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우 김명민은 인간 극장을 즐겨 본다고 한다. 인간 극장은 배우가 나오지 않는 대본 없는 이야기다. 연기와 별 관련 없어 보이는 인간 극장에서 연기를 배운다고 한다. 어째서일까. 극이 아닌 실제 생에선 기쁨과 슬픔은 과장되는 법 없이 담담하다는 게 그 이유다. 드라마에서 크게 당황하거나 슬퍼할 일에도 사람들은 의외로 의연하다. 그리고 쉽게 절망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간다. 김명민은 이런 진짜 삶의 모습을 캐치하고 연기에 응용시킨다는 이야기였다.


소설집 대성당은 인간 극장과도 같은 이야기들의 묶음이다. 『깃털들』에선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던 부부가 직장 동료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는다. 그곳에서 직장 동료 부부의 아이를 보는데 끔직이도 못생겼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동료 부부는 어쩐지 불쾌한 외양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부는 아이를 갖고 싶다 생각한다. 행복은 남의 눈으로 재단할 수 없는 온전한 자신의 문제였음을 은연중에 깨달았던 것일까. 그런데 정말 재밌는 건 이야기가 온전히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아내는 뚱뚱해진다. 부부는 권태에 빠지지만 화자는 두루 평안하다 말한다. 동료 집의 공작새 조이는 날아가 버렸다. 물질도 생각도 영속되는 건 없다.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인생이 가지는 의외성, 불영속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셰프의 집』은 갑작스럽게 셋집을 비워줘야 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집을 비워주고 다른 집을 구해야 하지만 이는 별거하던 부부가 다시 서로를 긍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보존』에선 남편의 실직, 냉장고의 고장이 이어진다. 이래저래 불운하지만 부부는 일단 새 냉장고를 사러 경매장에 가야 할 뿐이다. 


만사형통의 행복한 삶이었는 데 무슨 까닭에선지 그저 맥주만 마시며 알코올 중독이 되고, 필름이 끊기는 게 술을 많이 마신 내 탓이 아니라 술에 물을 안 넣고 얼음을 넣은 탓이라는 괜한 핑계를 대기도 한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


이렇듯 본질도 불분명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에서 어차피 해답은 없다. 큰 기쁨, 큰 슬픔, 큰 재미도 없는 인간 극장 같은 소설집 대성당에서 사소한 불행들을 살펴보고 견지해야 할 삶의 태도를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보는 법을 알려주는 맹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못생긴 아기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버드와 올리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아마 그들은 못생겼다고 해도 어쨌든 괜찮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아기니까. 지금은 이런 시기를 거치는 것뿐이지. 조만간 다른 시기가 찾아 올거야. 이런 시기도 있고 다른 시기도 있는 것이니까. 결국에는 그러니까 모든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39p

"어쨌거나 뭔가 하긴 해야지. 일단 이것부터 해보는 거야.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그게 인생이야. 그렇지 않아?" 16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