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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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슬픔들의 결정체가 인간이다

『 김장 』

송지현 소설 / 교유서가








나의 가난한 어린 시절 또한 먹고 살기 힘들었다. 가까스로 버텨냈던 계절 중에 겨울은 시리도록 힘들었던 기억들로 가득차 있었고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농담을 던지듯 곰처럼 겨울잠을 잘거라 선포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정말이지 시린 바람이 불어올때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나... 그렇게 계절의 변화를 마음껏 느끼지 못한 채 중년이 되어버렸다.

두 계절을 가로지르는 청춘의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김장>이란 제목이 무척 인상깊게 다가왔다. 누구에게는 지긋지근한 일 일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그저 신나는 연례행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이 소재로 이시대의 청출을 그려냈다니 요즘 읽을만한 책으로 제격인듯 싶다.







저멀리 자그맣고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점방인지 아닌지,

맥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그곳을 향해 걸었다.

멀리서 보면 나는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유년 시절 방학만 되면 할머니 댁을 찾았다. 동네 언니 오빠들과 아이 엠 그라운드를 하고 엄마와는 산딸기를 땄던 추억도 있었다. 삼촌 장롱엔 야한 잡지와 김전일을 보면서 지냈던 기억도... 잊고 있었는데 간만에 할머니 댁으로 오니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할머니가 우리집에 계실 적엔 늘 김장을 했다. 우리만 먹을 게 아니라 이모와 삼촌네꺼까지... 병환으로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는데 올해는 혼자 김장을 하기 힘드시다며 우리를 불렀다. 성인이 된 지금 옛 추억을 떠올려보니 나의 길을 가느라 점점 늙어지는 내 곁의 사람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거...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김장을 시작으로 산딸기를 수확하는 여름까지, 두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나는 여전히 어디로 향하는지...



<김장>은 과거로 흘러간 시간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청춘의 이야기다. 김장이란 핑계로 할머니댁을 찾았던 나는 깊었던 강이 작은 시내로 변모한 것을 보았고 갈라진 물줄기에 내 삶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여전히 갈래길에 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알던 이들도 예전과는 달랐고 이미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으니 나의 삶 또한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혼란한 세상에 갈팡질팡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린 <김장>은 짧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지금 내 자신이 존재하는 곳이 어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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