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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 한산·명량·노량 해전지와 함께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도서출판 여해 / 2022년 9월
평점 :
쉽게 보는
『 난중일기 완역본 』
한산. 명량. 노량 해전지와 함께
이순신 / 여해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나의 애를 끊나니
선조25년... 1592년 임진년에 발발한 일본의 침략은 조선의 흥망성쇠를 쥐고 있었다. 당시의 일본 또한 혼란의 시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모든 것을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일했던 인물로 조선과 동맹을 맺어 명을 치고자하는 포부를 드러냈으나 그들이 원하는대로 조선이 움직이지 않자 전쟁을 일으켰다.
충무공 이순신의 가문은 본래 문신의 집안이었지만 소실적부터 드러났던 장수의 기질로 1576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순신... 그곳에 도착한 임진년 첫날에 그는 붓을 들었다. 그 기록이 바로 <난중일기>이며 전장 중에 마주해야했던 자신과의 싸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를 향한 지극한 효심과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 또한 옅볼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움에 백번 이기고,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번 이기고 한번 질 것이다.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
이는 만고불변의 이론이다.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왜란에 대비하여 군사훈련과 거북선 제작에 힘썼다. 임진년 1차 침입인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며 그 해 당포해전, 한산도 대첩, 부산 대승첩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전쟁 소식을 들었던 이순신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오직 나가서 싸우다 죽을 뿐이요. 감히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참수할 것이다"라고 조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뿐만아니라 전라여수에서 거제 한산도로 본영을 옮기며 삼도 수군을 통괄했던 이순신은 군량을 비축하며 수영에 무과를 설치해 자급책을 마련하기도 했으니 그의 선견지명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당시 전염병이 창궐해 몸이 쇠약해지기도 했으나 공무와 활쏘기 그리고 군사훈련을 통해 전선을 재정비 하는데 한치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난중일기 속 중간중간에 어머니의 건강과 안부를 묻는 걸 보면 효심 또한 지극했던 것이다. 한편 전쟁을 나가라는 왕의 명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던 이순신,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그를 보러 오던 중 정박 중인 배 안에서 사망하고 만다. 백의종군으로 상 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던 이순신은 비통한 마음이었지만 조선을 지키겠다는 일념하에 다시금 전장에 나갔고 전쟁중에 셋째아들의 전사소식을 듣게 된다.
12척으로 133척을 물리친 명량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이순신의 최후의 전장이었던 노량해전까지 <난중일기> 속에는 칠흑같은 전쟁뿐만 아니라 그의 굳건한 의지와 인간미가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얼마전에도 만났지만 이번에 다시 만났던 <난중일기 완역본>에는 현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난중일기의 사진자료 뿐만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묘소, 전장의 한 가운데 우뚝 서 있었을 각 수영들 그리고 임진왜란의 주요 해전지 등의 자료를 부록으로 첨부하여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낼 수 있었고, 새로이 발굴한 자료를 첨부하여 36일치의 분량을 추가하여 더 많은 일기문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렵게 표기된 한자를 한글로 개편하였다고 하니 조금더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숨 쉬고 존재하는 한, 역사는 쉼없이 이어간다. 그저 우리가 학습으로 접하는 역서 속에서 가장 존경하는 영웅으로서의 충무공 이순신이 아니라 심중의 메세지를 담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오래도록 가슴에 새겨질 이순신의 정신 '난중일기'... 민족의 얼을 담아 낸 역사의 기록이며 길이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