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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3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세계문학전집 223
『 속죄 』
이언 매큐언 / 문학동네
시간이 멈춰버린 뜨거운 오후,
소녀의 오해가 불러온 젊은 연인들의 비극
그리고 이를 되돌리려는
한 소설가의 평생에 걸친 지난한 속죄!
미루어 짐작하여 말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독자는 경험한 바 있다.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는 배려가 나의 선량한 의도일지라도 섣부른 판단만큼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상대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보였을지라도 그 사람이 말 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렸을 때 저질렀던 자신의 죄를 씻어내기위해 평생을 속죄하고 살아야했던 작은 소녀... 지나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죄를 가슴에 짙게 새겨 지극한 슬픔의 삶을 살아가면서 써내려간 이야기... <속죄>는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소설로 이언 매큐언만의 문체로 깊은 울림으로 그려낸 내면의 언어로 탄생한 소설이다. 역대 최고의 소설이라 극찬받고 저자의 모든 것이 집약된 역작이란 메세지에 기대감을 안고 페이지를 넘겨본다.
진실은 허구만큼이나 붙잡을 수 없는 유령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브라이어니는 지금 당장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우선 자신이 본 내용을 글로 옮기는 것,
즉 한낮에 집 바로 근처에서 발가벗다시피 한 언니의 충격적인 행동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글로 쓰는 도전부터 시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1935년 영국 상류층의 교외 저택...
오래도록 떠나있었던 오빠 리언의 귀향을 환영하기 위해 작가를 꿈꾸고 있던 작은 소녀 브라이어니 탤리스는 희곡 소설을 썼다. 우연하게도 가족의 내전으로 이모의 아이들이 집에 와 있었기때문에 '아라벨라의 시련'의 공연은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을거라 장담했다.
그러던 어느날... 서리 언덕에 황금빛 사자 같은 한여름 햇빛에 잠식되고 있던 장미정원의 트리톤 분수 근처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 브라이어니... 아버지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던 가정부의 아들 로비 터너가 언니 세실리아에게 청혼을 하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는듯했지만, 지켜볼수록 협박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더 컸다는 점... 그 모습을 본 브라이어니는 작품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한편 로비 터너와 세실리아는 우연한 실수로 골동품 화병을 깨뜨렸고 깨진 조각을 찾기위해 세실리아가 옷을 벗고 분수대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오해의 시작이었다는거... 또한 세실리아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로비는 그녀의 벗은 몸을 보고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오해로 말다툼을 하게 된 둘은 신경질적으로 헤어졌고 잘못 배달된 편지는 큰 파장을 맞게 된다.
브라이어니의 희곡 공연이 불발된 저녁 만찬 시간... 친척 쌍둥이 형제가 실종되고 그들을 찾으러 나간 형제의 누나 롤라가 강간을 당한채 발견되는데... 브라이어니의 증언으로 이 모든 일들을 벌인 범인은 로빈을 향했고 시간이 지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향할지...
수많은 언어의 향연에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던 소설 <속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이라는 시대적 전제를 통해 기적을 그려내는 듯 했지만 독자의 마음이 안정된 순간 저자는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그려냈던 문체뿐만 아니라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전개는 그야말로 걸작 중에 걸작이었다 말하고 싶다.
<속죄>는 기억하고 있는 한, 인간의 죄는 쉽게 씻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죄는 자신이 가장 잘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