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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열린책들 세계문학 001
『 죄와 벌 : 상 』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인간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원죄란 무엇일까?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고 평생을 시험에 들게한다는 그분의 원죄를 따지기전에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이성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데 인간은 세월의 흐름속에서 그만큼이나 경험한 바가 많으니 더 꼿꼿해지는 성향에 옳고그름의 선이 명확해져 간다. 다시 말해 인간적 이해의 상실이랄까?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나의 잣대에 따라서 인정의 수준이 달라진다는거... 그 선의 경계는 저마다가 다르다는 것이다.
<죄와 벌>에선 이성을 가진 인간이, 이해의 경계선에서 내면의 갈등과 고초를 겪는 인문학적 글로 흔들리는 자아와 마주하게 했던 고전문학이었다. 벌을 받아 마땅한 자는 누가 정할 것이며 그에 대한 심판은 저마다의 나라에 한정된 법으로만 잣대를 들이댈 것인지... 이 책을 통해 경계를 허물어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일을 행할 때
의지와 이성을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일의 모든 상세한 점들에 대해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 익히게 되면,
모든 곤란한 부분들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극복될 것이다.....
밀린 방세때문에 여주인을 마주하기가 두려운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 (일명 로쟈)는 가난에 찌든 자신의 삶이 처절하기만 하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필요악인 존재들이 많음에도 노력없이 편하게 사는 인간들이 불합리하게만 보였던 그는 '그 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 일'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겁 먹지않고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남루한 자신의 모습이 한탄스럽지만 이런 사소한 것은 잊고 일단 선술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퇴역관리 마르멜라도프는 로쟈에게 대화를 청하며 찌든 술잔을 기울인다. 아무리 일을 해도 비참한 생활은 변함없었던 자신이 희망없는 삶에 무릎꿇고 술주정뱅이가 되어야했던 방랑... 어린 딸아이를 거침없는 생활전선으로 몰아내고 방 한칸에 배를 곯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신은 그저 아내의 손찌검을 견딜뿐이라고... 한편 어머니로부터 도착한 편지엔 동생 두냐에게 청혼한 사람이 있고 결혼식을 위해 로쟈를 찾을거라는 내용이다. 문제는 동생의 남편감이 경제적인 이유로 흠잡을거리를 찾았다는 불안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거... 이 결혼을 승낙하면 불행한 삶을 살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던간에 로쟈는 더이상 지체하지말고 '그 일'을 해야만 했다. 전당포 여주인이 혼자 집에 있는 그 시각... 도끼를 빼들어 머리를 내려치고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꺼내 돈이 되는 것들을 닥치는대로 주머니에 우겨넣었다. 그때 방 한가운데 넋잃고 서 있던 그녀의 동생... 숨이 막힌듯 소리도 내지르지 못하고 서 있던 그녀에게 달려들어 똑같이 해주었고 피웅덩이는 더 커져갔다. 로쟈의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인간의 이성과 의지는 헛된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할 땐, 분명히 목적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죄가 된다면 이성으로 저지해야 함이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대한 의지로만 각인되어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더 높은 관리들이 아니라 나약하고 힘없는 무례한 인간에게 죄를 범한 주인공 로쟈... 마치 미래에 대한 불안속에 떨고있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외침인 듯 했다. 고전문학의 진정성과 인간의 내면을 통찰한 <죄와 벌>... 곧바로 다음편으로 이어가 본다.