 크게 웃는다. 스탈린의 폭력과 현실의 부조리는 단순한 농담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항거할 수도 없는 거짓말로 만든다.
스탈린은 표상 뒤에 실재가 있다고 말한 이마누엘 칸트를 부정한다. 표상 뒤에 실재는 없으며, 세계는 표상과 의지일 뿐이라고 말한 쇼펜하우어를 긍정한다. 인류는 전혀 객체적이지 않고 나의 주관적 표상이라 강변한다 (118). 우리는 거짓을 바라보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판단조차 되지 않는다. 일상은 무의미하다.
스탈린과 협력자 무리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이 있다. 칼리닌이다. 칼리닌은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항상 요의와 싸운다. 가끔 긴 회의 끝엔 자리에서 오줌을 싼다. 스탈린은 자신이 부정한 이마누엘 칸트가 태어난 도시에 칼리닌의 이름을 붙인다. 칼리닌그라드가 탄생한다. 그저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소변과 맞서 투쟁하는 것이 거짓 세상에 남은 유일한 진실이 된다. 비속함이야말로 인간을 정의하는 속성이다. 그렇기에 칼리닌그라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칼리닌그라드로 남는다 (94). 비속한 인간을 하나의 의미로 남긴 건 아이러니하게도 거짓에 분개하는 자들을 비웃던 스탈린이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4.
어느 날 알랭은 배꼽티를 입은 여인들을 보고 배꼽이 새로운 성적 표상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배꼽은 단순한 성적 표상이 아니다. 배꼽은 어머니와 태아를 물리적으로 연결해주는 탯줄이 잘려나간 흔적이다. 배꼽은 그를 버린 어머니를 증명하는 흔적이다. 알랭이 보기에 여자들의 배꼽은 다 똑같지만, 그것은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자손으로 생이 반복되는 징후다. 알랭의 어머니는 알랭을 버렸지만, 알랭은 평생 어머니를 갈망한다. 무의미하던 배꼽은 삶의 의미가 된다. 알랭은 여자의 배꼽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5.
소설 속 인물뿐만 아니라 현실의 우리도 연극적 삶에 둘러싸여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내 삶 또한 연극적이다. 이런 거짓들은 우리의 말과 몸짓이 이루는 의미를 무의미로 변화 시킨다. 그러나 나와 타인들이 구성하는 거짓 세상은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 쿤데라는 저항할 수 있는 길은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96).
그저 먹고 싸는 인생에서 의미를 찾기란 어렵다. 나도 무의미한 삶에 늘 진저리 치지만 정작 그것을 떨쳐내려 노력하진 않았다. 아 인생, 넘나 의미 없는 것. 그러나 의미 있는 것만을 좇는 삶의 태도가 항상 행복을 불러오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지나친 열정은 삶을 마모시키기도 한다. 내 20대도 강제된 열정에 의해 마모됐을지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삶을 지키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무의미를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라몽의 말처럼 내가 하찮고 의미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할까 보다. 이제 독한 술과 기름진 안주 먹으며 살찐 배를 부여잡고 한탄하지 말자. 내 삶은 무의미하다고 한탄하지 말자. 용기를 내서 삶의 비속함과 무의미를 인정하면 그것도 축제가 될지 모르니까.
"나르키소스라는 건 거만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야. 거만한 사람은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낮게 평가해. 나르키소스는 과대평가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관찰하고 더 멋있게 만들고 싶어 하거든. 그러니까 그는 자기의 모든 거울들에 친절하게 신경을 쓰는 거지." 26p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선 우리는 살아 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無)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주 아주 드물게 몇 사람만이 이름을 남겨 기억되지만 진정한 증인도 없고 실제 기억도 없어서 인형이 되어 버려." 34p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139p
"다르델로,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그 당시에 나는 무엇보다 당신과 여자들의 관계를 생각했어요. 당신에게 카클리크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죠. 아주 친한 친구인데. 당신은 몰라요. 그래요. 넘억갑시다.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1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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