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 마리아 - 혁명을 삼킨 불굴의 왕비
헨리에타 헤인즈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2년 9월
평점 :
절판



혁명을 삼킨 불굴의 왕비

『 헨리에타 마리아 』

헨리에타 헤인즈 / 히스토리퀸







"아, 신부님, 화내지 마세요. 전 아직 어리다고요. 40살에 개과천선해서 얌전하고 경건한 여인이 될게요." (p.321) 프랑스인 중에 헨리에타만큼 드레스를 사랑하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세계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왕비의 역할이 절대 군주로 자리매김하기에 무척이나 중요한 자리였기에 더욱 공감되었던 메세지였던 것 같다. 지금과 빗대어 보자면 소녀로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왕이라는 권력과 가문의 결합으로 모종의 거래로 이루어진 관계... 그 사이에서 사랑을 꿈꾸는 소녀였을 그녀들의 고군분투기...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결합은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였는지 이 책을 통해 배우고자 한다.

<혁명을 삼킨 불굴의 왕비 : 헨리에타 마리아>는 프랑스의 위대한 군주였던 앙리4세의 딸로 잉글랜드 찰스1세와 결혼하여 갖은 수모와 고초를 겪었던 헨리에타 왕비의 일대기를 기록한 역사책이다. 온갖 음모와 계략을 거치며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버텨낸 그녀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장 가혹한 점은

16살에 부인의 덕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왕의 부인으로서

"그녀의 국민과 아버지 가문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찰스 1세의 왕비였던 헨리에타 마리아... 그녀는 근대로 진입하는 시기였던 1625년부터 1649년까지 왕비로 재위했다. 프랑스 브르봉 왕가 출신의 그녀는 결혼 후 잉글랜드인이 되었고 절대 군주로서 강력한 왕권을 기초로 국민을 보살피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1639년 가톨릭교도의 기부금 모금사건으로 그녀가 로마의 가톨릭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오해를 샀고 잉글랜드 국교회를 신봉하는 신하들과의 갈등과 대립으로 왕비로서의 대우 또한 받지 못했다는거... 거기에 프랑스 여정을 계획했을 땐, 가톨릭계의 굴복을 인정하고 탈주를 목표한다는 소문까지 퍼졌으니 타국의 어린 왕비는 눈물마를 날이 없었다. 결혼 조약으로 헨리에타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과 종교인을 왕비의 수행원으로 함께 들어왔으나 프랑스인을 극도로 싫어했던 자의 음모와 계략으로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까... 

그저 '남편을 홀려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악녀'로 기록했고 혁명을 피할 수 없었던 찰리와 헨리에타는 국민의 분노와 맞닥뜨리며 그렇게 불행한 군주가 되었다. 그녀가 불행에서 견뎌낸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왕들을 옥좌에서 몸서리치게 했던 찰스 1세의 처형... 우리가 배웠던 청교도 혁명은 이제 잉글랜드 내전이라 부른다고 한다. 왕비라는 최고의 자리에서 찰나의 빛이 사그라들고 고통의 시간 그리고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맞이한 헨리에타... 역사의 기록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의 삶과 애환을 <헨리에타 마리아>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국민 스스로 왕의 목을 벤 최초의 혁명... 이 혁명의 성패를 좌우했다는 헨리에타 마리아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역사의 기록을 보시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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